안녕하세요 저는 40대 초반의 남자입니다 남자가 이런 사연을 보내게 되는 경우는 좀 드물지요 저의 우여곡절이 많았던 삶을 여러분에게 들려 드리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먼저 저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저는 고아 출신입니다 부모님이 누구인지 여전히 모릅니다 태어나자마자 줄이 은채로 시설 앞에 버려졌고 저를 낳아 주신 어머니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음악] 않으셨거나이가 좀 더 들어서는 찾기도 싫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남들과 다른 이런 환경에서 자란 탓에 어릴 때부터 애정 결핍이 있었고 빨리 어른이 되어서 내 가정을 꾸리고 싶었습니다 스무살이 되면 시설에서 나와야 해서 열심히 자격증을 따고 공장에 취직했다 했죠 그곳에서 저와 비슷한 처지의 예쁜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서로 처지가 비슷하다
보니 금방 사랑에 빠졌습니다 정확히 따지면 그녀는 부모님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정신 지체시 아버지는 누군지 모른 채로 자랐다고 해요 고등학교도 못 나오고 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녀의 꿈도 온전한 내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고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삶의 의를 갔습니다 수진아 우리 돈 많이 벌어서 빨리 같이 살자 정석 씨는 내가 그렇게 좋아 아 뭐 너는 안 그래음 그렇긴 하지 그런데 어머니가 계속 걱정이지 걱정 마 내가 너 데리고 가고 어머니도 같이 모시는 거니까 진짜음 당연하지 빨리 우리 한가족이 돼서 꽃같은 아이도 낳고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거야 뭐가 걱정이라 우리는 세상에 죄지은게 없으니까 하느님이 있다면 이제 우리한테 축복만 줄
거야 난 자신 있어 그래 그녀는 이름처럼 아름답고 맑은 여자였습니다 늘 그렇게 제게 힘이 되어 주었죠 우리는 전세 트름 보증금만 모으면 같이 살기로 약속했고 저는 정말 쉬지 않고 했습니다 드디어 돈 4천만 원을 모아 변돌이 작은 트룸 전세집을 얻게 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진아 진짜 우리가 해냈구나 정석 씨 우리는 무슨 다 정석 씨 돈인데 너는 어머니 병원비에 드는 돈이 많았잖아 네가 없었으면 나는 이렇게 돈 못 모았을 거야 다네 덕분이야 수진아 정석 씨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나야말로 우리 이제 같이 살자 그럴 수 있을까 당연하지 내가 지금까지 왜 그렇게 돈 벌었는데 다 너랑 결혼하기 위해선데 결혼 응 야
같이 산다는게 정말 그냥 같이 산다는 소리인 줄 알 어 결혼을 해야 같이 살지 정석 씨 수진아 우리 진짜 잘 살자 우리는 부를 만한 이렇다할 친지나 지인들도 딱히 없어서 사실 결혼식이 할게 없었습니다 여러분 부를 사람이 없어서 웨딩 우를 잡을 수도 없는 서름 모르시죠 당시 제가 사회 생활한지 6년 차였으나 사람들은 있었지만 다들 시간내서 오기 빠듯한 사람들이었고 그래봤자 양가 50명도 안 됐으니까요 그래도 그녀가 가장 고운 날에 남들처럼 웨딩 드레스를 입혀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웨딩 드레스와 턱시도를 빌려 촬영을 했어요 부부 사진도 찍고 야외에서 촬영도 했습니다 둘밖에 없는 사진 우리의 결혼식 사진입니다 그리고 장모님과 함께 동네에서 가장 좋은 가장 큰
중국집에서 평소에 잘 시켜 먹지 못하던 팔보채와 탕수육 등 메인 요리를 먹었습니다 장모님은 짜장면을 가장 좋아하셨는데 입에 다 묻히고 드셔서 애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참 저희 장모님에게 생활이 어려운 정도로 지체는 아니셨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수준에 정신연령이 가릴 다 가리시고 식탐이 많고 애처럼 때를 쓰고 어찌됐든 집에서 가스 레지라 잘못 만지면 안 되니 늘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그런 아이 같은 고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딘가 다 모자란 저희 세 사람은 그렇게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여보 여보라 신기해 앞으로 오빠한테 나는 여보라고 부를 거야 매일 콜 싸울 때도 여보라고 불러야 한다 어 여보 죽어도 여보라고 할게 죽는다니 그런 말을 왜 해 그리고 죽으면
내 귀엔 들리지도 않을 텐데 우리 나중에 늙어서 누구라도 먼저 죽긴 할 거 아니야 아 그런 상상은 하기도 싫어 나는 내게 새로생긴 가족인 여부의 이별을가 상해 뭐 이별 그러니까 한평생 우리 함께 살다가 언젠가 누구 한 명이 먼저 죽는 상상 아 무슨 그런 상상을 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거지 그래서 말인데 난 꼭 내가 먼저 죽고 싶어 왜 여보가 죽고 나 혼자 살 자신이 없거든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그건 여보 사정이고 나는 내 사정만 생각해야지 꼭 내가 먼저 죽을테니까 그렇게 하세요 하느님한테 꼭 빌 거야 네가 나보다 나이도 어데 무슨 두 살 차인데 무슨 네가 그런 기도하면 나도 똑같이 기도할
거야 하느님 제발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제 가족수 보다 제가 먼저 죽게 해 주세요 그런데 여보야 남들은 혼자남을 배우자가 가슴 아플까 봐 배우자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는 우리는 둘 다 너무 이기적이다 그래 역시 우리는 천생연 분이야 이런 것까지 닮았네 집은 꿉꿉하고 작은 다세대 그녀와 매일밤 별이 쏟아지는 꿈을 꾸며 잠을 잡고 뜨거운 가슴에 매일이 웅장해지는 아침을 함께 맞이하며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 여겼습니다 그녀는 제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가진게 없는 삶에 영원한 오아시스 같은 사람 그 사람이 없다면 다시 사막에 혼자서 했을 것 같은 저는 그 사람을 만나서 더 이상 사막에 자 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진아 우리 슈퍼 차릴까 슈퍼음 나 어릴 때 꿈이 슈퍼마켓 사장 아들이었던 슈퍼 사장 아들 그런 꿈이 어디어 그런데 애초에 그 꿈은 말이 안 되는 거였어 왜 초등학교 때 가장 친하다고 생 떤 친구놈이 그러더라 뭐라고 너는 아빠가 없는데 어떻게 슈퍼마켓 사장 아들이 될 수가 있냐고 돌직구 장이지 아주 돌직구가 센 놈이었어 나쁜 놈인데 아니야 그놈 때문에 생각이 바뀌었지 그래 나는 어차피 애초에 아버지도 엄마도 없으니까 내가 빨리 아빠가 되고 내가 사장이 되면 되지라고 지금 그꿈을 잃어가고 있는 거야 너를 만나서 여보야 그래 그럼 그꿈 내가 다 이루게 해 줄게 우리 모아 놓은 돈으로 가게 알아보자 당시 저희가 살던 동네는
골목길이 미로처럼 있고 다다다닥 따개비 럼 붙은 다세대 주택들이 쉴틈없이 붙어 있는 동네였습니다 편의점도 잘 없는 동네였는데 산월리 쯤 한두 개씩 슈퍼들이 있었어요 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우면 더 잘됐죠 우리는 마침 마을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세탁소가 이전을 하고 그 자리에 작은 상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박이야 역시 우리는 신의 자식들이냐 그 자리면 진짜 대박이지 매일 칠 퇴근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잖아 그렇게 좋아 응 그런데 신의 자식은 뭐야 또 누가 보면 우리가 무슨 신실한 사람들인 줄 알겠다 원래 인간이란 엄청 기쁠 때나 엄청 슬플 때만 신을 찾는다고 하잖아 뭐 암튼 나도 네가 기쁘다니 너무 기쁘다 첫 번째 나의 꿈을 이루게
해 줘서 고마워 나도 그때 제나이가 서른 꼬박 10년을 모은 돈을 투자해 얻은 산동네 언덕에 작은 슈퍼마켓이 있습니다 집도 그 슈퍼마켓 뒤에 달린 다세대 까지 얻었고 정말 딱이었어요 출퇴근이 고작 분이었으면 엄마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뒷집 아주머니가 집을 빼 주셔서 너무 감사해 정말 안 그래도 이사 가고 싶어 하셨다고 하니까 그러게 정말 잘 듣지 뭐야 한 시름 덜었어요 이을 두고 일을 나가는게 늘 걱정이었던 아내 때문에 저는 가게에 붙어 있는 집 세입자에게 웃돈을 더 줘서 집을 빼게 부탁드렸어요 아내가 알면 펄쩍 딜 것 같아서 상인은 하지 않았지만요 화하게 햇살같이 웃던 아내를 보니 저도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장모님이 나이가 드실수록 점점 더
아이가 돼가고 있던 터라 저도 걱정이 되긴 했었고요 아빠네 엄마 아빠가 뭐야 사라니까 이라고 불러야죠 그때 알려 들었잖아 휴 우리 장모님이 나를 아빠로 만들어 주시네 응 알았어 김서방이랑 할게 장모님 아빠도 좋고 김서방도 좋으니까 건강하게만 우리 옆에 쭉 계셔 주세요 그래 김서방 우와 역시 우리 장모님 최고 그래 아빠도 최고 아 엄마 당신 왜 그래 화내지 마 장모님 울겠다 아 여보가 자꾸 다 받아 주니까 엄마가도 애같이 울잖아 엄마 애 아니야 아셨죠 엄마 나는 딸 수진이 지수진이 사람은 김정석 수진이 남편 김서방 알았지음 알았어 수진아 내 딸 스진이 아 내 새끼 예쁜 내 새끼 다 컸네 스진이 남편도 있고 결혼도
하고음 우리 엄마 똑똑하시고이 나나 봐음 우리 딸 내 딸 예쁜 내 딸 수진이 저는 부모 정 없이 자랐기 때문에 이렇게 아이처럼 어린 장모님이 있지만 정말 제 친어머니 생각하며 모셨고 가끔 장모님이 자잘한 사고를 치시면 혼낼 수도 없는 터라 가슴 아프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새식구가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제가 이루고 싶었던 두 번째 꿈을 이루었죠 바로 제가 정말이 세상에서 제 핏줄로 엮인 가족이 생긴 겁니다 제 딸이 태어났어요 여보 그 해 좋아 당연하지 너는 내게 신이야 무슨 소리야 그게 내가 빌구인 모든 꿈을 네가 다 뤄 준 거니까 가족이 되어 주었고 자식도 나아 주었어 사랑해 수진아 고마워
나도 사랑해 여보야음 우리 너무 니글 거린다 얘 봐지도 알아들었는지 웃어 우리 수빈이가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좋겠다 나는 다른 건 바랄게 하나도 없어음 이렇게 건강한데 뭐 건강할 거야 공부 못 해도 돼 수빈아 건강하자 내 새끼 결혼 후 모든게 순탄 했는데 아이가 세돌이 지났을 때 서서히 불행의 그림자가 저희 가족에게 드리워 졌습니다 그때는 그게 시작일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큰 고통을 주시면 신이 이제 더는 안 주시겠지 했는데 말이죠 아이가 몸을 벅벅 긁기 시작하더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드러기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팔을 묶을 정도가 되었어요 아직 어린 아이니 긁으면 안 된다고 해도 피가 날 정도로 긁는 거였죠 아 저희도 이런 증상은
처음 봅니다 희귀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계 발병 사례 중 비슷한 사례를 를 찾아보고 있는데 매우 드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고요 실제론 가렵지 않은데 심리적으로 가렵다고 여기는 증상입니다 아이가 아직 많이 어린이에 이렇게 피가 날 정도로 긁는 거죠 이러면 온 전신이 남만 나지가 않게 되는 거예요 당분간 이렇게 양손에 주머니를 씌우듯 덧 싸개를 끼워 주시고 못 빼게 해 주시는게 좋아요 그럼 선생님 고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건가요 영원히 나을 수 없나요 아 비슷한 사례의 경과를 보면 3년 길게는 10년까지 있다가 자연적으로 나아지는 경우도 있고 짧게는 1년 안에 증상이 사라졌다가 몇 년 후 다시 발병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럼
아이가 어린이 집에도 가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는데 이일을 어쩌죠 아이 교육도 있 그 이렇게 손을 묶어 두는게 어떻게 생활을 시켜야 할지 아 하루 24시간 내내 그러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니까 아이가 인내하는 방법을 기르는 정신 훈련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런 쪽으로 치료를 계속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정신과로 연기해 드릴게요 정신과 그럼 아이가 정신적으로 이상하다는 말씀이 이세요 아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쭉 자기보다 어린 엄마와 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정신적인 문제 더 예민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여보 왜 이렇게 예민해 예민 예민 안 하게 생겼어 걱정돼 걱정돼 죽겠다고 당신은 수빈이가 평생 저러지 않을까 걱정도 안 돼 아 아니
저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래도 우리가 부모인데 먼저 알는 소리 하면 안 되잖아 나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그게 10년이 될지 1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른다 아아 여보 이런데 일수록 우리가 정신 부여잡고 아이케어 해야지 그리고 지능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까 치료하면 좋아질 거야 우리가 그래야지 아이도 이겨내지 당장 힘든 건 사실 수빈이 아아 당신 혼자 속 좋다 정말 아내는 점점 더 예민해져 갔습니다 연애부터 결혼까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던 우리가 처음으로 싸웠고 아이가 아팔 록 저희는 점점 더 말을 잃어갔습니다 게다가 장모 님까지 점점 더 아이가 돼 가는 악재까지 저희 가족의 부른이 겹겹이 쌓여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여보 키 줘
왜 배추 말이야 가지러 한가 아 내가 다녀올게 아니야 내가 갈게 왜 내가 하던 일이잖아 그러니까 당신이 하던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있잖아 그러니 내가 해야지 수진아 우리 싸우지 말자 배추 다 썩어 문드러지다 장사할 생각 안 해 엄마도 저러고 애도 저런데 다 같이 굶어 주고 아 수진아 너 도대체 왜 그래 정말 내가 뭐 내가 다녀올게 됐어 나 바람 좀 세고 싶기도 하니까 그만하자 나 다녀올게 애 좀 봐 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고 아내는 점 지쳐갔고 자신의 병을 주체 못하는 어린 딸도 그 딸과 똑같이 구는 장모까지 마주하는 걸 점점 더 힘들어했습니다 저도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지내다 보니 해야 할 일을 깜빡하기도 했죠 그날 아내는 제가 거래처에서 가져오지 못한 배추를 가지러 가겠다며 차키를 달라고 했어요 그때 제가 갔어야 했는데 아내가 집에서 아이와 장님을 마주하는게 힘들어보여 여서 말리다가 그래 당신도 해방되고 싶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너무 후회가 돼요 그렇게 아내를 보내는게 아니었는데 어떤 마음으로 운전을 하고 집을 나섰을 가던 길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알 것만 같아서 더 가슴이 아픕니다 저 지수진 씨 집이죠 남편 되시나요네 맞는데 누구시죠 경찰입니다 지금 지수진 씨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급히 이송했습니다네 수진이가 지금 거기 어딘가요 신호 대기에서 멍때리고 있는 아내를 건너편 졸음 운전자가 역주행해 그대로 박은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머리를
크게 다쳤고 병에 이송되었습니다 저는 그 와중에도 어린 딸과 장모님을 두고 갈 수 없어 두 사람 손을 잡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급히 갔습니다 김서방 스진이 테 가는 거야네 어머니 어디 있는데 수진이네 수진이 지금 아프대요 장모님 수진이 아프대요 아빠 엄마 아파 수빈이 럼 엄마도 아파 수빈아 수빈아 아빠 왜 울어 아빠도 아파 아빠도 수빈이 럼 아파 아빠 아빠도 아파 나처럼 할머니 나 따라 하지 마 으 싫어 싫어 나 따라할 거야 저희가 병원에 도착하고 아내를 찾았지만 고개를 저으면서 수술실에서 나오는 의사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수진이 우리 수진이 지수진 환자 살았죠 산 거죠 저희 딸 이제네 살이거든 여기 여기
어머니도 와 계세요 우리 진이 산 거죠 선생님 말씀 좀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운명하셨습니다 뇌 손상이 너무 심하셨어요 거짓말 바보가 돼도 좋으니까요 아이가 돼도 좋으니까요 우리 수진이 살만 주세요 바보가 돼도 좋아요 저 다 케어할 수 있어요 제가 아빠가 되면 되니까 우리 수진이 좀 살려주세요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죄송합니다 내 드릴 말씀이 아내는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저 혼자 저를 보겠다고 올라가 버린 겁니다 내가 먼저 죽으면 너무 슬퍼서 나보다 먼저 죽고 싶다던 수이가 그렇게 나이에 세상을 뜬 겁니다 나 살 자신이 없어요 정말 정석이 그래도 수빈이랑 장무 생각해서라도 기운 차려야지 수진이가 없는데
어떻게 저 혼자 살아요 그럼 자네만 보고 손가락 빨고 있는 자네 딸은 어쩌려고 지금 아파서 저렇게 벌개져 있는데 피 병도 있고 어쩔 거야 자네 장모는 또 자네만 보고 있는데 자네가 기운 차려야지 휴 주변 지인들이 대신 가게도 봐주고 아이도 병원에 데려가 봐주고 했지만 저는 살 자신이 없었습니다 제 폐인 생활이 길어지자 주변도 점점 지쳐갔고 다들 먹고 살기 바쁜데 언제까지 저희 집을 안스럽게 봐줄 수도 없는 것이었죠 저는 결국 제 꿈이었고 삶의 터전이었던 슈퍼를 접었고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습니다 주변에 신고가 있었는지 동사무소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찾아왔고 제 일자리 알선과 아이와 장모님을 잠시 시설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알아봐 주겠다고 했습니다네 수빈이와 장모님을
아 지금 이대로 정신 연령이 어린 두 사람을 라면만 먹이면서 데리고 계시면 이건 학대해요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님 사정은 안타깝지만 아이와 어머님을 봐서라도 다시 제기하셔야 해요 알코올 중독 증세도 있으시니까 치료도 받으시고요 알코올 중독 증세도 있으시니까 치료도 받으시고요 제가 다 연기해 드리겠습니다 알코올 중독 저는 그때 알코올 중독이었다 소주만 먹었으니 그럴 만 했죠 사실 막막했습니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슬픔 뭐 다 그랬지만 아픈 어린 딸과 장모님을 아내 없이 혼자 어떻게 케어해야 할지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무책임 하죠 돌이켜 보니 더 부끄럽습니다 저 그리고 지금 아이도 심각하지만 장모님은 건강이 매우 안 좋으세요 영양실조에 천식까지 있으신데요 청소도 너무
안 하셔서 지금이 환경이 면역력이 안 좋은 아이의 피부에도 안 좋을게 뻔하고 어머니가 이대로는 정말 안 됩니다 아버님 지금 다른 선택이 없으세요 이렇게라도 저희가 알게 됐을 때 도움을 받으시는게 맞으세요 저 때문에 딸도 다르지만 아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장모님을 제가 방치에서 병까지 생겼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죄송해서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일상 제활 프로그램을 받게 되었고 딸과 장모님은 잠시 시설에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폐인 생활을 하면서 저를 떠나갔던 주변 지인들도 조금씩 연락이 닿았고 제가 제기할 수 있도록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여보야 수진아 수진이 네가 어떡해 여보야 내가 죽어도 당신한테 여보라고 할 거라고 했던 거
기억나 죽어도 당신은 내 여보라고 어 어 기억나 그거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아니야 당연히 당신이 내 여보이 나한테 다른 여보가 어디 있어 그런데 이거 꿈이야 응 꿈이구나 여보야 내가 그때 못한 말이 많아서 보고 싶었어 미안해 그때 네 내가 너무 미안해 당신을 그렇게 혼자 보내는게 아닌데 차라리 내가 갔어 했는데 아니야 내가 그랬잖아 나보다 당신이 먼저 가면 안 된다고 여보야 내가 그때 당신한테 계속 화만 내고 짜증내고 그래서 미안해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아니야 수진아 내가 미안해 미안해 보고 싶어 계속 보고 싶었어 여보야 그래도 우리 수빈이랑 엄마 당신밖에 없잖아 이제 당신 힘들겠지만 내 딸과 내 엄마 유일한 피부치이 세상에서 내가 못
다한 삶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당신이 좀 도와줘 부탁해 여보 가지 마 그냥 나 꿈속에서 계속 살면 안 돼 이거 꿈이라며 그냥 나 꿈에서 당신이랑 계속 살면 안 될까 여보 여보가 꿈에서 나랑 계속 살면 수빈이랑 엄마는 어떡해 당신밖에 없는데 그럼 여보야 내가 수빈이랑 어머님 잘 모시고 정신 차리고 잘 살테니까 자주 내 꿈에 나타나 주면 안 될까 나 진짜 열심히 잘 살아 볼게 당신한테 못난 남편이었는데 계속 이제 정신 차리고 잘 살아볼게 내 꿈에 제발 자주 나타나줘 여보 수진아 고마워요 어보 잘 지내 꿈이 너무 생생해서 꿈속에서도 이건 꿈이라고 인지하던 그날 밤의 꿈 수진이 아내가 생전 모습으로
나타나 내게 미안하다며 딸과 장모님을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하고 사라졌습니다 제발 꿈이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가가 다 젖은 채로 꿈에 적겠습니다 내가 열심히 살면 수진이가 다시 나타나 주겠지 저는 아내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열심히 프로그램에 참여 고 술도 끊고 다시 일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에 들 때면 다시 아내가 제꿈에 나타나 달라고 기도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꿈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죠 김 선생님 이제 좀 괜찮으세요 마음이 어떠세요 요즘 요즘은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아내분에 대한 마음은 에요 수진이 당연히 보고 싶어요 보고 싶은 마음은 계속 그러하겠지만 괴로운 정도는 아니시고 보고 싶어서 계속
일찍 잠자리에 듣는데 꿈을 꾸지 않아요음 잠을 잘 주무시나요 자야겠다 하고 잠자리에 드시면 바로 잠이 되시나요 어 생각에 잠기는 것 같 은데 그게 잠이든 건지 사실 생각을 하는 건지 간혹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딸 수빈 양과 장모 님과는 면회를 하고 계신가요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고 선생님들을 통해서 소식은 매일 전해 듣고 있고요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요 아침일찍 일을 나가서 새벽일 나가시고 일찍 퇴근은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아내가 보고 싶어서요 그럼 혹시 아내분이 보고 싶어서 잠자리에 드신다는 시간이 낮인요 일 다녀와서 식사 후니 오후 3시쯤 될 겁니다 저는 알코올 중독 상담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면증도 심했고 그 반대인 과다 수면증
심했습니다 모두가 심리적인 문제였는데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이 너무 컸던 것 같고 사실 그때는 제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제가 예전처럼 일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고 생활을 하고 있으니 정신 차렸다고 생각들을 했고요 문제는 이상하리만치 딸과 장모님은 찾아가지 않았 마음으로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주변에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희귀한 행동들을 반복하고 있었던 거죠 낮에는 정상 퇴근후 집에 오면 어떤 망생 속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정상인인 척 정상이 아닌 상태였으니 사실 그냥 비 정상보다 훨씬 더 심한 증세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제가 잘 지내는 것 같으니 처음 도움을 주었던 사회복지사가
집에 찾아왔어요 김 선생님 따님이 그래도 시설에 간 이후로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요 키도 많이 자랐고 영향 부족이었다 부분도 많이 좋아졌어요 아 다행이군요 장모님도 여전히 어린 아이 같지만 있으셨던 천식 증상도 많이 나아지고 그 천식 위험하거든요 폐렴으로 넘어가면 아시죠네 일도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다니고 계시다고 들었고 술도 안 드시는 것 같은데 왜 가족들을 만나러 가지 않으세요 의사쌤한테 듣긴 했습니다만 저는 잘 모르지만 마음의 문제라면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 살면서 그 재감 그리움을 좀 더 덜 수 있지 않을까요 방문 케어는 저희가 해 드릴 수 있어요 수빈이가 아빠 많이 보고 싶어해요 예전처럼 집에 딸린 슈퍼에 나가는 거면 두 사람을 케어할 수
있지만 새벽일을 나가고 있어서 근무 시간은 짧아도 새벽에 복지사 분들이 봐 주실 순 없으니까 어린이 집을 그 시간에 보낼 수도 없고 지금 같이 사는 건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요 이런 말씀 좀 그렇지만 저는 지금 모든 건 다 김 선생님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하시는 일 시간대 변경을 하셔도 되는 문제고요 또 같이 살지 않아도 찾아가지도 않는다는 건 의지가 부족한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 저 아직 힘들어요 의사 께도 들었지만 그래서 더 같이 살면서 마음의 치유를 하는 쪽이 더 낫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혼자 있으면 지금 더 위험해요 아이와 장모님은 시설 선생님들이 케어 잘해 주시고 계시긴 합니다만 지금 더 위험한 건 제가
보기엔 김 선생님 같으세요 제가요 정상처럼 보이려고 연기하시는 것 같으세요 그리고 그 죄책감 왜 돌아가신 아내 분에게만 느끼십니까 까 이제 네살 어린 딸 연로하신 장모님 벅 차신 거죠 그런가요 그런 건가요 제가 그럼 제가 비정상 럼 살아야 두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건가요 김 선생님 저는 현실을 다시 인지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저는 아픈 장모님과 딸을 혼자서 케어하는게 역시나 힘들었고 여전히 현실에서 도피하고 꿈에서 아내를 만난다는 목적하에 일찍 잠이 들면서 현실로 상징되는 장모님과 딸을 잊으려고 했던 것이죠 그래서 제 꿈에 아내가 더 나타나지 않았나 봐요네 아내가 다시 나와 주기를 엄청 바랬는데 그럼 열심히 살겠다 술도 안 먹고 딸아이와 장모님을 보살피며 열심히
다시 살고 제기하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꿈에서 그러니까 다시 내 꿈에 자주 나타나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한 번도 안 나타났어요 이후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아내분도 아셨던 거 아니 김 선생님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맞아요 선생님 말이 다 맞아요 아내도 알았던 거예요 내가 아내가 죽던 날 그날처럼 계속 회피하고 있었다는 걸 도망가고 싶었다는 걸이 현실에서 저는 저는 하거든요 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알고 있지만 저는 혼자예요 혼자였어요 세상에서 그렇게 부모에게 버려져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다시 불행해지는게 너무 두려웠어요 그게 언제부터 였어요 아내분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부터 아니요 아이가 아이가 희귀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날 부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아내와 연애하고 열심히 결혼을 목적으로
돈을 모아서 전세집을 구하고 둘만의 결혼식을 하고 아프지만 그래도 귀 님까지 저는 만족했습니다 제 삶에 그런데 아이가 희귀병에 걸리자 불행이 시작됐다고 생각했던 거군요 맞아요 지금 돌이켜 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모든게 다 술술 풀린다 세상 천의 고화로 태어나서 신이 이제야 나를 돌봐 주시는구나 생각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런데 딸이 아프다는 거예요 그 병의 원인도 알 수 없고 고쳐질지 영원히 그렇게 살지 또 돈이 얼마나 들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돈이 들어도 아이의 고통을 잠시 일시 정지해 주는 것일뿐 계속 고통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건데 너무 무서웠습니다 당시 아내 에게는 병이 나을 수도 있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하셨던 건 김
선생님이시죠아요 맞아요 진심이 아니셨던 건가요 그건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저보다 더 무너지더라고요 저는 아내밖에 없는데 기댈 곳이 아내밖에 없는데 그런 아내를 보는게 힘들었고 아내가 그렇게 나가서 진짜 죽어 버리니까 저는 저를 바치고 있던 기둥이 다 무너져 내려서 가루가 된 심정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겠군요 선생님 저 나쁜 놈 맞죠 선생님은 저를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 역시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말 못하는 나의 자아가 있죠 그게 힘들 될수록 더 이기적으로 발현되기도 하지 않나요 의사가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겪는 일이기에 터놓고 말하면 다들 그럴 겁니다 나도 그런데 라고 그렇군요 그럼 선생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병원 치료 계속 받으시고 한 달만 더 있어 볼까요 우리네 알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시면 마음의 변화라도 생기시면 꼭 연락 주시고요 네 고맙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저는 사회복지사의 조언으로 병원 치료의 수를 좀 더 늘렸고 일 외에도 취미 수업을 받으면서 잠자리에 일찍 들려고 하던 심리를 지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한 달이 지났지요 다음이 상담해 주는 의사 선생님과의 마지막 대합니다 요즘은 몇 시에 주무세요 요즘은 9시에 자요 대체로 일 끝나고 뜨개질을 배우신다고요네 왜 뜨개질을 배우세요 남자분들은 보통 목공가구 만들기나 조금 더 역동적인 걸 좋아하시던데 아내가 좋아했어요 아내분에 대한 마음은 어떠십니까 미안하고 그립지만 조금은 편안 졌습니다 전보다는 덜 하세요네 일주일에 두 번 딸아이와 장모님을 만나러
가신다고 들었어요 보면 어떠세요 딸아이가 많이 컸고 저를 좋아해 주고 잊지 않았어요 딸아이의 바닉 말고 김정석 씨의 마음을 표현해 주세요 저는네 저는 딸아이에게 미안합니다 그리고 딸아이가 이제 두드러기 증상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고 해서 기쁩니다 장모님을 보면 어떤가요 장모 님께도 죄송합니다 어떤 부분이 죄송한요 아내가 장모님을 제게 부탁했는데 꿈에서네 그런데 제가 모시지도 못하고 시설에 맡겨 두게 돼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리고요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모님을 보면 아내분이 생각 나시고 하시나요네 같이 살면 어떨까요 같이 살면 계속 미안하고 그럼 같은데 김정석 씨 사회복지사와 함께 찾아가는 거 왜 보고 싶어서 찾아간 적이 있습니까 주 사람을네 없어요 이게 마지막 상담이었다 저는 노력해 보려고 했습니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내 자식과 아내의 피부 친 내 가족인 장모님을 모시고 살기 위해서 난 일를 구했고 새 식구가 다시 같이 살기로 했죠 라이는 어린이집 장모님은 복지사 분들의 도움으로 보살핌을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이 제가 시설에 보내기 전보다 훨씬 더 언어가 늘었습니다 부쩍 컸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요 아빠 응 나 이제 안 아파음 우리 수빈이 정말 다행이다 아빠는 아빠 아빠도 안 아파 아빠 다행이다 우리 수빈이 다행이라는 말도 알고 다 컸네 응 다 컸어 아빠 이제 수빈이 걱정 안해 해도 돼 수빈이 진짜 다 컸네 고마워 우리 딸 응 그러니까 아빠 이하고 느껴 와도
되니까 우리 계속 같이 살아야 돼 뭐 아빠랑 할머니랑 계속 같이 살고 싶어 수빈아 아빠 약속해 줘 이제 계속 같이 산다고 수빈아 알았어 아빠가 꼭 약속할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가족 다 같이 살겠다고 응응 수빈아 엄마는 엄마는 안 보고 싶어 엄마는 안 보고 싶어 왜 왜 엄마는 맨날 봤거든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가 일이 바빠서 멀리 있을 때 수빈이 안 찾아왔을 때 어 그때 꿈에서 엄마가 맨날 나타나서 나랑 놀아 줬거든 수빈아 그래서 엄마는 안 보고 싶어 엄마가 맨날 나랑 놀아주고 아빠가 뭐 하고 지내는 도 전해주고 그랬어 정말 응 엄마가 아빠 걱정 많이 하고 그랬어 그리고 아빠가
나를 되게 보고 싶어 한다고도 전해주고 곧 같이 살게 될 거니까 그때 아빠한테 잘해주라고 그랬어 그래서 내가 알겠다고 그랬어 나 잘했지 수빈아 수빈아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정말 미안해 아빠 왜 울어 엄마가 아빠 울면 자기한테 다 이르라고 했는데 나 이을 거야 아빠 자꾸 울면 수빈아 알았어 아빠 안 을게 아빠가 미안해서 그래 우리 수빈이 자주 보러 가지 못해서 엄마한테 소식만 전해 달라고 했었는데 그게 미안해서 그랬구나 엄마 말이 진짜 다 맞았네 어 엄마가 맨날 말해 줬거든 아빠가 오늘도 수빈이 많이 보고 싶어하고 오늘은 더 사랑한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고 그래 맞아 그래 수빈이 빠가 너무너무 사랑해 그날 이후 내 꿈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그 사람이 내 딸의 꿈에 매일밤 나타나서 내가 전해주라고 했다며 위로해 주고 사랑한다고 해주며 대신 보살피고 있었다는 얘기가 정말 너무 가슴이 아파서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죽어서도 저를 대신해서 어린 딸을 보살피고 있었던 거죠 저는 마음을 다 잡고 택배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복지사가 다시 찾아왔어요 장모님의 친동생분이 연락이 닿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장모님을 모시고 살겠다는 거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어떻해 그분이 형편이 되신다고 하세요 그래서 장모님 치료도 더 적극적으로 받게 해 주신다고 하고요 혈 관계인 건 제가 다 확인을 했고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연락이 알고 보니 장모님께서 어릴 때 길을 잃으셨던 거였어요
그래서 가족과 헤어지신 거죠 실종이 되신 거예요네 그렇죠 그래도 제가 모시고 싶어요음 제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지금 따님 치료와 일까지 병행하시는 거 힘드시잖아요 그 동생분도 오래 도움을 좀 받으시면서 왕래를 하시는게 더 낫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씀드려요 갑자기 나타난 장모님의 친동생 알고 보니 장모님이 어릴 때 길을 잃고 보육 시설에서 지내다 사회에 나와서 아빠 없는 아이를게 되는 우질이 있었 거였고 어렵게 가족을 찾았다고 하니 정말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영 좋지는 않았습니다 직접 그 가족분들을 만났고 생각보다 더 좋은 분들이어서 마음은 좀 놓였지만 저는 긴 고민 끝에 여러 사람들의 설득과 조언으로 장모님을 친동생 분에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 달쯤
지났을까요 그 사람들이 연락이 되지 않는 겁니다 저는 만대를 다 뒤졌지만 장모님과 그 가족을 찾지 못했어요 저희도 계속 찾고는 있는데 아 이게 무슨 말없이 이사를 가다니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건 아니겠죠 더 찾아볼게요 저도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또 다시 흘렀습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장모님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장모님 어 김서방 아빠 장모님 여기가 여기가 어디죠 지금 안에 다른 사람 다른 어른 없나요 어른 내 동생네 장모님 왜 말도 없이 이사를 가신 거예요 제가 얼마나 찾았는데요 음 내 동생은 지금 먹고 내 딸이랑 같이 있는데 따 딸이요 장모님 수진이는 이제이 세상에 없잖아요 아내 누구 없나요 그때 정말 수진이
내 아내와 똑같이 닮은 여자가 집에서 걸어나왔습니다 혹시 수진이 남편인가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다 만나네요네 당신 누구죠 왜 우리 어머님이 여기 계신 거죠 저는 아내와 꼭 닮은 여자를 요리조리 뜯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당연히 아니었어요 말투도 달랐고 차림새도 너무 달랐고 아내보다 나이가 더 있어 보였죠 누구신 거죠 대체 이게 무슨 일인 건지 제가 얼마나 장모님을 찾아 맨지 아시나요 저는 저는 수진이 언니예요 친언니 친 언니요 친언니 얘기는들은 적이 없어요 그러자 그녀가 가족 사진으로 보이는 사진 한장을 내밀었습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내 아내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그 여자 그리고 저희 장님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제가 친언니가 맞아요 수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릴
때죠 아주 제가 집을 나갔어요 저는 성인이었다 가난한 집구석 어린애 같은 엄마 다 싫어서 성인이 되고 무책임하게 엄마와 어린 동생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어요 알아요 저 때문에 두 사람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특히 어린 수진이가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지 아마 제 기억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을 거예요 아니 진짜 지워졌을도 모르죠 그때 수진이가 아홉 살이었나 아주 어릴 때부터 장모님과 아내 둘이서 시설에서 살았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제가 있을 때는 그냥 셋이서 살았는데 제가 집에서 도망치고 두 사람은 아마 시설에 갔을 거예요 둘 다 너무 어렸으니까 정신연령이 죄송해요 미국에서 살면서 다시 동생과 엄마를 찾았는데 방법이 없더라고요 재밌는 건 엄마랑 동생보다 존재 자체를 몰랐던 엄마의 친동생
삼촌을 제가 찾게 된 거예요 그래서 1위로 모셔왔어요 제가 저한테 연락을 하실 수도 있지 않으셨나요 어 맞아요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미국에서 이혼소송 중이었어요 거처를 이곳으로 옮기고 미국으로 다시 급하게 가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외삼촌 께는 제가 직접 제부에게 연락하겠다고 기다려 달라고 했고요 왜 그러신 거죠 장모님은 제 가족이에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재부를 믿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조카에 대해서도 궁금했지만 한동안 알콜릭 빠져 고생했다는 소리를 들었었어요 제 어머니가 다시 시설에 맡겨졌다고 들었고요 그건 그래서 외삼촌을 통해 제부의 얘기를 조금 건너 듣고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를 찾고 있는 건지 그리고 얼마나 건실하게 다시 하는지 지켜보는 시간이 조금은 제게 필요했어요 저는 미국에 오래 살아서 남을
잘 믿지 못해요 아니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과시를 받으며 소녀 가정으로 자랐기 때문에 더 그런 심리가 있는지도 모르죠 좀 미친 여자구나 생각해 줘요 미안해요 아내의 친 언니라는 여자는 죽은 아내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 서울이 많치 냉하다고 해야 할까요 어떤 면에서는 그녀의 말이 납득이 가면서도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녀는 스살 때 가추 고생하다 미국으로 넘어갔고 부자에게 시집과 이혼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혼 소송에서 승리해 어마어마한 재산분할을 받아 이제 한국으로 완전히 넘어왔다고 했고요 미 다는 말로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제가 가진 것들로 부상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엄마에게 못 한 것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내 동생 그리고 조카까지 그리고 또
제부 아지 말이죠 그게 무슨 수빈이 아고 했죠 수빈이가 아프다면서 미국에 보내서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어요 붙일 수 있나요 알아봐야죠 그리고 저희 엄마는 제가 모셔도 돼요 아닙니다 아내와 약속했어요 장모님을 돌아가실 때까지 잘 모시기로 제 엄마이기도 해요 그래도 아내가 제가 모시기를 바랄 거예요음 그럼 한 가지 부탁할게요 어떤 제가 집을 사 드릴 거예요 그리고 새 식구가 사는데 부족함 없이 해드리고 싶어요 이건 꼭 들어 주셔야 합니다 아까도 말했듯 고생하다 죽은 내 동생에 대한 마음과 세 사람 다 제 가족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처형의 단호한 부탁에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고맙기도 했죠 무엇보다 딸아이의 희귀병을 고칠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희 세식구는 다 같이 살게 되었고 처형이 얻어준 40평짜리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이래저래 부족함 없이 도움을 받게 되었어요 물론 처형도 근거리에 살면서 한 식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또 식당을 차르 되었어요 감사하게도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고 계시고 요즘은 걱정거리가 많이 없어요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꿈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딸아이의 꿈에도 더 나타나지 않는다고 군요 많이 보고 싶고 그립지만 오늘도 이글을 빌려 약속하고 싶습니다 수진아 너를 만난 건 나의 일생일대의 행운이었고 너와 함께한 시간들이 앞으로도 다시 없을 행복이었어 그리고 지금도 네덕에 이렇게 살아가 우리 딸 수빈이 어머님 다 잘 보살피며 열심히 살게 수진아 사랑하고 여전히 그리고 미안해 꿈 말고 더 나이 들어서
우리 다시 보자 고마워 지금까지 제 긴 사연 들어 주셔서 너무 [음악] 감사합니다 y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