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안녕하세요 저는 40대 여자입니다 저는 결혼을 좀 일찍 했어요 남편은 제가 일하던 김치공장 인근에서 용접공으로 일을 하던 남자였는데 가난했지만 저밖에 모르던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남편과 제가 회사가 가깝다 보니 종종 인근 식당에서 한 번씩 마주치곤 했는데 설량해 보이는 미소가 자꾸 눈길이 가던 사람이었어요 [음악] 그런데 어느 날 계산을 하려고 보니 식당 주인 아저씨가 그러는 거예요 의용적 공연하고 갔어 아까 저쪽에서 밥 먹고 있던 그 남자요 평소엔 선옷에 무리와 다니더니 그날은 어떤 일인지 혼자 밥을 먹으러 왔더라구요 저랑 공장 언니가 먹은 밥값을 내고 갔더니 무슨 뜻인가 싶기도 하고 혹여나 재가 아니라 언니에게 관심이 있는 걸 수도 있으니 너무 오버는 하지 말자
싶었어요 그리고 며칠 뒤 또 같은 식당에서 그와 마주쳤습니다 어쨌든 밥을 얻어먹은 입장이니까 감사히 인사라도 전할 겸 말을 걸었어요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저희 밥값을 내주셨다고 응 아닌데요 아니라고요 아닌데 주인 아저씨가 그쪽이 내주셨다고 그랬는데 아 제가 그럼 착각을 했나 보네요 잘못 낸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분명 그날 혼자 밥 먹는 걸 제가 봤는데 2인분의 값을 착각해서 더 냈다는게 이해가 가지 않더라고요 아무튼 딱 잘라서 마른 뒤 고개를 돌려버리던 그에게 더 할 말은 없었습니다 대신 전 그날 그 남자의 밥값을 내주고 갔습니다 물론 그 남자와 같이 온 다른 동료의 밥값도요 그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 남자를 식당에서 볼 수 없었어요 제가
괜히 오지랖을 떨었나 내가 밥값을 내준게 부담스러웠나 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음악] 밥을 먹고 나오는데 그 남자가 눈에 안대를 한 채 식당 밖에 서있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말을 걸 뻔했지만 참았습니다 그냥 가볍게 목인사만 하고 지나가려는데 그 남자가 절 부르더라고요 저기 저 부르셨어요 동네 언니는 눈치껏 먼저 가겠다고 하더니 자리를 비켜주었고 우리는 한동안 어색함에 말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다시 말을 꺼낸 건 저였어요 [음악] 눈은 왜 그래요 용접하다가 실수로 많이 다친 거예요 아니요 흔히 있는 일이에요 제가 아직 미숙해서 그래요 그리고 또 다시 정적이 흘렀죠 답답해서 못 참겠더라고요 전 외부르신 건데요 아 그게 그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말했습니다 그때 밥값 감사합니다 [음악] 그런데 그게 다더라고요 그 얘기 하려고 기다렸다고요 아직 그러니까 그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러고 말기에 그냥 공장으로 돌아가려던 그때였습니다 저 점심시간이 다 끝나가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밥값 실수로 낸 거 아니에요 네 그때 밥 갚는 거 일부러 낸 거예요 그때 같이 일하는 형이 옆에 있어서 저도 모르게 아니라고 잡아뗐어요 그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또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 사이로 살랑 불어오던 바람이 어쩐지 간지럽더라구요 그날 이후 우리는 종종 만나 점심도 먹고 일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영화도 봤습니다 그러다 진실을 알게 되었죠 실은 저 눈에 반했었어 그래서 자꾸 그 식당에 가서 밥
먹고 그랬는데 말을 못 걸겠더라고 그래서 한 번은 형들이 다른데 가서 밥을 먹자고 그러길래 할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혼자 그 식당으로 간 거지 마침 당신이 있기에 너무 좋아서 대뜸 밥값부터 내버리고 온 거야 하여튼 쑥맥이야 밥값만 내고 가면 어떡하냐 내가 말 거니까 정직하고 실수를 한 거라고 그러길래 내가 아니라 나랑 같이 다니는 언니한테 관심이 있나 했네 절대 아니야 난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만 보였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렇게 우린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서로 직장이 가까우니까 출근도 같이 하고 시간이 맞으면 퇴근도 같이 했습니다 그렇게 알콩달콩 지내던 중에 불현듯 시어머니가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여부 어머니 나이도 많으신데 우리가 모셔야 하지
않을까 당신 힘들지 않겠어 힘들게 무슨 그리고 아이 낳으면 어머니 도움도 종종 필요할 거야 그때 가서 합치느니 지금부터 합쳐서 같이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나요 그래주면 고맙지 사실 어머니가 늘 걱정이었거든 그렇게 우리는 학과를 해 시댁으로 들어갔어요 시어머니도 남편처럼 워낙 선량한 분이었어요 어머니 저녁 다 차려 놓으신 거예요 제가 해야죠 종일이라고 와서 무슨 저녁을 차려 내가 아무리 늙었어도 부모다 니들 밥 차려주는게 뭐 힘든 일이라고 퇴근하고 서둘러 집에 돌아와도 내일 저녁을 다 차려 놓으시는 건 기본이었고 주말에 같이 나가서 외식이라도 하자고 하면 한사코 거절하시며 둘이 나가서 재밌게 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그러시지 말고 같이 나가서 맛있는 거 먹어요 나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평소에도 밖에서 데이트하고 오고 싶으면 그렇게 해 애들 태어나면 그럴 정신도 없다 한가할 때 신혼도 즐기고 마음껏 놀아 물론 혼자 계신 어머니를 두고 어떻게 툭하면 나가서 데이트를 하겠어요 그래도 합가는 참 잘한 선택이다 싶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회사 동료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수실 사고가 좀 났어요 지금 병원으로 가는 중인데 바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그 짐 저는 남편 회사 동료들과 꽤 친했어요 다들 우리 결혼식에 와주신 분들이기도 했고 직장이 가깝다 보니 퇴근하는 길에 남편의 회식 자리에서도 종종 참석했었거든요 남편이 하는 일이 용접이다 보니 종종 사고가 있긴 했지만 회사에서 연락을 받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가보니 남편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왜 이렇게 다친 거예요 철제 더미에 깔렸어요 네 남편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였어요 결국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게 좋겠습니다 오늘 밤이 고비입니다 결국 남편은 그 밤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슬픈 것도 슬픈 건데이 사실을 시어머니께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아들 현아 보고 사신 분인데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았어요 어머니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사고가 나서 그런데 목이 매서 더 말을 못하겠는 거예요 알았다 무슨 소린지 알았어 의외로 시어머니는 차분하셨고 병원에 와서도 눈물을 참으시며 하나뿐인 아들의 마지막 길을 침착하게 배웅하셨습니다 장례가 끝난 뒤에야 시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시더라고요 아가 너도 나 떠나서 새 출발해 윤아 너까지 저렇게 되면 난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저는 그런 시어머니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평생 모실 거예요 저는 혼자 남은 어머니를 외면할 생각이 없었어요 가족으로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문제는 남편의 회사 사장이 남편의 사고를 산재로 처리해주지 않으려고 했다는 겁니다 이게 어떻게 산지가 아니에요 아니 절제덤이가 거기서 쏟아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건 우연히 일어난 사고죠 일을 하다가 일어난 사고라서 산재인 거예요 아니 무슨 그렇게 심한 말을 하십니까 이게 무슨 산업재라고 산전이 뭐니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우리 사업장이 무슨 재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잖아요 정 그러시면 제가 위로금은 조금 드릴게요 그렇지만 산재처리는 근거가 없어서 할 수가 없습니다 남편의 회사 사장은 저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남편의 통장으로 겨우 200만원을 넣었더라고요 그게 위로금인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남편의 목숨값인 것 같아 더 서러웠습니다 이후로도 여러분 사상을 찾아가 따져 물었지만 나중에는 귀찮다면서 자리를 피해버리더라고요 저는 결국 소송을 할 생각으로 남편의 직장 동료들을 찾아갔습니다 증언 좀 해주세요 변호사하고 상담하고 왔는데 남편이 사고를 당한 구역이 cctv도 없는 사각지대라서 동료들의 증언이 필수적이래요 증언이요 아주 근데 제가 사고 당하는 순간을 목격한게 아니라서 그런데 남편과 함께 밥도 먹고 우리 결혼식에도 왔던 직장 동료들이 전부 발뺌을 하는 겁니다 그래도 철제
헷갈린 건 보셨잖아요 아직 그게 저는 구출할 때 봤죠 아니지 구출한 다음에 봤어요 그래서 이게 증언이 될지 모르겠네요 다른 동료들을 찾아가 봤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졸자가 무너지는 소리에 놀라서 가보긴 했는데 제가 갔을 때는 구출되고 있었어요 철제 무너지는 소리에 가보셨다면서요 그렇죠 근데 제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이를 다 마치고 갔죠 그래서 헷갈린 건 못 보셨다는 거예요 그럼 119가 올 때까지 우리 남편은 거기 계속 깔려 있었다는 거네요 아니 뭐 그건 저도 모르죠 아무튼 저는 못 봤습니다 나중에는 기가 차서 그들에게도 따져 먹게 되더라고요 이봐요 당신 사람이야 사장이 시킨 거죠 증언하지 말라고 질문하면 자는데요 한 사람이 직장에서 일하다가 가족들과 인사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같이 일한 동료였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나온다고요 그래서 제수씨 왜 자꾸 저한테 그러세요 살 사람은 살아야죠 이건 언제든 그쪽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잖아요 이렇게 처리해버리면 나중엔 당신들도 상제 처리 못 받는다고 아무리 후소를 해도 그들은 자기는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변호사를 찾아가 봤지만 동료들의 증언이 없으면 승산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남편분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든 산재 처리를 하는게 더 낫겠지만 승산이 없는 소송을 해봤자 패소하면 돈만 더 날리게 되잖아요 차라리 위로금을 더 받는 쪽으로 제가 합의를 진행해보면 어떨까요 그 회사도 소송 걸려서 좋을 건 없을 거예요 그즘 전 너무 지쳐있었어요 변해버린 남편 동료들의 태도로 인해 사람이라면 신문이 나는 지경이었죠 저는 알아서 처리해달라고 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함께 쓰던 방 거실 부엌까지 모든 흔적이 너무 고통스럽더라고요 일하다가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는데 누구와는 남편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현실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결국 시어머니에게 부탁했습니다 어머니 저 당분간만 좀 나가서 지낼게요 이 집에 있으니까 계속 남편 생각이 나서 못 견디겠어요 그 위 생각만 하면 너무 서럽고 억울하고 보고 싶고 그래요 이대로는 제대로 살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네 마음 다 안다 너 편해질 때까지 얼마든지 그렇게 해 저는 오래 다녔던 김치공장에 휴지 꾀를 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위로하는데 나중에는 그게 더 곤혹스럽더라고요 이후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배달 일이었습니다 배달 기사로 일을 하던 어느
날 익숙한 번호로 배달 주문이 왔기에 가보니 시댁이더라고요 하이바를 쓴 채 초인종을 누르자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왜 이렇게 늦어요 음식을 받으러 놓은 남자를 보는 순간 저는 화들짝 놀라고 말했습니다 죽은 남편이 제 앞에 있었으니까요 사실 배달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어요 저희 친정이 중국집을 했거든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매달리를 도왔고 오토바이도 탈 줄 알았습니다 김치 공장을 간 둔 뒤 한동안 친정에가 있었는데 놀면 뭐 하나 싶어 배달을 대신 다녀오겠다고 했거든요 배달을 위해 오랜만에 오토바이를 탔는데 속이 다 뻥 뚫어지더라고요 비로소 그동안에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좀 추스른 뒤 원래 살던 동네로 돌아왔지만 김치공장에 다녔다가는
다시 속이 꽉 막힐 것 같았어요 결국 전 김치공장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아니 그동안 일 잘했잖아 조금만 더 있으면 관리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관두겠다고 네 다른 일 하려고요 이제 남편도 없는데 어쩌려고 그래 좀 더 쉬고 싶으면 쉬다 와도 되니까 퇴직은 좀 더 생각해 봐 아니에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 자꾸 제자리 비워두는 것도 민폐고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래요 하고 싶은게 뭔데 배달이요 뭐 배달 정확히는 배달이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어요 김치 공장을 간 둔 뒤 퇴직금을 받아 오토바이를 장만했어요 그 오토바이로 한동안 전국 일주를 다녔습니다 넓은 세상에 나가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니 사람 사는게 다 똑같더라고요
남편 잃은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 이런저런 아픈 이야기를 듣다보니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올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시댁으로 들어가는 건 아직 겁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홀가분해졌는데 또다시 남편 생각에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아 무섭더라고요 그래도 언제까지 시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었기에 인근의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배달 일을 시작했죠 그날도 배달 일을 하고 있는데 앞집 배달이 조금 늦어졌어요 갔는데 시킨 사람이 전화도 안 받고 음식을 맡겨둘 만한 장소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다음 집으로 일단 출발부터 했는데 앞집에서 전화가 온 겁니다 혹시 배달 오셨어요 네 근데 전화를 안 받으셔서 다음 주 먼저 갈 때가 가야 할 것 같아요 이미 많이 늦어서요 아니 우리 집에
먼저인데 다른 집 먼저 가겠다뇨 당장 가지고 오세요 저기 김밥 시키신 거 아니에요 다음 집은 칼국수라 음식이 불 것 같아서요 전화 안 받으셨으니까 조금만 양해 좀 해주세요 아니 내가 안 받고 싶어서 안 받았어요 화장실에 있느라 못 받았단 말이에요 그럼 앞에 두고 갔으면 되잖아요 공룡 현관문이 잠겨 있는데 어떻게 앞에 두고 갑니까 그러다 분실되면 제 책임이잖아요 글쎄 우리 먼저 갖다 주라고요 알겠습니다 이런 진상 손님 보는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었고 일단 앞집으로 돌아가는게 낫겠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그 다음 집은 배달 시간이 지났는데도 별다른 연락이 없었거든요 일단 앞집 배달을 마친 뒤 다음 집으로 가는데 마음이 너무 초조했습니다 메뉴가 칼국수에 만두였는데
다 불었으면 어쩌나 이거 제대로 컴플레인을 받겠구나 싶었죠 다음 집은 시어머니댁과 같은 빌라여서 길을 잘 아는 곳이었어요 빌라 정문에 도착해 구체적인 주소를 확인하던 저는 깜짝 놀라고 말했습니다 주문한 집이 바로 시댁이더라고요 어머니가 별 달 음식을 드신다고 지금껏 어머니가 배달음식 드시는 걸 본 적이 없었기에 설마 시댁에서 음식을 시켰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화번호도 시어머니의 번호더라구요 일단 음식을 들고 가서 현관 앞에 서긴 했는데 도저히 초인종을 못 누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구요 시댁은 당장이라도 도어락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제 집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 문을 여는 순간 또 다시 남편과의 모든 기억이 돌아와 괴로울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음식이 더 식기 전에 배달을 해야 했기에 저는 하이바를 벗지 않은 채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요 인터폰으로 저를 확인한건지 웬 남자가 버럭 소리치며 문을 열더라구요 좀 이상했습니다 시댁에 남자가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요 죄송합니다 앞집 배달이 좀 그러나 전 제 앞에 있는 남자를 보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여부 환상을 보는 줄만 알았어요 너무 오랜만에 집에 온 거니까 남편이 그 문을 열어주는 것 같은 환상을 본 건가 싶었죠 이거 꿈이야 지금 당신 내 꿈에 나타난 거야 네 여보 당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아 저 미혼이에요 그러나 그가 남편과 똑같은 얼굴로 미혼이라고 말하자 울컥 화가 나더라고요 당신이 어떻게
미혼이야 내가 당신 와이프인데 아니 배달도 늦게 오셨으면서 웬 헛소리까지 그 남자가 배달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예 분명 남편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는데 태도하며 표정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아니 칼국수랑 만두를 시켰는데 이렇게 늦게 오시면 어떡해요 혹시나 사고 날까봐 전화는 안 했는데 이건 좀 너무하죠 얼른 주세요 다 본관인지 모르겠네 그러면서 음식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는데 자꾸만 남편과 겹쳐 보이는 겁니다 저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고 그 집이 시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였어요 좀 늦을 수도 있지 뭘 그래 엄마 시장 아시잖아요 아유 괜찮아 저기 기사 양반 괜찮으니까 조심히 가요 그러나 그 남자가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저는 저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저는 문을 붙잡았어요 아니 기사 양반 왜 그래요 시어머니가 당황한 얼굴로 저를 봤습니다 양반이 아닌가 여자분인 것 같네 제가 하이바를 벗자 시어머니는 화들짝 놀라셨습니다 화가 시어머니의 말에 남편과 똑같이 생긴 그 남자도 저를 봤어요 다시 봐도 너무 남편과 똑같아서 저는 시어머니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어머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저 사람 우리 그의 맞죠 어떻게 된 거예요 살아난 거예요 근데 기억을 잃었어요 시어머니는 난처한 듯 보였습니다 그게 말이가 어머니 얼른 말해주세요 저 사람 그이 맞잖아요 시어머니에게 아들은 남편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제 남편이 아니고서야 다른 누구라고 설명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얼른 들어와 내가 다 설명하마
마침 시댁이 마지막 배달지었습니다 저는 일단 안으로 들어갔어요 분명 제가 살던 집인데 남편처럼 보이는 남자가 안에 있자 선뜻 들어갈 수가 없더라구요 참 이상한 순간이었습니다 분명 남편이 그 집안에 있는데 낯선 그림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내 아들이다 시어머니의 말에 저는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거죠 그이 맞는 거죠 부엌에 있던 그 남자도 거실로 나왔습니다 엄마 왜 안 오시고 배달 기사를 집으로 들인 거예요 그러나 그 남자도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어 혹시 맞아네 제수씨야 어머니 그게 무슨 제수씨라니요 저는이 사람 안 해줘 저는 남편이 기적적으로 사라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기억을 잃어서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고 믿었어요 그러나 시어머니는 저를 다독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많이 닮았지
내 큰아들이야 온몸이 큰아들이라니요 5번이 아들은 우리 그이 하나였잖아요 혹시 충격 때문에 뭔가 기억이 잘 안 나세요 아니야 나 기억 멀쩡해 그러자 그 남자가 저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라고요 아까는 헬멧을 쓰고 계셔서 얼굴은 못 알아봤어요 제 동생은 결혼 사진에서 봤습니다 처음 뵙습니다 저는 그 녀석 형이에요 그러면서 저에게 손을 내미는데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여전히 남편이 저에게 손을 내미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 손을 잡는데 알겠더라고요 그는 제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제 남편은 늘 손이 뜨거운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손이 너무 차갑더라고요 이거 꿈 아니죠 꿈 아닙니다 저 그 녀석 형 맞아요 그런 얘기들은 적이 없어서 저는 시어머니를 봤습니다 시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고 계셨어요
나도 둘째도 말을 안 해줘서 그래 우린 얘가 죽은 줄만 알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진짜로 우리 그이한테 형이 있었다고요 알고보니 그 남자는 정말 제 남편의 형이었어요 우리 집이 워낙 가난했다 보니 큰애가 사춘기 때 방황을 많이 했어 시어머니의 말씀에 아주버님은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애가 머리가 똘똘했는데 대학에 보낼 돈이 없었거든 그땐 나도 혼자 아들들을 키우려니 사는게 버거울 때였어 아이가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내가 매정하게 그랬거든 우리 집이 너 대학 보낼 돈이 어디 있냐고 그 돈이 있으면 함께라도 따뜻하게 먹고 살아야지네 생각만 하느냐고 엄마가 와도 매정하게 그러시니까 우리 마음이 너무 서럽더라구요 그때 어머니의 입장을 헤아릴 수가 없었어요 실은 어머니 말씀대로
제가 이기적이었던 거죠 동생은 못 먹어서 얼굴에 버짐이 피어있는데 나는 내 욕심껏 살고 싶었으니까요 그게 어떻게 욕심이야 그 나이에 갖는 당연한 포부지 실은 내가 그걸 못 해주니까 속이 상해서 더 뭐라고 했던 거야 해주고 싶어도 해주겠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었거든 그 후 아주버님은 집을 나가버렸고 이후로 연락이 뚝 끊겼다고 했습니다 얘가 집을 나가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 거야 실종신고도 하고 다 해봤는데 찾을 수가 없더라고 결국 나랑네 남편은 큰애가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했어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연락을 안 할 애가 아니었으니까 그 생각만 나면 밤새 우는 날도 많았어 내가 어디서 고생을 하다가 지도사도 모르게 세상을 떠난
건 아닌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싶어서 그냥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줄걸 그냥 보내준다고 말이라도 해서 붙들어 놓을걸 싶었지 엄마가 제가 집 나갈 줄 어떻게 아셨겠어요 야반도주 아들 사라졌는데 모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제야 눈앞에 있는 사람이 남편이 아니라 아주버님이라는게 믿기더라구요 그래서 아주버님은 왜 연락을 안 하셨던 거예요 사실 엄마에 대한 미움이 늘 있었어요 엄마랑 아빠가 같이 트럭을 타고 장사를 다니셨는데 엄마가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나서 아빠가 돌아가셨거든요 그 후로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도 안 탔고 엄마가 써준 도시락도 안 먹고 엄마가 하라는 건 하나도 안 했어요 돌아보니 그때가 사춘기였더라구요 제가 대학에 가겠다고 하니까 엄마가 대학보단 일단 취업을 해서 나중에 대학 가는게
어떻겠냐고 했는데 반항하고 싶은 마음만 들더라고요 엄마는 아빠를 죽여놓고도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는구나 내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집을 나가서도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죠 이제부터는 평생 볼일 없다고 생각하면서 지냈으니 연락을 했겠어요 그래도 그 어린애가 혼자 사는게 쉽진 않았을 텐데 그래 그래서 나도 얘가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 엄마가 못 찾게 하려고 배를 탔어요 배 타고 중국으로 갔죠 이야기를 듣던 시어머니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내가 얼마나 미웠으면 그 어린애가 배를 탈 생각을 다 했겠니 제가 철이 없었어요 겁이 없어서 그런 거죠 뭐 그렇게 갔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어도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그땐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그럼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이제 막 3일 됐어 안 그래도 너한테 연락을 하려던 참인데 기가 배달 기사로 떡하니 온 거지 아까는 진짜 남편인 줄 알았어요 너무 닮아서 어릴 때부터 나이 차이는 좀 있는데 쌍둥이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 그러고 보니 아주버님이 나이가 좀 더 많아 보이긴 하더라구요 그이가 없어서 많이 놀라셨죠 실은 알고 왔습니다 네 먼 중국 땅에서 연락도 안 하고 지내던 사람이 어떻게 동생의 부고를 알고 온 건지 의아했습니다 사실 제가 회사를 운영하는데 동생이 다니던 회사에 가장 큰 고객이었어요 정말요 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회사 사장이 중국으로 저를 만나러 왔었거든요 재계약을 앞두고 있거든요 와서
비싼 식사도 대접하고 그러길래 흥이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대뜸 최근에 자기 회사에 골치 아픈 일이 있었다면서 사장 노릇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직원 하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요 사장이 아주버님에게 말한 그 사고는 제 남편이 당한 사고였습니다 원래 같으면 산재 처리할 만한 일도 아니었는데 그 와이프가 와서 고소하겠다고 난리를 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처리하셨어요 그 직원이 진짜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산재 처리해 줬죠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산재 처리해서 제가 좋을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직원들 아끼는 마음으로 했죠 잘하셨네요 그래도 내 회사에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났으면 책임지는 마음을 가져야죠 외장님은 제 마음 알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아 제가 이렇게
힘들게 산다니까요 그 사장은 아주버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이 한 선행과 누구에 대해 열심히 떠들어댔고 아주버님은 그 얘기에 재계약을 마음먹었다고 했습니다 저랑 오래 계약을 한 사정이라 저를 잘 알았던 거죠 우리 회사가 약자들을 돕는 사업가 기부도 많이 하고 있었거든요 말도 안 돼요 그 사람 우리 남편한테 산재 처리 안 해줬어요 예 저도 압니다 처음엔 그 사장 말을 믿고 비서에게 재계약 서류까지 준비하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비서가 그 사장과 전혀 다른 보고를 하더라구요 회장님이 회사랑 재계약하실 생각이신가요 얼마전에 철제 더미가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어 그래 그래서 직원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라구요 아주버님은 그저 사고의 내용을 알게 됐고 그 정도면 산재 처리를
당연히 해줘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었데요 전자처리가 필요 없는 일인데 해줬다고 한 말이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비서에게 진상을 좀 더 알아보고 한 뒤 제 계약을 미뤘죠 그리고서 알아보니이 사람이 산재 처리를 안 해줬더라고요 산재 처리를 안 해준 것도 비도덕적인데 나한테 와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고 나니까 어이가 없더군요 저는 그간의 설움을 아주버님께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가서 애원했는데요 우리 남편 열심히 일하다가 이렇게 된 건데 산재 처리를 안 해주는게 말이 되냐 이건 내 남편이 열심히 일한 시간을 외면하는거다 설득도 해보고 동료들한테 증언도 부탁했는데 사정이 시킨 건지 다들 사고 상황을 직접 본게 아니라고 증언을 못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다만
그 회사 상황을 직접 보고 재계약을 결정하려고 한국에 왔어요 어쨌든 기존에 거래하던 곳인데 해명 기회도 주지 않고 재계약을 무산시킬 순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주버님은 불씨의 남편이 다니던 회사 사장을 찾아갔고 그는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더랍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니 그게 아니면 중국에서만 뵙다가 여기서 배니까 제가 알던 사람이랑 많이 닮으셨네요 제가요 아주 아닙니다 제가 무슨 헛소리를 아유 한국을 다 오시고 오전 일이십니까 아주버님은 그때부터 느낌이 이상했대요 그 사장이 너무 당황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과 그렇게 닮은 사람이라면 동생밖에 없을 테니까요 사실 처음 그 회사의 계약 기회를 준 건 그 회사가 제 고향동리에 있어서였어요 그런데 그 사장이 절 보고 누굴 닮았다고 했다가
말을 황급히 얼버무리니까 이상할 수밖에 아주버님은 그 사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해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직원 인사기록 좀 볼 수 있습니까 산재 기록까지 전부 다요 제 기억을 원한다면 보여주세요 확인할게 있어서 그럽니다 결국 사장은 아주버님 앞에 남편의 인사 기록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부러 그런 건지 사진을 뗐더래요 그런데 그 이름을 어떻게 모르겠어요 그 녀석이 인사 기록을 보는데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해서 힘들었습니다 그 사장에겐 치느냐고 싶지 않았거든요 아주버님은 사장의 말과 달리 산재 처리가 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고 사장은 허둥지둥 둘러댔다고 합니다 아이 그게 아니라요 회장님 지금 산재 처리 중인데 아직 처리가 끝나지 않아서 철이 되지 않은 걸로 기록된 겁니다 돌아가신지 몇
달이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산재 처리가 안 된 건 회사가 승인을 하지 않은 거 아닌가요 아유 그러니까요 제가 하라고 했는데 담당자가 실수로 누락을 했다지 뭡니까 저도 회장님 덕분에 오늘에서야 알았어요 제가 서둘러 처리를 하라고 하려고요 그럼 지금 하시죠 제가 보는 앞에서 그게 시간이 좀 지나서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해서요 그럼 철이 되면 연락하세요 재계약은 그때 다시 논의하죠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아주버님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 인간 애초부터 할 생각 없었어요 저도 압니다 그런데도 재계약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아니요 이미 늦었죠 네 아주버님은 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제수씨 제가 그 녀석을 다시 살릴 순 없어도
제수씨 힘들었던 건 다 풀어 드릴게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주버님이 중국에 있는 회사의 주인이라는 것 정도는 인지했지만 그 회사가 얼마나 큰지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냥 제 맘을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웠고 적어도 그 회사랑 재계약은 안 하시겠구나 싶어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그 일로 그 회사도 큰 고객을 놓쳤으니 손해가 클 거 아니에요 돈 때문에 상자 처리도 안 해주더니 결국 돈으로 손해를 보는구나 싶었죠 그날 이후 저는 시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주버님도 당분간은 시댁에서 지낸다고 했지만 일어나보면 늘 집에 계시질 않더라구요 사실 저는 아직 궁금한게 많았어요 어머니도 꽤 놀라셨겠어요 갑자기 아주버님이 돌아오셔서 몰라도마다 눈앞에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큰애가 나타났는데
그 사장님이 보여준 인사 기록에서 보니까 집 주소가 그대로더래 어머 그럼 그때부터 계속이 집에서 사신 거예요 애가 살아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사는 못 가겠더라고 내가 언제라도 찾아올 것만 같아서 그 덕에 다시 만나신 거네요 근데 어머니 어머니는 안 헷갈리셨어요 전 처음 봤을 땐 진짜 우리 그이인 줄 알았어요 그래도 내가 엄마잖니 보는 순간 알겠더라고 시어머니는 아주버님을 끌어안고 한참을 우셨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하늘이 나를 버리지도 않는구나 싶더라고 둘째를 보는 아픔이여 평생 가겠지만 첫째라도 돌아온게 얼마냐 싶었어 나는 개가 동생 간 건 모르고 온 줄 알았는데 이미 알고 있어서 더 놀랐지 뭐 오랜만에 배달을 쉬며 시어머니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였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받았는데 남편이 다니던 회사 사장이더라고요 제가 만나뵙고 좀 드릴 말씀이 있는데 회사로 좀 와주시겠습니까 전 할 말 없는데요 전제문제로 연락드린 거예요 오시는게 이득이실 텐데요 사장은 상당히 건방진투였습니다 그러니까 인심 써둘테니까 나더러 와라 이거예요 솔직히 말해 인심 맞죠 그동안 그 친구가 열심히 일한 것도 있고 이제라도 처리해 드릴까 하고 있으니까 일단 와보세요 맘 같아선 당장이라도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가보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더하려고 일어나 궁금하더라고요 갔는데 사장이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일어날 생각도 안 하는 거예요 어서 안주세요 그러면서 턱 끝으로 소파 자리를 가리키더군요 기도 안 찼지만 일단 앉았습니다 선조 처리해 드릴테니까 사진 몇 장
찍어줄 수 있죠 곧이어 여러 번 분 사장 비서가 사진기를 들고 들어오더라구요 그럼 찍을까요 그러나 전 비서에게 가서 사진기를 빼앗았습니다 아니 왜 이러세요 사진 안 찍을 거니까요 그러자 사장이 버럭 화를내는 겁니다 아니 해달라고 난리칠 땐 언제고 사진 한장 안 찍겠다는 거예요 가는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산재 안 받아요 그럼 됐죠 저는 그대로 사장실을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제야 사장이 달려와서 저를 붙잡더라구요 아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사장님이야말로 갑자기 왜 이러세요 산재 처리할 만한 일도 아니라면서요 남편 동료들 입단속도 제대로 해두셨던데 이제 와서 왜 이러세요 아니 글쎄 이제라도 해드린다니까 아유 알겠어요 사진 찍지 맙시다 그냥 도장만 짓고 가세요 글쎄 더럽고
치사해서 안 받는다고요 아니 도장 하나만 찍으면 끝인데 왜 안 받아요 주는 건 사장님 마음이고 안 받는 건 내 마음이에요 아니 남편 생각을 하셔야지 그건 남편의 누구를 인정받고 싶다면서요 해 준다니까 사장님이 안 해줘도 우리 남편 열심히 산 거 우리 가족들이 기억하니까 됐어요 전 이만 갑니다 그 사장의 속을 제가 모를 리가 없잖아요 남편 선재 처리해주고 아주버님 회사와 수월하게 재계약을 하고 싶은 거겠죠 그 회장이 내 남편의 형인 줄도 모른 채 말이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제는 남편 회사 동료들이 저에게 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수씨 선재 받으면 좋은게 얼마나 많은데 왜 안 받으세요 사실 제가 사장님 때문에 그동안 말을 못했어요 이제라도 필요하시면
제가 증언할게요 제가 이제 와서 증언 필요할 일이 어디 있어요 그래도 혹시 도움은 필요할 때 줘야 도움이죠 아닌지 도움도 아니지 사실 좀 말해 달라고 했는데 입속 다물었던 분이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또 다른 동료들도 산재 처리를 받는게 좋지 않겠냐며 자꾸 훈수를 두기에 전부 번호를 차단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애원할 때는 한 번을 안 도와주더니 이제 또 사장이 시키니까 저한테 전화를 건 모양이었어요 그래도 제가 듣질 않으니까 그 사장이 선물바구니를 들고 집까지 찾아오더라고요 아니지 사장님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저도 며느리도 이제 산재철이 필요 없다니까요 어머님 제가 그 친구를 얼마나 아꼈는지 모르실 겁니다 예 전혀 모르겠어요 예 이제 와 이래봤자 달라지는
거 없으니 돌아가세요 사실 그때 아주버님도 집에 계셨거든요 저랑 아주버님은 숨죽인 채 그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머 우리 어머니 맞으세요 저렇게 매몰차게도 말씀하실 줄 아는구나 젊을 때는 더 하셨어요 그땐 살기 어려워서 더 그러셨겠지만 그렇게 전 시어머니의 새로운 모습도 보고 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는 사장님 모습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정도로 속이 꽤 시원했어요 며칠 뒤에 아주버님은 중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일이 많아서 일단 가서 처리를 좀 하고 또 오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듣게 됐죠 세상에 둘째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났다는구나네 어쩌다가요 원래부터 사장이 비리가 많았던 모양이야 그게 다 들통나는 바람에 투자처도 다 잃고
망했대 어머 둘째가 깔린 철재 관리도 엉망이었다더라 안전관리를 제대로 아는 것도 다 걸린 모양이야 몹쓸 인간 같은이라고 그래놓고 지들은 책임 없다고 발뺌이나 하고 불쌍한 내 아들 그제야 저는 아주버님이 꽤 영향력 있는 사업가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버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주버님 어떻게 하신 거예요 남편 다니던 회사 제기 불능인 것 같더라고요 사실 마음이 좀 무거웠어요 남편을 외면한 사장과 동료들이 믿긴 했지만 직장을 잃었을 다른 직원들을 생각하니 맘이 편하지 않더라구요 어미를 말하자면 제가 한 건 거래를 끄는 거랑 과실에 대한 신고를 한 것 뿐이에요 그 사장이 평소에 회사를 건실하게 잘 운영을 했다면 제가 거래를 끊는다고 망하기까지 했을까요 좀 힘들기는 해도
다른 거래처를 타서 운영을 이어갔겠죠 하긴 그런 사람이니까 그이한테도 그렇게 못되게 굴었던 거겠죠 그럼요 제가 아무리 동생 일로 화가 나도 멀쩡한 회사를 망하게 할만큼 기업 윤리가 없는 사람도 아니고요 그 사정은 정당한 대가를 치는 것 뿐이에요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제 동생 덕에 부도덕한 거래처를 하나 걸렀습니다 안 그랬으면 이번에도 재계약을 했을 거고 그런 사람의 배를 불려줬을 테니까요 조사해 보니까 직원들 체납도 꽤 있더라고요 정말요 저희 남편은 채널까지는 아니었고 좀 늦게 들어온 적은 여러 번 있었어요 제납은 전에 있었던 일이고 그 직원들은 항의하다 못해 결국 관두고 회사를 나갔더라고요 그 사정은 과실치사로 감옥에 갈 겁니다 진짜 나쁜 사람이었네요 직원들은
뭐 먹고 살려고 그리고 아직 확정은 아닌데 그 회사 건실한 기업에서 인수해서 운영할 예정이에요 그럼 전에 있던 직원들도 다시 복직할 수 있을 거고요 어머 정말요 예 제가 아는 회장님께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인수하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남편 회사의 사장은 악독한 행실에 대한 대가를 치렀고 그 회사를 완전히 떠나게 됐습니다 그 일이 없었다면 어쩌면 아주버님은 더 오랜 시간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겠죠 사실 늘 돌아오고 싶었어요 다만 떠나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용기가 나질 않았죠 동생 덕에 다시 어머니를 찾아올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물론 그 녀석을 다시 못 보게 된 건 여전히 가슴 아프지만요 조금만 더 일찍 올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남편의 억울함을 다 풀어주고도 아주버님은 여전히 후회가 남는다고 했습니다 아주버님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사셨고 저희 남편도 그랬어요 예 그렇지만 두 번 다시는 이렇게 가족의 부고를 듣고 싶진 않네요 그래서 말인데 제수씨 어머니랑 같이 제가 사는 곳으로 가는 건 어떠세요 갑작스러운 재연이라 저는 좀 당황했어요 시어머니의 아들이니까 따라가시는게 당연하겠지만 저는 이제 남편도 없는데 괜한 짐이 될까 걱정이었습니다 아주버님 저는 괜찮아요 어머니만 잘 부탁드려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남편 떠나고 어머니한테는 자식 하나 없는 것 같아서 늘 마음이 쓰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평생 모시고 살 생각이었는데 이제야 저도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그러니까 제수씨도 같이가 주셔야죠 우리 가족이신데 가서 하고 싶은 일이든
공부든 다 하시고 편하게 누리세요 제가 모든 다 해드릴게요 결국 저는 시어머니와 함께 아주버님을 따라갔습니다 많이 고민했지만 그 즈음엔 어머니도 아주버님도 제 가족 같아서 따로 살 생각도 못하겠더라고요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요즘도 가족끼리 종종 얘기하곤 합니다 남편이 우리 가족을 다시 이어준 거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서로 의지하며 더 행복하게 살아가려고요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요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