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안녕하세요 저는 60대 후반 할머니입니다 제가 이렇게 사연을 이야기하게 된 이유는 며느리와 아들놈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는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몇 년 만에 어렵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다가 몇 년 만에 생긴 아들이라 정말 귀하게 키웠습니다 금이야 옥이야 땅에 내려놓으면 다칠까 그렇게 애지 중지하며 키웠던 아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식을 그렇게 키운 저희 부부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아들을 키워서 2년 전에 결혼을 시켰습니다 저희 남편은 공무원으로 은퇴하여 현재 연금이 나오고 있어서 둘이서 사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이 살고 있고 아들이 결혼을 한다고 하니 반갑기도 했습니다 빨리 손주를 보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그렇게 결혼 전 며느리
감이라고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얼굴이 뽀얗고 몸이 많이 말랐더라 그요 저는 사실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 아이 낳고도 많이 아팠었고 고생을 많이 해서 조금은 건강한 아이였으면 했지만 아들이 좋다고 하니 저희도 흥쾌히 허락을 했습니다 며느리는 말이 별로 없을뿐 아니라 굉장히 예민했는데 저희 집에 오면 음식을 차려줘도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입맛이 없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과 저는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요즘이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먹는데 불편하면 편한 대로 하라고 하니까 음식에 손을 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결혼해서 잘 사는 듯 보였어요 저희도 특별한 집안 행사 때가 아니면 아이들에게 딱히 연락을 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잘 살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을 했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했습니다 고맙고 흐뭇했습니다 적적하다 차의 임신 소식을 들으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낳았고 찾아가서 산우 조리에 보태라고 용돈을 제법 두둑하게 주고는 우리는 바로 나왔습니다 손주는 정말 예뻤는데 며느리의 눈치가 보였거든요 워낙 예민한 며느리라 신경이 쓰일까 싶어 바로 나오는데 아들 녀석이 따라 나오더니 아이 나은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저희에게 아이를 돌봐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랬습니다 아니 아이 나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렇게 급하냐 그랬더니 아들 녀석이 며느리가 직장에서 지금까지 쌓은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릴까 봐 걱정이 많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너무 빨리 낳은 것
같다고 며느리는 집에서 애나 키우면서 전업 집으로는 못 산다고 매일 밤 온다고 합니다 친정 부모님은 두 분 다 일을 하셔서 아이를 봐주실 수 없으니 엄마가 봐주면 안 되냐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상의를 하는데 남편은 강하게 반대를 하더라고요 이제 은퇴하고 둘이 여행 다니면서 그렇게 살고 싶은데 몸도 약한 제가 아이를 돌보다가 병이라도 날까 봐 걱정이라고 거절하라 하더라고요 그리고 남편은 며느리가 워낙 예민해서 아이를 돌보다가 계속 부딪히지 않겠어 그냥 아이 돌보는 사람을 찾으라고 하던지에 엄마가 직접 보라고 해라며 심하게 반대를 하더라고요 그때 남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많이 후회가 됩니다 그
뒤 아들 녀석은 저에게 전화를 계속하여 아이를 돌봐 달라고 졸랐고 저도 차마 아들 여성 말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러겠다고 승낙을 해 버렸습니다 사실 손주가 눈에 밟혀서 손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았습니다 얼마 뒤 며느리는 출산 휴가 3개월이 지났다며 손주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때부터 선주 유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선주 키우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선주 때문에 잠도 잘 못 자고 할 일이 태산이었는데 끝이 없는 육가 활동에 지쳐 진절머리 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이 있어서 많이 도와주었지만 손주를 데리고 온 뒤 남편과 다툼의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손주를 맡긴 뒤로 며느리가 사사건 건 전화로 취조하듯이 묶거나 명령조로 이야기를 해서
남편은 아주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어느날 며느리가 집안에 CCTV 설치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며느리가 말을 참 직설적으로 하 집으로 와서 남편과 저를 보며 어머니 며칠 후에 CCTV 설치하는 분이 올 거예요 그럼 안방이랑 거실에 설치하시면 돼요라고 말을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은 그동안 참았던 것이 터진 것처럼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이 집이 내 집이냐 누 마음대로 CCTV 설치해 그런데 며느리의 그 다음 말이 더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저는 어머님이 제 이야기를 잘 못 살아 들으셔서 아기 상태를 CCTV 보면서 설명하려고 그랬죠 그런데 왜 화를 내시 거예요 그 말에 남편은 어디서 배워먹은 행동이야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 아주 웃니라며 고함치며
화를 내기 시작했 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못 믿겠으면네 자식 네가 키워라 그랬더니 며느리가 엎어져 울기 시작합니다 한참 울더니 벌떡 일어나 하는 말이 아버님이 도대체 왜 화를 내시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옆에서 보고만 있던 아들놈은 부모님에게 따집니다 자기 마누라한테 왜 그러냐고 도리어 저희에게 역정을 내고 있고요 참 기가 막히더라고요 제가 말리고서야 일단락이 되긴 했지만 남편은 손주를 그만 애들한테 보내라고 성화이 저도 참 많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며느리가 예민한 줄은 알았는데 직접 부딪혀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한 정도였습니다 주말에는 며느리가 우리 집에 방문하면 집에 먼지가 너무 많아서 아이 호흡기에 안 좋아요 어머님 환기 제때 시키고 있죠 아이 분유병 속이 청결하지 않은
것 같은데 소독하고 있어요라며 무슨 검사관이 조사하이 말을 했습니다 방바닥에 머리카락 하나 떨어져 있는 꼴을 보지 못하고 아이가 먹으면 어떻게 하냐고 제게 잔소리를 하더군요 그때 쯤 저도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던 식이라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청결하지 못하고 부지런하지도 못해서 못 키우겠어네 자식 네가 데려가서 키워 그랬더니 며느리가 정말 날 보고 그럽니다 어머니 아버님이 돈이 많으셔서 유산 주실게 많이 있으시면 저도 집에서 애만 보고 살고 싶어요 근데 어머님 아들이 능력이 안 돼서 제가 돈을 안 벌면 집은 언제 사고 애는 무슨 돈으로 키워요 다른 집들은 시부모님이 집 사주셔서 시작부터가 달라요라며 저에게 도끼를 품고 말을 하더라고요 아들놈은 옆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고요 진짜
기가 막히더라고요 아니 요즘 애들은 다 이런 건가요 그날 아들 며느리를 보내고 남편 붙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희가 집을 못 사줬지만 전세 구에서 그 집에서 살고 있는 그게 못 마땅했던 것인지 그 전세집 명이가 아들 명이가 아니고 제 명이라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고 그 정도 여유도 있고 하니 아들 명이로 집을 사 주자고 했지만 남편은 아들이 독립심이 생길 때까지 그러는게 아니라고 한사코 말리더라고요 만에 하나 과부 되어 저 혼자 남게 되면 돈 없어 애물단지 취급 받는다고요 며느리가 하는 행동을 보니 남편말이 맞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뒤 우리 부부와 며느리는 극도로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사실 며느리가 밉게 나오니 손주도
예뻐 보이지도 않고면 클수록 더 힘들게 하고 저도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 많아집니다 그러다가 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선주가 걷기 시작하면서 더 분주해 졌는데 하루는 신나게 걷다가 뛰다 가를 반복하더니 제가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아이가 넘어졌습니다 넘어지면서 바닥에 있던 장남감에 이마를 부딪혔는지 이마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지 이마의 피는 흥건하지 남편과 어찌 할 바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정신 차리고 병원에 데려가서 아이 이마 상처를 소독하고 왔습니다 의사가 큰일 아니라고 괜찮다며 많이 놀라셨겠어요 저희 부부를 위로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의사가 괜찮다고 하는 말을 듣고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다쳐서 병원에 왔는데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잠시 후 며느리와 아들이 방으로 들어오더라고요 저희 부부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잠이든 아이를 살피더니 며느리가 저에게 도대체 애를 어떻게 보신 거냐고 따지듯이 묻는데 그 태도가 안 아무 인격이고 시퍼런 눈과 대하는 태도가 식모 취급하 듯하여 분이 격히 마주본 며느리에게 이게 어디서 배운 버리자 머리냐 야단 치면서 머리를 그리고 나서 내가 잠깐 한 눈 파는 사이 순식간에 애가 넘어진 것이고 그는 아이는 넘어질 수도 있고 그러면서 크는게 아이라고 하니까 번개 같은 속도로 며느리가 제 뺨을 내리치는 겁니다 하도 귀가 막혀 멍해졌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하더군요 애 옆에서 시도 떨어지지 말아야죠 그게 애보는 사람 기본 아닌가요 라고요 저는 그때까지도 너무
놀라서 멍이 있는데 옆에 있던 남편이 며느리의 뺨을 똑같이 내리쳤습니다 살다 살다 너 같은 못된 년은 처음이다 라면서요 남편은 원래 욕이라고 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남편이 욕을 하며 며느리와 아들에게 나가라고 어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너희들 안 보고 살아도 되니까 당장 꺼져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와중에 아들놈은 우리 마누라 왜 때리냐고 남편에게 대들고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습니다 창피하고 억울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자식 잘못 키운 저희 잘못이죠 그렇게 그날 밤 우리 부부는 평소 먹지도 않는 소주를 사아 놓고 둘이 마시면서 밤새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이 말하더군요 그냥 자식 없는 치자 며느리 욕할 필요도 없어 요즘 세태가 그런가 보 우리 집
말고도 집집마다 더한 집안도 있을 거야 자식 잘못 키운 내 잘못도 크지만 공무원하면서 죽으라고 일만하고 재테크에 신경 못 쓴 내 잘못이 한목 한 것 같네라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 아들놈은 다 날 아이 어떻게 할 거냐고 저에게 전화하는데 이런 미친놈을 자식이라고 제가 지금까지 애지 중지 키웠네요 우선 남편이랑 휴대폰 다 꺼버리고 짐을 쌌습니다 저희는 큰 돈은 없지만 지금 있는 돈이면 앞으로 충분히 먹고 살 정도는 됩니다 그냥 우리는 우리들끼리 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아들놈이 전세로 살고 있는 집 전세를 빼 달라고 했습니다 급하니까 최대한 빨리 빼 달라고요 저희는 그렇게 아들 며느리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남쪽 바닷가 지방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해 곧 실행할 계획입니다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을 다른 사람에게 전세 내놨다고 하니까 아들 집에 난리가 났죠 부동산 사장님이 무슨 일이냐고 궁금해하더라고요 그뒤 아들놈이 전화를 하고 난리가났습니다 전화통에 불이 나더라고요 조금 있으니 며느리도 전화를 합니다 전화를 안 받으니 문자를 해서는 잘못했다 잠깐 생각이 못 미쳤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대꾸를 안 하니까 그 다음날 어머니가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느냐 이혼하겠다라고 협박도 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돈까지 전화를 하고 아주 발등의 불이 떨어졌겠죠 그렇게 저희는 휴대폰 꺼놓고 며칠 후에는 폰 번호까지 싹 바꿔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작은 중고 캠핑카 하나 계약했습니다 둘이서 여행 다니면서 조용히 살 거지만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너무 슬픕니다 그 뒤 자식 놈과 며느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소식을 모르고 있습니다 귀한 자식 키 운정이 그립고 가끔 선주가 보고 싶지만 마음을 내려 놓고 미련을 지웠습니다 며느리한테 뺨맞은 엄마를 모르는 체하는 아들을 생각하니 자식 교육 잘못시킨 내가 죄인이고 내 팔자가 [음악] 원망스럽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잊고 살려고 합니다 저 마음을 어디 하소연도 못 하고 실어보낼 수 없습니다 밤마다 우는 소쩍새 울음 소리에 내 하늘 몰래 스며들게 하고 싶습니다 자식 잘못 키운 엄마가 신세 한탄하며 눈물로 썼습니다 고맙습니다이어서 사연 하나 더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내 나이도 60 중반 평생 밉던 예쁘든 아이들 키우는 재미로 살고 이제야
평화로운 노년을 꿈꾸고 있습니다 열심히 돈는 자식들 뒷바라지 하는데 모두 쏟아 부었고 대학까지 보낸 후에야 온전히 나만을 위한 노후 자금을 모으기 시작하였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내내 도심에 살긴 했었지만 그동안에 삶에 많이도 지쳐 있었습니다 청춘 다 갈아내며 모은 돈은 자식들에게 다 들어갔어도 한 번도 사회생활 쉰 적이 없었던게 다행인 건지 짬짬히 모아 두었던 돈으로 고향 시골 마을에 조용한 집을 얻었죠 처음에는 자식들이 이제 엄마 보고 싶으면 그 먼곳까지 찾아가야 하네 엄마 아프면 병원은 어떻게 가려고 그냥 여기 있어 하며 서운한 티를 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어 누군가 지어 놓은 전원 주택을 하나 사코 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렸을 적 친구
동네에 사시던 아주머니들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저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내심 이제는 외지인 취급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다 그요 시집 가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던 마을의 모습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더러는 주변 농사 짓는 이에 논이나 밭에가 소일거리를 하고 돈을 받기도 하였 그렇게 시골 사리에 적응해 나가는 동안 자식들은 저마다 좋은 짝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엄마 나 잘 살게 아기 가지면 엄마도 자주 보러 갈 거야 눈물 지으면서 말하는 딸 그런 딸에게 그냥 너만 잘 살면 돼 엄마도 알아서 잘 지낼 테니 걱정하지 마 하고 얘기해 주는 수밖에 는 없었습니다 큰 아들이야 워낙 오래 전부터 출가에 혼자 살고 며느리도
시댁이라 나를 멀리해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나의 서른이 다 되어 갈 때까지 품만의 자식이었던 딸은 달랐습니다 결혼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저에게 전화의 눈물 빠라미 일수였죠 엄마 나 너무 힘들어 결혼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집안일은 끝이 없고 회사 일도 제대로 못 보고 애는 어떻게 가죠 하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서요 그런 딸에게 저는 아기 가지면 더 힘들 게다 너 같은 성격이면 더 할 거야 잃는 것도 많지 하며 어줍잖은 위로를 해 주었어요 그럼 딸은 저에게 그렇게 힘든데 엄마는 자식을 왜 둘이나 나왔어 하고 물어보 저는 곰곰히 생각하다 너네 오빠는 첫째라 모든게 서투르고 조심스러웠다 men 너 키울 때는 그제서야 여유도 생기고 사랑으로
볼 수 있게 되더라 그 사랑으로 버티고 키웠지 하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딸은 그 말을 듣고도 아직은 응석 밖에 못 뿌리는 아이인 것 같았죠 실제로 결혼하고 1 2년 간은 한 달에 한 번은 꼭 저를 찾아왔습니다 딸 내 집에서는 왕복 두시간 거리 사위도 힘들고 고될 테지만 딸 아이를 따라서 꼬박꼬박 제대로 된 카페도 흔하지 않은 시골로 내려와 주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시골로 내려온 딸이 선물이라며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여행 다녀오면서 엄마 선물도 사 왔지 열어봐 장모님 얼른 열어 보세요 하고 보채는 딸의 부부를 보며 뭔가 싶어 기쁜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 보았습니다 상자 안에는 한 사진이 있었는데요 한 눈에 무슨 사진인지
알아보겠다고 너 너네들 아기 가졌냐 정말이야 하고 들듯 목소리로 물어보았습니다 딸은 눈물까지 글성 거리며 응 엄마 나도 이제 엄마 된대 8주 정도 됐어 하고 저에게 다가와 와락 안겼습니다 저도 딸이 장하고 고마워 잘했다 잘했어 초기인데 조심해야지 왜 또 여기까지 내려와 전화로 말해도 되는데 하고 딸의 등을 토닥여 주었습니다 사위도 저희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고 다른 눈물을 흘리면서 초음파 사진을 보며 종알종알 떠들기 시작했습니다이 조그만게 내 기래 진짜 신기해 엄마 배는 언제쯤 불러와 나 아직 회사에도 얘기 못 했어 하며 호들갑을 떨더군요 딸아이가 돌아가 후 저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손주가 태어나기만 기다렸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아들이랑 딸 요즘은 어떤 성별을 더 좋아하나 나는
손녀였습니다 좋겠는데 하고 물어보기도 했죠 지인들은 저마다 나는 우리 딸이 워낙 예민 했어서 그런가 손자가 좋더라 남자애들은 사고를 얼마나 치는데 요즘은 딸 나아야 사위들 자식 키우는 맛 느낀데 하고 거들기도 했는데요 저도 어떠한 성별이 첫 손주가 태어난다고 하니 설레였습니다 아들 내외는 처음 결혼 허락 받으러 왔을 때부터 어머니 저희는 애 안 낳고 저희 둘만 잘 살기로 했습니다 이미 처가 되게도 양해 구했고 어머니도 저희 의견 존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통보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더 달에 자식이 궁금했던 것 같아요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어느덧 딸 애가 출산을 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출산 전 사위가 저에게 전화해 장님수 출산한 후에 사우
조리 장모님이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워낙에 장모님에게 의지를 많이 하잖아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도 거절할 수도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아 뭘 당연한 걸 조심스럽게 물어보나 당연히 그래야지 하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모님 한두 달만 도와주세요 용돈은 섭섭지 않게 챙겨 드릴게요 하더군요 저는 거기에 대고 엄마가 딸 봐주는 건데 무슨 용돈은 용돈이야 그걸로 수진이 먹고 싶다는 거 우리 손주 필요한 거에 나 쓰게 앞으로 돈 들어갈 일 만아라고 해버렸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때에 제가 했던 말을 후회합니다 저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을 때에도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겠지 제 딸은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사위는 내심 딸을 바랐던
것 같지만 그래도 제 새끼라고 막상 태어나고 나니 요즘 말로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하지만 딸은 달랐습니다 매일매일 밤낮 없이 울어대는 아기 재왕 후 찢어질 것 같은 배 출산 후 젖몸 살까지 그 예민한 아이가 버틸 수 없는 문제일 것 같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들 두 달 봐 주는 동안 딸은 점점 히스테릭하게 변해 가기만 했습니다 아이가 울면 성질을 내고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일부러을 때 분유를 먹이려고 하기도 하였죠 아직은 저 될 때가 아니야네 젖몸살도 좀 빼 줘야 풀리는 거고 수진아 응 하고 달래 보았지만 딸은 그럼 나 회사 복귀는 어떻게 해 지금부터네 달 후에 복귀해야 한다고 요즘 분유도
잘 나오잖아 엄마까지 짜증나게 왜 이래 하며 성질을 내기 시작했죠 그런 딸 때문에 두 달만 손주를 봐주기로 했던 건 자연스럽게 반 년으로 늘어났습니다 제가 있으니 딸은 점점 더 안정되어 가는 듯 보였어요 그런 딸에게 저는 엄마라고 처음부터 자식이 예쁜 건 아니야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선 마음이 드는게 당연해 계속 보다 보면 더 이뻐지는 거지 하고 말했습니다 딸도 몇 개월이 지나서야 자신의 아들을 안고 그런가 봐 눈이 진짜나 어렸을 때 빼다 박았지 코는 남편 닮았고 진짜 신기해 하며 예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심 마음이 놓였고 하지만 다른 회사 복직을 앞두고 제가 시골로 내려간다고 하자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엄마 가면
난 어떡해 나 아직 둘만 있는 건 적응 안 됐는데 회사 다니면서 애는 어떻게 보지 하며 서름 터뜨렸습니다 저도 밤낮 없이 애를 보고 딸의 사위까지 시중을 들다 보니 지칠대로 지쳐 있는 상태였죠 그래서 너도 해버릇 해야 알지 힘들면 엄마가 다시 올라올테니까 해봐 하고 달렌 후 시골로 로 돌아갔습니다 딸은 온몸으로 화났다는 티를 내며 퉁명스럽게 저를 배웅했고 회사에 복귀하고 나서도 툭하면 엄마 어린이 집에 좀 가죠 나 회사에 있는데 애가 열인 난데 장모님 제가 지금 출장 나와 있는데요 수진이가 또 울고 불고 난리예요 죄송하지만 저희 집에 좀가 주세요 하며 저를 불러냈습니다 자답게 허겁지겁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따라이 집에 갔던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딸 사위 모두 야근이 있는 날이면 한 시간을 달려 선준의 어린이 집으로 가서 아이를 데리고 와 두 사람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런 시절이 계속되었고 아이가 크면 나아지겠지 싶어 참았습니다 하지만 딸 아이에 예민 은 손자가 크면 클수록 심해졌어요 손자도 나는 왜 친구들 다가는데 유치원에 남아 있어야 해 나는 왜 늦게 데리러 와 하면서 딸아이 부부에게 불만을 토로하곤 했습니다 저도 두 사람 중 하나는을 포기하든 아이를 봐 줄 만한 시터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듣질 않더군요 거의 선주가 다섯 살이 되던 해까지 저는 시골과 딸아이 집을 일주일에 세 번은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동안 딸이며 사위는
달에 2 30만 원 가량 기름 값이나 될까 하는 돈만 주며 손주를 저에게 떠맡겨 심지어는 어느 날 저를 불러다 앉혀 놓고 엄마 나 부탁할게 있어 들어줄 거지 하고 물어 겁니다 저는 불안한 마음에 뭔지 들어야 결정하지 말해 봐 했고 딸은 눈물 지으며 엄마 우리 도저히 이렇게는 못 버텨 그래서 말인데 우리 유준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엄마가 키워 줘 우리가 주말에는 꼭 애 보러 내려 갈게 하는 겁니다 저는 그 순간 무언가로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는 자기 자식까지 저한테 떠 맡기려 하다니 제가 시골에 있어 자주 왔다 갔다 하지 못하니 아예 저희 집에 데려다 놓겠다고 하는 거였죠 저도 기가
막혀 애는 부모가 키워야지 지금 나한테 맡겨 놓고 나중에 같이 살려면 청 안붙어 그런 소리 하지 마 하고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딸에 제 옆에 찰싹 붙어 애교를 부리며 아이 엄마 딱 이념만 부탁해 나도 그때 동안 근무하다가 재택으로 돌릴 거야 응 하더군요 사위도 무릎까지 꿇고 앉아 장모님 저희 둘 외벌이로는 도저히 안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하고 고객까지 숙이고 저에게 애원했습니다 저는 화가 나 그럼 자네 수진이 내가 에바 주는 공으로 얼마 주겠나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딸과 사위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엄마 갑자기 왜 그래 엄마 돈 필요해 하고 묻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머리 끝까지 열이 차올라 내가 그동안은 손주 예쁘고 내 딸 안쓰러워서
다 해줬지 하지만 나도 아이 있으면 제대로 반일을 나갈 수가 있나 수입도 한푼 없는 데 어떻게 살란 말이야 하고 역정을 냈습니다 사위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고 딸은 엄마 우리도 빠듯한 거 알면서 그래 우리 집 대출에이자 내고 나면 남는 것도 거의 없어 엄마는 뭐 하둔 돈 있잖아 나중에 노년에는 결국 우리가 엄마 돌봐드려야 하잖아 하고 지금 당장 있지도 않은 일로 으스대다 그요 반 협박이었다 갑자기 차오르는 슬픔과 회한으로 제 눈 앞이 뿌옇게 흐려졌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만히 딸 아이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때에도 딸은 엄마 왜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왜 그래 진짜 하고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딸의 뺨을 올려 붙였습니다 딸은 어 벙벙한 표정으로 절 바라보았고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곧 바로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딸과 사위 전화번호를 차단해 버렸습니다 무어라 문자로 연락이 오는 걸 읽을 자신이 없어 휴대폰 번호도 바꿔 버렸고요 한동안은 시골 혼자 사는 어렸을 적 친구네 집에 가서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혹시나 사위와 딸이 찾아올까 싶어서요 이렇게까지 한니 두 사람은 조용해지더니 저를 찾아오지도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연락하지도 않습니다 도대체 딸애에게 제 인생은 무엇이었는지 한편으로는 가슴이 미어질듯한 서음이 밀려 오면서도 후련한 마음이 동시에 드는 건 제가 별난 어미라일까요이 사연을 들으며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가슴 한 켠을 뭉클하게 하는 사연입니다 부모님은
자식 키워 결혼시키면 한 시름 놓는다고 들 합니다 그러나 이제 손주 키워 초등학교 보내야 한 시름 놓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손주 육아를 전담하다 환갑 전후에 다시 엄마 역할로 복귀하는 할머니가 늘고 있습니다 부모라는 존재 특히 어머니는 근본적으로 자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합니다 자신으로 말미암아 자녀가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그 결과에 자신의 노력이 기여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게 거의 모든 부모가 자녀의 삶에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 사랑이 남다릅니다 내 자식과 관련한 일이라면 그 상대가 어떤 존재이고 온몸을 던져 방어하고 자신은 부족하고 힘들게 살더라도 자식만은 더 나을 길을 걷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
과정에서 종종 나를 상실한 채 오로지 자녀에게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부모의 보호와 배려 허용과 일방적인 물질 제공에 익숙해진 자식은 결코 부모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도 자신이 받게 될 혜택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니까요 따라서 자식은 적어도 성인이 되어 홀로서기가 가능해진 이후부터는 철 하게 남처럼 독립적으로 대하는게 좋습니다 우리는 부모 자식이라는 특별한 환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엮인 운명적인 관계인 것처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부모 자식에게는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나 행동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그저 수많은 인간 관계 중 하나일뿐입니다 따라서 그 대응도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의 내 판단과 결정을 그대로 적용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하지 못하면 부모가 자를 잃게 됩니다 내 삶과 내 미래 내 취향과 내 행복을 고민해도 모자랄 시간에 자식에 관해 걱정하거나 고민하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 비입니다 그 시간과 에너지를 나를 위해 쏟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겁니다 자식은 부모 인생의 성적표도 아니고 부모가 노후에 받을 보상도 아닙니다 때론 기쁘고 벅찬 때론 씁쓸하고 고달픈 그러나 돌아보면 결국 내 인생의 매 순간을 추억으로 채워 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하세요 자녀를 정확하게 남의 위치에 두었을 때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를 상상하고 실행하시면 쉽게 해결될 겁니다 그런 실행 자체가 오히려 자녀의 건강한 삶을 위해 도움이 됩니다
가족을 위해 나를 포기하거나 희생하는 것이 마치 미덕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은 우리 어머니들 세대까지 충분합니다 자식보다 남편보다 가 먼저여야 합니다 양보나 희생은 내 마음이 넉넉하고 풍족할 때 하시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이고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바로 내가 아끼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