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 하나 잘된다면 내 모든 걸 다 주어야 된다고 생각하시오 나도 젊어서는 그리 생각했어 그래서 내 청춘을 그래서 내 인생을 통째로 자식에게 바쳤어 그런데 지금 남은 건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것뿐이요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이것을 몰라서 내 인생과 내 자식 농사지 망쳐버린 것이 많이도 말고 내가 딱이 세 가지만 알았더라면 내 자식들도 나도 행복하게 잘 살았을 [음악] 것이요 안녕하세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누나입니다 봄이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새입 같은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지 새싹 같은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지 이것은 어느 시인이 자녀에게 적은 시의 한 구절입니다 아이는 그 존재만으로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아예 때묻지
않은 순수함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렇게 자식은 나에게 세상이 행복한 곳임을 알려주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백세 시대를 맞아 서른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해도 70년을 부모로 살아갑니다 인생의 3분의 1을 부모로 살아갑니다 옛말에 애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는 말이 있죠 자식은 부모의 외모만이 아니라 습관과 행동 양식도 따라합니다 그만큼 가정 교육이 부모의 행동이 자식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내 자식은 부모 없는 하늘 아래 세상을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자녀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이것은 어느 할머니께서 직접 겪은 실화입니다 할머니는 나이 들고 가난했지만 그래도 내일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잘 살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잘 키워서 대학도 보내고 내 집도 마련하였고 좀 있으면 세상에 나올 손주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들 고등학교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가정집으로 지내던 할머니는 공장 일이며 때밀이 파출 부까지 하나 있는 아들을 위해 안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장가 비용도대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제 아들 녀석 장가 보내 놓았으니 혀도 한번 받아보자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집장만을 따로 해 줄 형편이 안 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할머니 명이의 집을 아들 명이로 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할머니의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가장으로 사시며 온갖 일을
하신 할머니는 그만큼 몸이 성한 데가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들 내외에게 어디 아프다는 말하기가 왜 그렇게 눈치가 보이는지 몰랐습니다 특히 무릎관절이 안 좋아서 매번 며느리한테 병원 비 타서 병원 다니는데 그런 할머니 스스로의 신세가 왜 그렇게 한스러운 몰랐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며느리들도 시어머니가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겠지만 시어머니들 며느리랑 함께 살면서 알게 모르게 병들어요 할머니는 자신의 생활비라도 벌어보려고 어디 식당에 일이라도 다니려 하셨지만 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망가진 다리 때문에 장시간서 있는게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이젠 아들한테 집만 된 거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며느리도 처음엔 용돈을 꼬박꼬박 잘 챙겨 주더니 이년전 할머니가
다리가 아파서 병원을 다니면서부터 병원비 탓인지 용돈도 뜸해졌습니다 그래도 이따 금식 아들이 엄마 와이프한테는 비밀이에요 하면서 자기용돈 쪽에서 꼬깃꼬깃 주는 만 원짜리 선어 장에 내가 아들놈은 잘 키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며 사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느 날 초등학교 친구들 모임에 나가셨습니다 그날도 친구들은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한 친구가 자기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들 며칠이 지났는데도 용돈이 입금이 안 됐네 자동이체 해뒀는데 입금이 안 된 거 보면 은행에서 차오가 생긴 거 아닐까 친구의 아들은 아예 용돈을 자동 이체로 해두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친구 아들에게 전화가 와서 은행에 연락해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이제 입금이 되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그 친구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너 아들한테 벌써부터 용돈 받니 당연히 봤지 그런 너는 우리 아들 결혼하기 전에도 나는 한 번도 못 받았잖아 결혼하고서 아들이 용돈 준다는 것도 됐다 했어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아들이 준다고 하면 못이기는 척하고 봐아 지들 애들 생겨 봐라 용돈 주기가 그리 녹녹하 있어 준다고 할 때 받아야지 너 그거 애들 벌은 나쁘게 하는 거야 할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따금씩 만나는 초등학교 친구들한테 매일 밥을 얻어만 먹는게 못내 마음에 걸리셨습니다 그래서 용돈을 조금씩 모아 보았지만 간혹 며느리한테 미안해서 병원비 달라 소리 못 할 때마다 모아둔 용돈을 써버린 할머니는 항상
빈털털이 그래서 할머니는 친구들에게들은 말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정말 친구들한테 맛 먹고 밥 한번 사야겠단 생각에 아들 녀석 퇴근 길목을 지키고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로등이 이제 막 켜졌을 무렵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엄마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집에 안 들어가시고 고 여기서 뭐 하세요 할머니는 생전 처음 아들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예야 용돈 좀 다오 엄마가 친구들한테 매번 밥을 얻어 먹기만 해서 그래 조만간 밥 판기 꼭 좀 사야 하지 않겠니 하지만 아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집사람한테 이야기할게요 이러고는 할머니를 지나쳐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할머니는 괜히 말을 꺼내는가 싶기도 하셨 다시 며느리 눈치를 볼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득했던 이야기를 한지 일주일이 넘도록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아가야 내 용돈 좀만 다오 친구들한테 하도 밥을 얻어 먹었더니 미안해서 밥한끼 살라 한다 그러자 며느리는 무표정하게 안방에 들어갔다 오더니 4만 원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4만원은 15명 친구들에게 5,000원짜리 국밥 한 그릇도 못 살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다음날도 며느리를 붙들고 용돈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는 이번에도 무표정하게 2만 원을 챙겨 주었습니다 그렇게 세 차례 얘기해서 받은 돈은 고작 8만 원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어차피 내가 밥 사긴 글렀다 싶어서 그래 내가 자식 놈들 살기 어려운데 뭘 자꾸 바라나라며 며칠간의 행동을 후회하셨다고 들고 며느리 방으로 가서 화장때
서랍에 돈을 다시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 서랍 속에서 며느리 가계부를 발견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우리 며느리가 알뜰살뜰 가계부도 다 쓰는구나 대견한 생각에 가계부를 열어 무심고 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할머니에게 평생 후회할 순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며느리의 가게 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9월 14일 웬수 4만 원 9월 15일 웬수 2만 원 9월 17일 또 웬수 2만 원 할머니는 처음엔이 글이 뭔지 몰라 한참을 들여다 보셨습니다 그런데 날짜명 금액이 할머니가 용돈을 받은 날과 일치했습니다 할머니는 하늘이 노랗고 숨이 탕 막혀서 자리에 주저 앉았습니다 내가 인생 헛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사 자식에게 집을 넘겨 준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저는이 사연을 듣고 할머니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할머니의 친구들은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었기에 주택 연금도 받을 수 있었고 자식들은 자식들 대로 떨어져 사는 부모님이 안스러워 용돈도 주었던 것일 텐 병원비 또한 의료보험 지원을 받으면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고 요즘은 노인복지 센터에 연락하면 차량 지원 서비스가 있어서 집으로 어르신들을 데리러 옵니다 그래서 요양사가 병원까지 모셔다 드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낮에는 학교처럼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어서 그곳에서 하루 종일 친구들과 놀 수도 있죠 할머니는 어쩌면 집에 명의를 넘겨 지 않으셨다면 그렇게 주택 연금도 받고 자식에게 용돈도 받으시면서 친구들도 만나며 훨씬 즐거운 노후 생활을 맞이하지 않으셨을까요 하지만 자식 하나만을 위해 희생하신다는 마음으로
전 재산인 진명이 넘겨 주고 나니 할머니는 평생 공들여 키운 자식에게 웬수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로부터 세대를 불문하고 부모에게 자식들은 늘 고민 습니다 세상의 부모들에게 크고 작은 고민을 안겨주지 않은 자식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키우는 것이 기쁨과 보람으로 가득 찬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지배하는 순위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편해서 청년들이 공부하는 시간도 취직 준비 기간도 길어졌습니다 이것은 지금 시대가 전처럼 자식을 성인까지 키운다고 끝나는 시대가 아님을 뜻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생각 캥거루 족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캥거루 족은 독립할 나이가 되어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살면서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20대와 30대를 뜻하는 말입니다 심지어 요즘은 40대 캥거루
족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캥거루 족과 좀 다른 경으로 독립할 나이가 되었는데 취업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석사 박사 공부에 유학까지 가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물론 학비는 부모의 몫이죠 어떤 부모가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박사가 된다는데 지원하기를 망설일 그리고 사업을 하는 자녀들도 처음부터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사업자금으로 시작하면서 부모에게 의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자녀가 독립하지 않고 여러가지 형 로 부모에게 경제적 의존을 하게 되면 부모는 아무리 잘 준비를 해도 노후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노후에 찾아올 수 있는 자녀 리스크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차라리 내가 노년의 고생을 좀 하고 말지 내 자식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내 자식들 위해서라면 죽어라 논밭에서 일하며 점심도 찬밥에 물말아 대충 드시고 한겨울에 가에서 빨래 하시던 바로 그분들이 우리 내 부모님 아니던가요 하지만 그렇게 다 준다 하더라도 자식이 꼭 행복하리라는 법이 없으니 그게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이 자녀 리스크를 피하면서도 자식들 또한 잘 살 수 있게 이끌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이 난관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지금 내 자식이 잘되는 방법 세 가지를 이야기해볼 텐데요 이것은 제가 생각하는 하나의 의견일 뿐이며 여러분들의 상황과 맞지 않거나 견해가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 편안하게 참고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 번째 아이들에게 인생 선배가 되어 주세요 저는 제 아이들이 어릴 때
이런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너희들 다 키우고 나면 난 스위스로 가서 락사 받을 거야 그러면 제 아이들은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심이었습니다 나이들어 총기를 잃고 늙고 병들어 초라하게 사느니 그전에 내가 먼저 세상을 뜨고 말리라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면 그걸로 제 사명은 다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렇게 첫째 아이가 20대가 되어 출가를 했 하지만 취직을 하는 곳마다 회사가 월급을 주지 않거나 회사가 망하여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좌절하는 첫째 아이가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잃지 않도록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둘째 아이도 20대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취직의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소개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면접을 볼 때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면접관 마음에 드는지 제게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돈의 팔촌까지 연락하여 대기업에 다니는 한 친척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겨우 취직에 성공한 둘째는 이번엔 월급 통장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청년 적금은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운전 면허는 어떻게 따는지 물어왔습니다 그 사이 지글 을 속을 썩히던 첫째는 고난의 20대를 거치고 30대가 되자 드디어 성실함과 조금의 무게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간 모아둔 돈과 인맥으로 자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다행히 수환이 좋아서 사업은 번창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 제일 무서운게 장사 샘이라고 장사가 잘되자 주변 경쟁업체에서 신고가 빗발쳤습니다 알고 보니 첫째가 운영하는 그 가게 자리가 원래는 상업 허가가
나지 않는 구역인데 시청 공무원의 실수로 허가가 난 것이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공무원에 허가가 났으니 당연히 동업자들과 투자를 하여 장사를 해왔는데 별안간 경찰들이 찾아와 영업 정지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다들 어렵게 돈을 끌어모아 가게를 옮겼지만 자리를 옮기자 이번엔 단골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도 아이가이 시기를 버틸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어 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평생 필요한 존재 있구나 나의 20대가 처음이었고 30대가 처음이었고 지금이 나이가 처음이었 듯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내가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 아이들이 힘을 내서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되겠구나 그래서 저는 이제 안락사를 받겠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좀 더 건강히
오래오래 살아서 아이들이 언제든 돌아와 기댈 수 있는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재산을 많이 남겨 주지 마세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가난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앤드류 카네기는 13세의 미국으로 이주하여 면화 공장에서 일하다가 나중에는 철도국에서 광산업을 하여 재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앤드류 카네기는 생전에 막대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 주지 않고 모두 자선 단체에 기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나보다 먼저 간 주변의 재벌 친구들을 보고 자식이 상속을 받으면 일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자식에게 돈을 물려 주는 것은 아이들의 재능과 힘을 죽인다 나의 재산을 나의 자식들에게 그대로 물려 주는 것은 쓸모없고 가치 없는 삶을 살라고 저주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복권에 당첨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불을 유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이전보다 가난한 상태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자기 노력으로 이룬 부가 아니니 그것을 어떻게 쓸 줄을 몰라서 생기는 일이죠 그러니 어쩌면 부모는 자식을 위해 힘들게 모아서 준 피땀어린 돈이 자식에게는 복권처럼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공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편 아프리카 길이는 선체로 새끼를 낳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끼 길이는 태어나자마자 수직으로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집니다 새끼 기린이 충격으로 멍에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순간 엄마 기린은 그 긴 다리로 새끼 기린을 걷어 찹니다 새끼 기린은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기는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났고 이미 땅바닥에 세게 부딪혔는데 엄마는 자신을 사정
없이 걷어 차다니 이해될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새끼 길리는 아픔을 견디며 다시 정신을 차리려 엄마 기린은 더 세게 새끼 기린을 걷어차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진 새끼 길이는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흔들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이대로 가만 있다가는 계속 거어 차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제서야 새끼 길이는 일어서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때 엄마 기린이 다시 엉덩이를 세게 걷어차 그러면 그때부터 새끼 기린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발길질을 당할 테니까요 엄마 길리는 그제야 새끼에게 달려와 핥아 주며 사랑으로 보듬기 시작합니다 엄마 길이는 알고 있 입니다 새끼 기린이 자기 힘으로 달리지 않으면 즉시 맹수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일어서서 달리며 생존하는 법을
빨리 배우라고 새끼 기린을 걷어차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으로 내 자식을 위한다면 내 자식을 사랑한다면 때로는 내 마음이 미어져 자식을 세게 걷어차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긴 겨울을 넘긴 목련이 매화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것처럼 내 자식도 그렇게 혹독한 삶의 시련을 뛰어넘어 내야 비로소 어떤 환경에서도 살 수 있는 독립된 자로 성장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런 자식들이 훗날 내가 없어져도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돕는 길이야말로 돈보다 더 같이 있는 진정한 유산이 아닐까요 세 번째 내가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나는 이번 생은 글렀으니 너만은 행복하게 살아라라고 말하는 건 백세 시대에 남은 우리의 인생과 우리
아이들 양쪽 모두에게 너무 무책임한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들더라도 우리가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나의 자식들도 안심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우리는 지금이라도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어느 날은 tvl 보는데 살의 어린 아가씨가 노래 오디션에 나왔습니다 그 어린 아가씨가 하는 말이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게 뭔지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또한 자기가 누군지 치열하게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그걸 위해 오디션 출연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아가씨가 이렇게 영리하고 기특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들어 하는 는 저의 고민을 저 살의 어린 아가씨가 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20대도 그랬어야 했지 않을까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내가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진 사람인지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저는 잠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만 소가 달구지를 끌던 때를지나 자동차라는 신기한 빵빵이를 처음 타본 세대인 우리는 네모 상자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텔레비전을 처음 보았으며 컴퓨터나 휴대폰 등등 19세기에서 들으면 기절초풍할 일들을 무수히 겪은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걸 고민할 시간이 없었으며 심지어 우리가 백세 시대를 살리라는 생각조차 못했으니 인생에 대해 고민할 필요를 느끼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게다가 흘러간 시간을 돌릴 제간 또한 없습니다만 그래도 이제부터라도 그리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저는 다행히도 우리는 백세 시대를 살고 있으니 지금도 충분히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제까진 내가 아닌 부모로 살아왔으니 이번엔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 살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실컷 만나면서 오로지 나를 위한 인생을 즐겨 보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적 저희 아버지는 멀리 있는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밤 9시에 돌아오셨습니다 저는 퇴근하는 아버지만 보면 달려가서 다리에 매달려 댔습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아버지는 사라지셨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왜 아버지는 내가 잠만자고 일어나면 사라지고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한날은 아버지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어떻게든 일찍 일어나리라 다짐을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얼마나 몸부림을 치며 잘 잤는지 벽에 코까지 박아서 코잔 등엔 코피 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역시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몇 번의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누가 저를 다급하게 깨우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버지의 출근 시간에 맞춰 저를 깨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잠이 왔습니다 그래서 방에서 기어나와 간신히 문턱을 넘고 현관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 갔습니다 무슨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저는 곧 정신을 잃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또다시 저는 이불을 박차고 방 한 구석에서 이상한 자세로 누워 있었고 아버지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흐릿하게 기억나는 건 현관의 주황색 불빛 아래 당신을 향해 기어오는 절을 보며 한박 구 숨 짓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어릴적 부모라면 새벽 바람에 그 먼길을 다니며
일하는게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먹는 밥과 반 당연했습니다 콩나물 안 먹겠다고 때를 쓰다 등짝을 얻어 맞는게 억울했습니다 어머니가 장롱과 쌀독에 숨겨둔 과자를 동네 친구들 데려다가 싹다 털어먹는게 저희 취미였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부모가 되어 보니 어떻게 그렇게들 사셨을까이 냉혹한 세상에서 어떻게 저를 키워내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저의 부모님은 저를 그렇게 힘들게 키워 주셨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 그만두고 도망가고 싶다 어디 지인의 조용한 호숫가 별장이라 있으면 그곳에 박혀서 당분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습니다 물론 저희 부모님도 부모님이 이전에 인간이기에 단지 제게 내색을 하지 않으셨을뿐일 수도 있습니다만 혹시나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이제
그만 내 안식처를 찾고 싶은데 이제 그만 몸과 영혼을 쉬고 싶은데 자식 눈치 남의 눈치 안 보고 편안하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곳은 있으신가요 그런 여러분들께서 한바탕 자식 농사에 온힘을 다 쓰시고 지친 여러분들께서 잠시나마 눈으로나마 쉬고 가시라고 제가 이따금 가고 싶다고 상상했던 조용한 호수가 별장을 그림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끝으로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글과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노고의 존경을 표합니다 그럼 여기까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나였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음악]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