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끝자락이었습니다. 1은 넘은 할머니 한 분이 제 상담실 탁자 앞에 꽃꼬이 앉으시더니 인사가 책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우리 영감이 그럽디다.
나는 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하고요. 지도사님은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남의 장례밥을 32년 먹은 저도 그 말의 진짜 뜻은 믿음의 봄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음악] 인사가 늦었지요. 저는 충청도 산 많은 어느군에서 군내 하나뿐인 장례식장 장례 지도사로 32년째 일하고 있는 오병철이라고 합니다. 올해 예순입니다.
이 일을 하면서 제일 많이들은 말이 뭐겠습니까? 내가 죽거든 장례식은 치르지 마라. 바로 그 말입니다.
제 어머니 입에서도 들었고 남의 어머니 입에서도 수백 번을 들었습니다. 그 말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오늘은 제가 몸으로 겪어 알게 된 세 가지 현실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셋째는 [음악] 지금도 입에 올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오늘은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이야기에 주인되시는 두 어른이 그래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거든요. 여러분에게도 혹시 그 말씀을 하시는 어른이 계십니까? 그 어른이 처음 찾아오신 날부터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박정순 어른 올해 이른둘 되시는 분입니다. 시외버스 첫차를 타고 오셨다는데 자주색 목도이를 두 번 감고 낡았지만 반듯하게 닦은 구두를 신고 계셨어요. [음악] 장례식장 상담실이라는 데가 원래 그렇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어른들 아홉은 문지방 앞에서 한번 멈칫하세요. 산 사람이 올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시니까요. 그런데 그 어른은 멈칫하지 않으셨습니다.
성큼 들어와 앉으시더니 손가방에서 은행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에 밀어 놓으셨어요. 고무줄로 감은 만 원짜리가 봉투 밖으로 비중 나와 있었습니다. [음악] 상단비는 얼마요?
모자라면 말씀하시고 저는 상담비 같은 건 없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봉투를 도로 넣는 대신 차잔 밑에 눌러 두시면서 이러셨습니다. 그럼 이건 입마음값이요.
오늘 내가 하는 얘기 우리 영감귀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 되니까. 글쎄요. 32년을 이방에 앉아 있었지만 입마음값이라는 말은 그때 처음 들어봤습니다.
어른의 부탁은 이랬습니다. [음악] 영감 몰래 장례를 다 준비해 달라. 수이며 영정 사진이며 빈소며 목록을 만들어서 갑까지 다 맞춰 놓아 달라.
당신은 그 목록을 장롱 깊이 넣어 두었다가 영감이 눈을 감으면 그대로 치르겠다. 제가 조심스럽게 여쭈었지요. 영감님 뜻은 어떠시냐고요?
그랬더니 어른이 창 밖으로 눈을 돌리시면서 목소리를 차 깔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영감은 치르지 말랍디다. 빈소도 부고도 아무것도 하지 말랍디다.
그런데 지도사님 죽은 사람이 무슨 수로 산 사람을 말립니까? 나는 치를 겁니다. 말은 그렇게 단단한데 차잔을 준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어요.
저는 그 손을 보면서이 어른이 오늘 여기 온 건 준비 때문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물어볼 데가 없어서 온 거구나.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그 말씀을 들으신 날 이야기부터 천천히 여쭈었습니다.
어른은 한참을 망설리다가 입을 여셨는데 그 밤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지난해 10월이었답니다. 영감님 그러니까 강만섭 어른 올해 이른 아홉이신데 한 동네에서 같이 늙은 오랜 벗에 초상을 치르고 돌아온 날이었대요.
심장으로 하루 아침에 가신 분이라 발인까지 사흘 내내 다녀오셨답니다. 그 마지막 날 저녁 만서 어르니 검은 양복도 안 벗고 마루에 앉으시더랍니다. 해가 다 지도록 뒷사만 바라보고 계시기에 정순어른이 물한 대접 떠다 옆에 놓았더니 그제야 입을 여시더래요.
인자 나 죽거든 장례식은 치르지 마라. 정순어르는 처음엔 웃어 넘기려 했답니다. 아이고, 영감도 초상집 다녀오더니 별소리를 다 하네 하고요.
그런데 만서 어른이 물 대접에는 손도 안 대고 말을 이으셨답니다. 빈소도 차리지 마라. 부고도 돌리지 마라.
아무것도 하지 마라. 목소리가 어찌나 단단한지 50년 넘게 들어온 뱉다 가자 시끄럽다 하는 말투하고는 결이 아주 달랐답니다. 그래서 정순 어른도 그만 언성이 높아졌대요.
그럼 나는요? 나는 어쩌라고요? 자식들은요.
그랬더니 영감님이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시는데 문꼬리를 잡고 등을 돌린 채 딱 한 마디를 놓고 가시더랍니다. 나는 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그러고는 방문이 다쳤답니다.
정순 어른은 그 밤 내내 마루에 앉아 계셨대요. [음악] 벽식의 초침 소리만 듣고 있었답니다. 신두해를 같이 산 사람입니다.
[음악] 숟가락 놓는 소리만 들어도 속이 편한지 불편한지 아는 사이인데 그 말 한마디는 당체 풀 수가 없더랍니다. [음악] 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니 뭘 받으면 안 된다는 건지 누가 못 받게 한다는 건지. 어른은 저한테 그 말을 옮기시면서 이러셨어요.
지도사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하루 아침에 모르는 사람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반보다 어른을 더 힘들게 한 일이 따로 있었습니다. 큰 아들이었어요.
강진옥 씨라고. 수도권에서 회사 다니는 48살 장남인데 효자입니다. 효자인데 요즘 자식들 방식의 효자지요.
아버지 8순이 가까워 오니 가족 단체 대화방에 상조회사 가입 안내를 하나 올렸더랍니다. 요즘 다들 미리미리 해 놓는 거라고 연말이라 조건도 좋다고요. 정순어는 돋보기를 쓰고 그 글자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답을 못 하고 전화기를 엎어 놓으셨답니다.
아범아, 너희 아버지가 장례식을 치르지 말란다. [음악] 그 말을 참아 손가락으로 찍을 수가 없더래요. 며칠 뒤에 아들이 전화로 어머니 확인하셨어요?
아버지 상조는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묻는데 사무보듯 묻는 그 말투에 그만 너희 아버지한테 물어봐라 하고 쏘아붙이고 끊으셨답니다. 끊고 나서는 김치냉장고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우셨다지요.
아들이 뭘 잘못했겠습니까?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서로 아픈 것 그게 집집마다 있는 일 아니겠어요? 그래서 어른이 저를 찾아오신 겁니다.
아들한테도 못 하는 말, 영감한테는 더 못하는 말을 들고요. 저는 목록을 만들어 드리는 대신 여쭈었습니다. 영감님이 평소 어떤 분이시냐고요?
정순 어른은 피식 웃으시더니 반평생 뚜리를 짧게 줄여 들려 주셨습니다. 말 수가 없는 양반이다. [음악] 됐다.
가자. 시끄럽다. 그 세 마디하고 신두회를 살았다.
그런데 게으른 사람은 아니다. 동네 경조사엔 빠진 적이 없다. 부조 수첩을 40년을 적어온 양반이다.
요즘도 부위금 봉투 앞에서 5만 원이냐 10만 원이냐 한참을 앉았다가 형편 어려운 집엔 꼭 더 두툼한 쪽을 넣는다. 비가 쏟아져도 문상은 당신발로 간다. 그런 양반이 자기 장례는 치르지 말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얼음 말씀이 맞지요? 앞뒤가 안 맞습니다.
저는 그 앞뒤 안 맞는 자리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음악] 32년에 보니 사람의 진짜 사연은 꼭 그렇게 앞뒤가 안 맞는 자리에 숨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몇 가지를 더 여쭈었습니다.
영감님 건강은 어떠시냐? 재작년 겨울에 심장에 그물망인가 뭔가를 넣으셨답니다. 스텐트지요.
그 뒤로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늘었대요. 심장약 타러 가는 날, 무릎 연골 주사 맞는 날. 그런데도 뒷싼 반밭엔 기여이 당신발로 다니신답니다.
아, 밤 농사를 하시는구나. 예. 삼비탈에 밤나무가 200루쯤 있답니다.
자식들이 어 3년 전부터 수도권으로 모시려고 집까지 알아봤는데 영감님이 밥상을 물리고 딱 한 마디 하셨대요. [음악] 나 여기서 안 나간다. 죽어도 여기서 죽는다.
그 고집에 이사 얘기는 쑥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건 어른이 지나가듯 하신 말씀인데 훗날 생각하면 열쇠였습니다. [음악] 영감님은 해마다 3월 첫 일요일이면 꼭두 새벽에 반바테 가신답니다.
가지치기 철이라나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마음 몇 해를 하루도 안 걸으셨대요. 정순 어른은 같이가 본 적이 없답니다.
저는 환절기만 되면 몸살을 하는 통에요. 공교롭게 꼭 그맘때 알아누어요. 어른은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셨고 저도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들었습니다.
밤 농사꾼이 이른 봄에 산에 가는게 뭐 별 일이겠습니까? 그때만 해도 저는이 덱 이야기가 제 어머니 이야기보다 무거울 줄은 몰랐습니다. 정순 어른이 차잔을 밀어놓고 물으셨습니다.
지도사님은 수백번 들으셨다면서요. 대체 왜들 그러는 겁니까? 왜들 치르지 말라는 겁니까?
저는 대답 대신 제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첫째, 현실은 남의 이야기로는 설명이 안 되거든요. 15년 전에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발이 넓은 양반이라 문상객이 사흘 내내 밀려들었어요. 그때 제 눈에 밟힌 건 제 어머니였습니다. [음악] 사흘을 한시도 안 앉으셨어요.
주방에 들어가 육계 장관을 보고 밤이면 부위금 봉투를 장부하고 맞춰보고요. 몇 번을 붙들어 앉혀도 손님 계신데 어디라니 하며 뿌리치셨습니다. 치마를 사흘 못 벗으셨어요.
[음악] 발인 전날 새벽 3시쯤이었습니다. 저 혼자 물 마시러 나왔다가 빈소 쪽에서 인기척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늦은 시간에 처음으로 아버지 영정 앞에 혼자 앉아 계셨어요.
사진을 물끄러이 올려다 보시더니 이러시는 겁니다. 여보, 나 왔어요. 이제야 인사하네요.
사흘내 손님 치르느라 당신한테 인사를 못 했네요. 그러고는 재단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가만가만 쓸어 보셨습니다. 꼭 아버지 손등을 쓸 듯이요.
한참 뒤에 저를 보시고는 가서 자라. 내일 발인이다. 딱 그 한 마디였습니다.
오는 모습은 끝까지 안 보이셨어요. 그 세대 어른들이 그렇지요. 몇 해 뒤에 어머니가 마루에서 콩을 고르다 말고 그러셨어요.
병철아, 나는 치르지 마라. 저는 웃었습니다. 아들이 장례 지도사인데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요.
그러고는 돈 아까워 하시는 소리로만 들었습니다. 요즘 3일장 한번 치르면 보통이 1,400만 원 안 바뀌고 손님 많으면 1,500만 원을 훌쩍 넘으니까요. 자식들은 다들 저처럼 넘어갑니다.
아이고, 돈 걱정하시네.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하고요.
어머니가 자리에 누으신게 4년 전입니다. 정신이 말던 어느 날 제 손을 잡고 그 말을 다시 꺼내시는데 그날은 뒷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음악] 병철아, 너희 아버지 보낼 때 나는 사흘 내내 손님만 치렀지.
네 아버지를 못 보냈다. 마지막 밤에야 인사했다. 나는 그게 지금도 걸린다.
그러니 나는 너희가 사흘 동안 나를 치르지 말고 하루만 앉아서 울다 보네 다오. 그거면 된다. [음악] 제작년에 어머니가 가셨습니다.
저는 말씀대로 했어요. 부고를 크게 안 내고 가족끼리 하루를 모셨습니다. 형제들이 어머니 사진 앞에 종이 앉아서 어머니 얘기를 하고 웃다가 울다가 했습니다.
30년 넘게 남의 초상만 처온 제가 그날 처음으로 지도사가 아니라 아들로 앉아 있었습니다. 정순 어른께 말씀드렸습니다. 이게 제가 아는 첫째 현실이라고요.
치르지 마라 하는 말은 열 액면 그대로가 아닙니다. 번역이 필요한 말이에요. 돈 얘기 같지만 돈 얘기가 아닌 경우가 태반입니다.
제 어머니 말은 나를 접대하지 말고 앉아서 울다 보내다오 였습니다. 어떤 어른말은 너희 사흘 고생시키는게 싫다 였고요. 또 어떤 어른은 그 돈이면 살아 있을 때 국밥 한 그릇같이 먹자는 뜻입다 같은 말인데 속은 집집마다 달라요.
그러니 그 말을 들으시거든 받아 적지 마시고 물어보셔야 합니다. [음악] 딱 세 번만요. 왜요?
왜 그러세요? 진짜 이유가 뭐예요? 제 경험에 첫 번엔 시끄럽다 하시고 두 번째엔 돈 아깝다 하시고 세 번째쯤에야 진짜 대답 비슷한게 나옵니다.
정순 어른은 그 자리에서 결심히 서신 모양이었습니다. 입막음값이라든 봉투를 도로 가방에 넣으시면서 그러셨어요.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음악] 세 번이 아니라 30번이라도요. 저는 그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걸 듣고 속으로 조금 안심했습니다. [음악] 첫째, 현실에서 풀리는 집이 사실 제일 많거든요.
그런데이 덱은 아니었습니다. 열흘쯤지나 김장철이었지요. 어른이 전화를 주셨는데 목소리에 김이 다 빠져 있었습니다.
마당에서 배추를 절이다가 소금뿌리는 영감 옆에서 슬쩍 물으셨답니다. 영감 그때 그 말 왜 그랬어요? 만서버니 배추 나르던 손을 딱 멈추더랍니다.
한참서 있다가 나온 대답이 김장이나 하자였답니다. 그날 저녁엔 밥상 머리에서 두 번째로 물으셨대요. 그랬더니 이번엔 대답 대신 텔레비전 소리를 키우시더랍니다.
뉴스 소리가 방을 꽉 채우도록요. 세 번째는 입을 펴고 누워서 천장 보고 물으셨답니다. 여보, 나한테는 말해 줘야 할 거 아니요?
캄캄한 방에서 영감님은 숨소리도 안 바꾸시더래요. 잠든 척하는 숨이 아니라 돌담 같은 숨이었답니다. 지도사님, 세 번을 물었는데 단벼락하고 삽뛰다.
그런데 어른이 그 말 끝에 이상한 얘기를 하나 보태셨어요. 마당에서 물었던 그 첫 번째 때요. 영감님이 대답은 안 하고 고개를 들어 뒷산을 한참 바라보더랍니다.
소금 묻은 손을 늘어뜨리고 반밭 있는 산비탈 쪽을요. 그 눈이 어찌나 멀던지 꼭 산 넘어 누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 그 말을 흘려들었습니다.
흘려듣고 겨울을 낳지요. 해가 바뀌고 정월 보름 지나서 어른이 두 번째로 찾아오셨습니다. 그 사이 더 야위셨더라고요.
겨울이 깊어질수록 잠을 설치합니다. 옆에서 자는 영감 숨소리를 밤마다 세게 된다고요. 인데 이런 스텐트 넣은 심장이 새벽마다 무섭답니다.
이러다 영문도 모르고 보내면 [음악] 나는 그게 한이 될 것 같아서요. 그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저는 이날 둘째 현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첫째에서 안 풀리는 집은 더어 둘째에서 풀리거든요. 12년 전 겨울입니다. 저희 식장에서 아 넘은 할머니 한 분을 모셨는데 둘째 날 밤에 빈소복도가 뒤집어졌어요.
상주 형제가 그것도 부위금 접수대 앞에서 멱살잡이를 한 겁니다. 조은객들이 육계장 숟가락을든 채 다 보고 있는데 하환이 넘어가고 결국 저하고 직원들이 뜯어말렸습니다. [음악] 안쪽엔 어머니 관이 계신데 말입니다.
사정을 알고 보니 한쪽만 욕하기도 어려웠어요. 큰아들은 사업이 잘못돼서 빚에 쫓기는 처지였고 작은 아들은 4년 동안 다다리 100만 원 넘는 어머니 병원비로 혼자답니다. 형은 그 세월 콧배기도 안 비쳤다고요.
누가 옳습니까? 저는 지금도 답을 못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날 복도 끝에서 [음악] 백발 문상객 한 분이 꼼짝 안고 그 꼴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고인의 옛이라던 어른인데 몇 주 뒤에 저를 찾아오셨어요. 미리 맞춰두었던 당신 빈소 예약을 물리러 오신 겁니다. 이유를 여쭈었더니 모자를 벗어 무릎에 놓고 이러셨습니다.
오 지도사 나는 말이야 내 관 앞에서 자식들 밑바닥을 보느니 관도 꽃도 다 치우는게 낫겠어. 에비관 옆에서 본 상자 붙들고 싸우는 꼴은 나는 죽어서도 눈을 못 감아. 그 어른은 그뒤로 자식들한테 정말 그렇게 선언하셨답니다.
나는 치르지 마라. 자식들은 서운해했겠지요. 우리를 못 믿냐고요.
그런데 보십시오. 그게 못 믿는 마음입니까? 지키려는 마음입니까?
30년을 보니 장례식장에 슬픔만 오는게 아닙니다. 평생 쌓인 서운함이 상속 문제가 부위금 계산이 하필 제일 아픈 사흘에 다터져요. 그걸 평생 문상 다니며 지켜본 어른들 중에는 싸움붙을 자리를 아예 안 만드는 쪽을 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제 눈엔 말 못하는 [음악] 사랑이 뛰다. 여기까지 듣고 정순어른이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우리 애들은 우회가 좋아요.
다툴 것도 없고요. 재산이랄 할게 뭐 있나 그 반밭 하나? 그러다 말끝이 흐려지셨어요.
반밭하고는 잠깐 창밖을 보셨습니다. 저는 그때 어른 얼굴에 스치는 그늘을 봤는데 그게 뭔지는 몰랐습니다. 다만 첫째도 둘째도 아니라면 이제 남은 건 하나였습니다.
저는 사실 그 얘기를 꺼내기가 제일 무겁습니다. 그래서 애둘로 엿줍는 질문이 하나 있어요. 어르신 [음악] 영감님은 남의 장례에는 어떻게 하십니까?
정순 어른이 어리둥절리 하셨지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부조 수첩 40년 적은 양반이라고요.
문상 한 번을 안 빠지고 봉투도 후하게 하고 그러다가 어른이 문득 말을 멈추셨습니다. 뭔가를 50년 만에 처음 세워보는 얼굴이었어요. 한참만에 나온 말이 이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그이가 초상집에서 밥 먹는 걸 나는 본 적이 없어요. 신 해를 같이 다녔는데 국 한수를 안 떠요.
상가에서 주는 건 물도 잘 안 마셔요. 나는 여태에 입이 짧은가 보다 했지. 그 말을 듣는데 제 등줄기가 선을했습니다.
저도 떠오른게 있었거든요. 지난 10월 그 벗대시는 분 초상 때 만서 어른이 저희 식장에 [음악] 사흘을 오셨습니다. 그런데 기억을 뒤져보니 그 어른은 늘 식당 제일 구석에 등을지고 앉아 계셨고 상 위엔 육계장이 그대로 식어 있었어요.
마지막 날엔 국그릇을 아예 옆으로 밀어두고 일어나시던 뒷모습도 생각이 났습니다. [음악] 입이 짧은게 아닙니다. 32년 일에 보면 압니다.
상갓집 밥을 안 먹는 어른들이 덜어 있어요. 그분들은 이유를 안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꼭 자기 장례를 제일 완강하게 마아하십니다.
[음악] 저는 정순 어른께 셋째 현실을 말씀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통계에도 없고 책에도 없는 제가이 방에서 어른들 눈물로 배운 겁니다. 옛말에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요.
30년 넘게이 일을 하면서 보니 산에 묻은 장례는 끝이 납니다. 사무제 지나고 49 지나면 아프지만 아무튼 끝이 [음악] 나요. 그런데 가슴에 묻은 장례는 끝나는 법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치르지 마라 하는 말이 제일 단단한 어른들 가슴에는 꼭 그런 장례가 하나씩 묻혀 있었습니다. 모치른 장례요. 전쟁 때 피란길에 동생을 놓친 어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시신도 못 찾았다지요. 그 어른이 그러셨어요. 걔는 흑한 줌을 못 받았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꽃을 받나.
물랄리에 아이를 잃고 장례를 할 것도 없이 보낸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그 어른들한테 장례식은 예식이 아니라 자격이에요. 저 사람은 못 받은 걸 나만 받을 수 없다는 수십년 묵은벌 같은 겁니다.
저는 거기까지 말씀드리고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어르신 혹시 대게도 못 치른 장례가 있으십니까? 정순 어른은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차잔만 내려다보고 계셨어요. 그 침묵이 어찌나 길던지 벽에 걸린 시계 소리가 다 들렸습니다. [음악] 이윽고 어른이 코트를 여미며 일어나셨습니다.
문 앞에서 한번 멈칫하시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셨어요. 배웅하러 나간 제게 목내만 하시고 시 외버스 정류장 쪽으로 등을 보이며 걸어가셨습니다. 그 등이 어찌나 작던지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어른이 왜 대답 대신 등을 보이셨는지 그리고 그 등이지고 가는 세월이 49세라는 것도요. 그 뒤로 두 달 가까이 소식이 없었습니다.
저는 궁금해도 연락을 못 했지요. 이 일은 기다리는게 반입니다. 다시 벤건 벚꽃 필 무렵이었는데 그 두 달 사이에 그대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른은 4월에 걸쳐 다 들려 주셨습니다.
세 번을 오시면서요. 지금부터는 그 이야기를 제가 순서만 바로 잡아 전해 드리겠습니다. 두 분이 허락하신 대목입니다.
1974년에 두 분이 혼인하셨답니다. 만섭 어른 27, 정순 어른 2 중매였고 신랑 얼굴은 혼산날 처음 제대로 봤답니다. 산비탈 아래 방 두 칸짜리 흑집이 신접살림이었대요.
그 시절이 다들 그랬지만 참 가난했답니다. 나라에서 산에 나무 심으라고 등떠밀던 시절이라 만섭 어른은 융자를 얻어 뒷산 비탈에 밤나무 묘목을 심었답니다. 동네가 다 심을 때 같이 심은 거지요.
밤나무가 크려면 몇 해가 걸리니 그동안은 남의 논을 다니며 살았답니다. [음악] 보리석은 밥에 수제비로 끼니를 있던 세월이었대요. 1976년 7월에 처대가 태어났습니다.
딸이었어요. 그런데 그 무뚝뚝한 양반이 애가 나오니 사람이 달라지더랍니다. 밭에서 돌아오면 방에 들어서기 전에 우물가에서 손부터 씻더래요.
그 손으로 애를 안으려고요. 빈 깡통에 콩을 넣어 딸랑이를 만들어 주고 애가 옹아리만 해도 지에 내려놓고 달려오고요. 밤에는 등잔 밑에서 잠든의 얼굴을 한참씩 들여다보더랍니다.
정순 어른이 그러셨어요. 그 양반이 웃는 걸 나는 그애 때문에 처음 봤습니다. [음악] 출생 신고는 못 하고 있었답니다.
면 사무소가 이심리 바뀐데 가을거에 겨울 준비에 짬이 안 나고 그 시절 시골에선 돌 지나고 신고하는 집이 흔했으니까요. 이름도 그래서 밀었답니다. 이름은 에비가 짓는 법이라고.
만섭 어른이 곰곰히 국리만 하고 있었대요. 좋은 이름 지어서 신고하러 갈 때 같이 올리자고요. 영감님 입버릇이 그거였답니다.
봄되면 하지 뭐. 겨울에 뭘 하겠나? 봄되면 신고도 하고 봄되면 사진강 가서 사진도 받고 봄되면 봄되면 그 말이 그렇게 한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1977년 3월 첫 주말이었습니다. 애가 낮부터 보채더니 저녁엔 열이 펄펄 끌랍합니다. 여덟달 된 애가 젖도 안 물고 늘어지는데 하필 그날 밤 때늦은 폭이 쏟아졌답니다.
3월 눈이 무섭다는게 그 산골 얘기예요. 보건지소는 눈길 이심리 바뀌고 전화 있는 집은면 소재지나 가야 있고요. 만서 어른이 애를 포대기로 싸서 업고 나섰답니다.
그런데 고개마루에서 눈보라에 길이 지워졌더래요. 한치 앞이 안 보이는데 등의 어는 자꾸 늘어지고 영감님이 눈속에 한참을서 있다가 돌아섰답니다. 새벽에 눈 그치면 첫차로 가자.
이 이 밤길보다는 그게 낫다. 정순 어른은 밤새 물수건을 갈고 미음을 끓였답니다. 새벽역에 애가 조용해지더래요.
열애들떠 밤새 앓는 소리를 하던 애가 조용해지니 젊은 어미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조용해서 나는 좋아진 줄 알았어요. 아이고 세상에나 좋아진 줄 알고 그제야 눈을 붙였어요.
잠깐 눈 붙였다 깨보니 영감이 등잔 밑에서 애를 안고서 있더랍니다. 한참을 그렇게 돌처럼서 있다가 딱 한 마디 하더래요. 늦었다.
그날 아침 일을 정순 어른은 49회 동안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답니다. 만섭 어른이 애를 포대기에 싸서 품에 안더랍니다. [음악] 그러고는 방에 있어라 한마디 하고 문을 나서더래요.
정순 어른이 버섯발로 마당까지 쫓아나갔는데 눈 쌓인 마당에서 미끄러져 주저 앉았답니다. 일어나 보니 영감은 벌써 살인문 바뀌었고 눈 덮힌 산길로 올라가는 등만 보이더래요. 부르는데 뒤도 안 돌아봤답니다.
그 시절 산골에선 애 장례를 안 치렀습니다. 어른 상여는 동네가 다 매지만 아기는 에비가 혼자 조용히 산에 묶고 오는게 법도 아닌 법도였어요. 요란하게 하면 애가 못 떠난다고도 했고 무엇보다 어미 가슴에 못 박는다고 어디 묻었는지도 잘 안 알려줬습니다.
지금 들으면 모진 풍습이지요. 그런데 그 모진 것이 그 시절엔 어른들 나름에 애끌는 방식이었습니다. 영감은 해질력해야 내려왔답니다.
빈손이었대요. 손톱 밑에 흙이 까맣게 끼고 손등이 얼어져 있는데 아궁이 앞에 앉더니 밤새 불만 떼더랍니다. 며칠 뒤에 정순 어른이 물었답니다.
여보 우리 어디에 뒀어요? 나도 알아야지요. 그때 만섭 어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애의 얘기를 했답니다.
잊어라. 원래 없던 애다. 호적에도 없는 애다.
잊어야 산다. 그러고는 마당에 나가서 애물건을 다 태웠답니다. 기저기감이며 포대이며 그 콩 딸랑이까지요.
정순어른 부엌에 있는 척하다가 불더미에 던져지기 직전에 베네저고리 하나를 치마폭에 감췄답니다. 애가 세상에 와서 처음 입은 옷이요. 그걸 명주 보자기에 싸고 또 싸서 자기장 아래 서랍 맨 밑에 조약하고 같이 넣어 두셨대요.
4 패를요. 영감 몰래요. 잊으라는데 안 있는게 죄 같아서 들킬까 봐 이사이 얘기만 나와도 가슴이 철렁했어요.
그 뒤로 저지 돌아서 몇 달을 밤마다 수건을 물고 오셨답니다. 소리 내면 영감 깰까 봐요. 그런데 정작 영감은 그날부터 그 애의 얘기를 입밖에 낸 적이 없답니다.
단 한 번도요. 믿음의 큰아들 진옥 씨가 태어나고 밑으로 둘째 아들과 막내딸이 태어나고 밤나무가 크고 세월이 갔습니다. [음악] 자식들은 저희한테 누나가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자았어요.
호적이 없으니 서류상으로는 세상에 온 적도 없는 아이였습니다. 정순어르는 그 세월 동안 속으로 영감을 미워했답니다. 무정한 사람.
제 새끼를 잊으는 사람. 어디 묻었는지 끝내 안 알려 주는 사람. 40년을 넘게 나는 그가 그애를 지운 줄 알았어요.
[음악] 아들딸 낳고 사느라 나도 잊은척 살았고요. 억장이 무너진다라는 말이 뭔지 나는 24 알았습니다. 자 이제 아시겠죠?
제 상담실에서 대게도 못 치른 장례가 있으십니까?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어른 속이 어땠을지요? 어른은 그 길로 집에 가서 며칠 밤을 하얗게 세우셨답니다.
그러다 달력 앞에서 굳어 버리셨대요. [음악] 3월 첫 일요일에 동그라미가 쳐 있었답니다. 영감 글씨로 반밭 몇 태째 한해도 안 걸은 그 가지치기 날이요.
그리고 그 순간 당신 몸이 먼저 알고 있던 것 하나가 결락같이 꾀맞춰지더랍니다. 해마다 3월 초만 되면 알아눕던 몸살이요. 병원에선 노상 이상 없다는데 꼭 그맘 때만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던 그 보말이 애가 떠난게 3월 첫 일요일 새벽이었습니다.
머리는 잊은척했는데 몸이 49회를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지도사님 내가 알아놓으면 영감은 산에 갔어요. 49번을 우리는 그렇게 서로 모르고 지나쳤던 거예요.
어른은 확인이 필요했답니다. 광에 들어가 보셨대요. 영감직의 옆에 낮이며 톱이며 농기구들 사이에 대나무 [음악] 빗자루가 하나 세워져 있더랍니다.
마당비도 아닌 것이 손잡이가 반들반들하게 달아 있더래요. 몇십 년을 진 손떼가 아니면 그렇게 못 딸치요. 반밭에 빗자루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쓸데가 있는 거지요. 사시 사철. 눈이 오면 눈을, 잎이지면 잎을 쓸어야 하는 자리가요.
어른은 그 빗자루를 붙들고 광닥에 주어 앉으셨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눈물이 나는데 40년 원망이 녹는 소리가 같이 나더랍니다.
무정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이 양반은 49패를 나 몰래 거길 다녔구나. 그 주의 어른은 음내 떡집에 가셨답니다.
수수파떡을 한대 맞추셨대요. 떡집 여자가 돌떡하시게요 하고 묻더랍니다. [음악] 수수파이 원래 애들 돌상에 놓는 떡이니까요.
액을 막아 준다고 열살까지는 생일마다 해먹이는 떡이지요. 어른이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아십니까? 예, 좀 늦은 돌떡이에요.
떡집 여자야 무슨 뜻인지 알았겠습니까만은 저는이 대목을 전해 들으면서 한참 천장을 받습니다. 49 늦은 돌떡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3월 첫 일요일 새벽이었습니다.
어른은 뜻눈으로 밤을 세우고 계셨대요. 5시쯤 안방 문소리가 나더랍니다. 영감이 부스럭부스럭 배낭을 챙기는데 어른이 문틈으로 모셨답니다.
복장갑, 전지가위, 그리고 봉지에서 꺼내 넣는 것 하나 [음악] 알사탕 한 봉지였답니다. 그 순간 어른은 또 하나를 알아버리셨대요. [음악] 영감은 마트에 갈 때마다 계산대 앞에서 꼭 옛날 알사탕을 한 봉지씩 집었답니다.
손주들이 오면 주머니에서 사탕이 나오니까 식구들은 다 손주들 사탕인 줄 알았지요. 당 떨어질 때 먹는다고 [음악] 본인도 그랬고요. 그런데 손주 없는 3월 새벽 배낭에 사탕이 제일 먼저 들어가더랍니다.
49회 동안 그 주머니 사탕의 첫 임자가 누구였는지 어미는 그제야 안 겁니다. 어른은 방문을 열고 나가셨습니다. 미리 싸둔 보다리를 안고요.
그리고 등산학근을 매는 영감 등 뒤에서 신두해만에 처음으로 그 말을 하셨습니다. 나도 같이 가요. 영감은 끈을 매다 말고 멈추더랍니다.
등을 보인 채로요. [음악] 새벽 마루가 어찌나 조용한지 괴식의 소리만 컸다. 어른은 그 등에 대고 무슨 말이든 보태려다 말았대요.
어디 가느냐고도 뭘 안다고도 안 하셨답니다. 한참만에 영감이 일어나면서 딱 한 마디 하더랍니다. 길 미끄럽다.
단단히 신어라. 그게 다였답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지도 않고 안 된다고 막지도 않고요.
정순어르는 그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걸 영감등 뒤라 들키지 않으려고 목돌이에 얼굴을 묻으셨답니다. [음악] 나중에 제게 그러셨어요. 신두회를 살고 그 양반한테 그렇게 다정한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길 미끄럽다는 말이 뭐라고요? 산길 30분을 두 분은 아무 말 없이 걸으셨답니다. 그런데 영감이 자꾸 앞서다 서고 앞서다 서더래요.
돌부리가 나오면 발로 옆으로 차 놓고 가로 걸린 마른가지는 꺾어 던지고 갑파른 데은 말없이 서서 기다리고요. 50년 만에 처음 같이 걷는 산길에서 그 양반이 하는 배려는 전부 손발이었습니다. 입은 끝까지 조용했고요.
반밭은 산 중턱, 양지발은 비탈이었답니다. [음악] 늙은 밤나무들이 줄지어 선 제일 안쪽 제일 오래된 밤나무 한 구루 아래에 넓적한 돌 하나가 놓여 있더래요. 주변만 남은 눈이 말끔이 쓸려 있고 돌엔 티끌 하나 없더랍니다.
대비자루 자국이 흙에 곱게 나 있었답니다. 영감은 배낭을 내리더니 그래도 또 빗자루질부터 하더래요. 몸에 벤 49겠지요.
그러고는 사탕 봉지를 뜯어 돌 위에 가지런이 놓았답니다. 그리고 그 무뚝뚝한 양반이 돌 앞에 쪼그려 앉더니 정순 어른이 반백년 동안 한 번도 못 들어본 목소리로 말하더랍니다. 아빠 왔다.
정순어르는 그 자리에서 무릎이 꺾이셨답니다. 영감이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뒤에 선 아내 쪽은 안 보고 돌에 대고 [음악] 말을 있더래요. 오늘은네 엄마도 왔다.
두 분은 그 돌 앞에 나란히 앉으셨습니다.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답니다. 이윽고 영감이 띄엄띄엄 49 패치마을 꺼내 [음악] 놓기 시작했답니다.
왜 여기였는지부터요? 애가 추위를 탔다. 여기가이 산에서 먼저 드는 자리다.
언 땅도 여기가 제일 먼저 녹는다. 그래서 여기다 뒀다. 여름엔 아내가 첫 겨울을 만나 유독 추위를 탔답니다.
그 에비가 삼비타를 다 뒤져서 아침해가 제일 먼저 닿는 자리를 골랐던 겁니다. 그리고 그 위에 밤나무를 심었답니다. [음악] 밤나무밭 한가운데면 아무도 파헤칠 일 없고 가을이면 알밤이 떨어지니 애 머리 마치 배는 안 째겠다 싶었다고요.
49 전 젊은 에비의 샘이 그랬습니다. 왜 혼자만 다녔느냐고 정순 어른이 물으셨답니다. 왜 나한테는 끝까지 숨겼느냐고요?
영감은 한참만에 대답하더랍니다. 임자가 알면 임자는 여기서 못 내려갈 것 같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들 낳고 딸 낳고 인자는 아랫마을 보고 살아라. 나는 윗산 보고 살아 그랬다 이즈라던 말이 그런 뜻이었답니다. 이렇게 해 주는게 그 시절 사내가 아는 유일한 지킴이었던 거지요.
서틀다 못해 모지었지만요. 그리고 수도권 이사를 한 사건 마다한 이유도 그제야 나왔습니다. 내가 가면 여기라는 사람이 세상에 없다.
그럼 저애는 두 번 죽는다. 그러고 나서 영감은 그 밤 이야기를 했답니다. [음악] 49만에 처음으로요.
눈 때문에 돌아섰다고 반백년을 스스로 둘러댔는데 그날 돌 앞에서는 그 핑계를 내려놓더랍니다. 눈 핑계를 댔다만 사실은 겁이 났다. 그 눈속에 들어설 엄두가 그 밤엔 안 났어.
내가 조금만 더 모지었으면 없고 나섰으면 말끝이 거기서 끊겼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제 상담실 탁자에 앉아 정순 어른이 저한테 옮겨 주신 그 말이 나왔답니다. 지새끼 장례도 안 치어 준 놈이 무슨 나트로 빈소를 받고 꽃을 받아 조화를 받고 저를 받아 나는 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안 되는 사람 10월 마루에서 방문치기 전에 떨어졌던 그 한 마디가 이런 뜻이었습니다.
한가집밥을 시내 동안 안 먹은 이유도이어서 나왔답니다. 우리 애는 재밥 한 수를 못 얻어 먹었는데 앱이라는게 어디서 뜨신국을 넘기나 그래서 안 먹었다 버리었던 겁니다. 재판장도 없고 형기도 없이 저 혼자 선고하고 저 혼자 49회를 산버리 정순 어른이 그때 보다리를 끌렀답니다.
수수파떡을 돌 위에 놓고 그 밑에서 좀양 냄새벤 명주 보자기를 꺼내 매듭을 푸셨대요. 베네쪽 고리가 나왔습니다. 49 묵은 애가 처음 입었던 그 옷이요.
어른이 그러셨답니다. [음악] 영감 나도 죄가 있어요. 잊으라는 거 여태에 안 잊었어요.
이거 그날 불더미에서 몰래 빼돌렸어요. 나도 쉬애를 숨겼어요. 이거 영감이 그 저거리를 두 손으로 봤더랍니다.
갈키 같은 손이 벌벌 떨리더래요.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옆에 갖고 있었나? 그 말 끝에 그 양반이 무너졌답니다.
정순 얼음 말씀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영감 우는 걸 신도의 만에 처음 봤어요. 처음엔 소리도 없이 어깨만 들썩이는데 나중엔 창uny창 하고 소리가 세는게 꼭 녹숨문 열리는 소리가 씁디다.
49회 만에 열리는 문이요. 그리고 그 울음 끝에 영감이 안에 손을 붙들고 말하더랍니다. [음악] 미안하다 임자.
혼자 울게 해놓고 나는 우는 법을 잊어야 사는 줄 알았다. 두 분은 그 삼비탈에서 반나절을 오셨답니다. 49패에 밀린 울름이니 반나절이 뭐 길겠습니까?
울음이 잦아들고 나서 정순 어른이 그러셨대요. 영감 우리의 이름이나 지어 줍시다. 쉬인 해나 늦었지만 이름은 있어야지요.
영감이 한참을 밤나무 꼭대기만 올려다 보더랍니다. 그러다 입을 열었대요. 봄되면 봄되면 하다가 이름 하나를 못 지어줬다.
3월에 갔으니 봄이다. 봄이라고 하자. 봄이 강이 정순 어른이 성을 붙여서 소리내어 불러보셨답니다.
강범이이 세상 서류 어디에도 없는 이름이 49회만에 어미 아비 입에서 태어난 겁니다. 어른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이름은 혼자 못 짓습다.
어미 아비가 같이 지어야 그게 이름이지요. 두 분은 돌 옆에 호미로 얇게 [음악] 땅을 파고 베네적 고리를 개 묻었답니다. 수수파떡은 돌 위에 그대로 두고요.
까치밥처럼 산새들 먹으라고요. 영감이 흙을 다독다둑 두드리고 나서 이러더랍니다. 이제 옷도 있고 이름도 있다.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중턱쯤에서 영감이 걸음을 멈추더니 아랫을 내려다보며 말하더랍니다. 임자 나 죽거든 [음악] 장례식은 치르지 마라.
정순 어른은 가슴이 철렁했답니다. 이 산에서까지 그 소린가 싶어서요. 그런데 뒷말이 달랐습니다.
치르지 말고 화장에서 봄이 옆에 뿌려다오. 빈손이 좋아하니 다 소용 없다. 나는 이제 갈 때가 있는 사람이야.
[음악] 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 갈 때가 있는 사람이 된 겁니다. 같은 말로 시작하는데 10월에 그 말이 버리다면 3월에이 말은 소원이었습니다. 정순 어른이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아십니까?
그럽시다. 나도 그리로 갈라요. 셋시 삽시다.
이제 그러고는 두 분이 내려오시는데 내리막에서 영감이 굳이 뒤에 서더랍니다. 앞장서라고 해도 안 듣더래요. 인자 미끄러지면 받아야지.
그 말도 입으로는 안 하고 그냥 뒤에 서더랍니다. 신두에만의 처음같이 오은 산을 두 분은 그렇게 앞뒤로 내려오셨습니다. 여기까지가 벚꽃 필무렵 제 상담실에서 사흘에 걸쳐들은 이야기입니다.
정순 어르는 찰밥을 한 통 싸우셔서 제 앞에 놓으시고는 세 번을 오시면서이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리고 마지막 날 어른이 하신 말씀을 저는 수첩에 적어 두었습니다. 지도사님, [음악] 시내를 같이 살아도 안 물어본 말은 모르고 삽디다.
그때 세 번 물어보라고 안 하셨으면 나는 그 양반을 원망만 하다가 보낼 뻔했어요. 저는 그 공을 못 받겠다고 했습니다. 물어본 건 어른이시고 대답할 용기를 낸 건 영감님이시니까요.
저야 남의 초상 치르다 주어들은 걸 옮겼을 뿐이지요. 그런데 그 며칠 뒤에 뜻밖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음악] 만섭 어른이 당신발로 제 상담실에 오신 겁니다.
마른 채구의 건버서 핀 얼굴 모자를 벗어 두 손에 쥐고 문간에서 계신데 딱 봐도 이런 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싶은 어른의 얼굴이었어요. 어른은 자리에 앉더니 됐뜸 물으셨습니다. [음악] 화장에서 내 산에 뿌리는 거 법에 되는가?
저는 요즘은 길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신 산에 나무 아래 모시는 자연장이라면 가족 자연장지로 신고를 해 두면 되고요. 쟤를 흩어 모시는 것도 예전보다는 길이 넓어졌으니 그건 군청에 한번 물어보고 절차를 말자고요.
어른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더니 그럼 그리 하세 하고 일어나려다가 도로 앉으셨어요. 그러고는 한참만에 이러셨습니다. 자식들이 알아야 뿌려줄 것 아닌가?
맞는 말씀이죠. 자식들이 봄미의 존재를 모르는데 봄미 옆에 뿌려 달란 유원이 무슨 수로 이루어지겠습니까? 저는 어른께 사전 장례 의향서라는 걸 보여 드렸습니다.
웰다잉 교육 다니면서 배워온 서식인데 빈소를 차릴지 말지 화장할지 어디에 모실지 미리 적어 두는 종이에요. 법적인 유원장하고는 다르지만 자식들한테는 부모 뜻을 전하는 편지가 되지요. 어른은 돋보기를 꺼내 쓰고 항목을 하나하나 채우셨습니다.
빈소 없이 부고는 가족만 화장에서 뒷싼 밤나무 아래 여기까지는 금방이었어요. 그런데 맨 아래 남기고 싶은 말 적는 칸에서 어른이 볼펜을 준 채 한참을 계셨습니다. 창밖을 받다가 천장을 봤다가요.
입구꾹 눌러쓰기 시작하는데 다 쓰고 나서 저한테 종이를 밀며 그러셨어요. 받침이 맞는가? 좀 봐주게.
국민학교도 못 마친 세대 어른들이 그러십니다. 글씨가 삐뚤하다고 받침 틀릴까 봐 부끄러워하세요. 저는 그 삐뚤한 몇 줄을 읽었습니다.
너희한테 누나가 있었다. 이름은 강이다. 뒷싼 밤나무 밭에 있다.
아버지가 옆에 지켰으니 이제 너희가 엄마를 지켜라. 장례식은 치르지 마라. 아버지는 벌받으러 가는게 아니고 봄미한테 가는 것이다.
그러니 울지들 마라. 32년이 방에서 별별 유원을 다 받아 적어 봤습니다만 그날 처음으로 상담실에서 제가 울었습니다. 입으로는 평생 세 마디밖에 못 하던 어른이 종이 위에서는 이렇게 말할 줄 아는 겁니다.
어른은 제가 눈과 훔치는 걸 못 번척해 주시고는 모자를 쓰고 일어나시면서 딱 한 마디 하셨어요. 고맙네. 그 무뚝뚝한 어른의 고맙내 한 마디가 저는 어지간한 감사패보다 무거웠습니다.
그 의향서가 자식들한테 전해진 날 얘기도 들었습니다. 5월 어버이 날 무렵에 큰아들 진옥 씨 내외가 내려왔는데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말없이 그 종이를 내밀더랍니다. 48살 아들이 그 자리에서 소리내어 울었답니다.
자기한테 누나가 있었다는 걸 48에 처음 안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반백년 짊어진게 뭔지도요. 그다음 주말에 진옥 씨가 다시 내려와서 아버지한테 그러더랍니다.
아버지 저도 데려가 주세요. 누나한테 인사드려야지요. 그래서 지난 달엔 세 사람이 그 산에 다녀왔답니다.
영감님이 앞장을 섰다지요. 아들 손엔 알사탕이 한 봉지 들려 있었고요. 가족 단체 대화방엔 그날 밤나무 아래 찍은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답니다.
정순 어른이 그 사진을 저한테도 보여 주셨는데 사진 속 영감님이 글쎄요. 웃고 계신 것도 같았습니다. 참 세워보니 [음악] 올해 3월이 봄미가 떠나고 49번째 3월이었답니다.
49제라는 말이 있지요. 이래마다 일곱 번 49 날이 차면 영혼히 좋은 곳으로 떠난다는 제말입니다. 그덱은 날이 아니라 해로 지낸 셈입니다.
49 해만에 49제요. 우연이겠지요. 그런데 저는이 일을 오래해서 그런지 그런 우연 앞에선 [음악] 그냥 고개를 숙이게 되더라고요.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정리하겠습니다. 지난달에 저희 식장에 동네 개원 어른 초상이 들었습니다. 문상객들 틈에 만섭 어른도 오셨어요.
부위금 내고 절하고 상주 손잡아 주고 거기까지는 쉬내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날 그 어른이 식당에 앉으셨습니다. 상받는 자리예요.
직원이 육계장을 내가니 어른이 그릇을 남겨 놓고 천천히 한 그릇을 다 비우셨습니다. [음악] 저는 복도에서 그걸 보고 있는데 코끝이 시큰해서 혼났습니다. 흰해만의 첫 국구릇이었을 겁니다.
어른이 나가시다가 저하고 눈이 마주쳤어요. 그 양반이 걸음을 늦추더니 지나가면서 딱 한 마디 하셨습니다. 국기 뜻은 국이 따뜻하네.
그 한 마디가 무슨 뜻인지 여러분은 이제 아실 겁니다. 봄미가 제밥을 받았으니 에비도 이제 산 사람 밥을 먹는 겁니다. 49패만해요.
자, 이제 처음 약속드린 세 가지 현실을 여러분 손에 쥐여 드리고 물러가겠습니다. [음악] 내가 죽은 뒤 장례식은 치르지 마라. 어른들의 그 말은요.
첫째, 열은 번역이 필요한 말입니다. 돈 얘기처럼 들려도 속뜻은 따로 있어요. 제 어머니는 접대하지 말고 앉아서 울다 보네 다오였습니다.
둘째, 더러는 자식을 지키려는 말입니다. 장례식장에서 가족이 무너지는 걸 평생 봐온 어른들이 싸움 부틀을 통째로 치우는 겁니다. 그리고 셋째, 제일 완강한 어른들 가슴에 못 치른 장례가 하나 묻혀 있습니다.
그런 어른한테 그 말은 고집이 아니라 4패짜리 버이에요. 그러니 이것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그 말은 유원이 아니라 문입디다.
잠가 놓은 문이 아니라 두드려 달라고 있는 문이요. 그래서 오늘 밤 해보실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신 어른이 곁에 계시거든 딱 한 마디만 물어보세요.
알았어요. 시키는 대로 할게요. 그런데 이유는 나한테만 말해 줘요.
화도 내지 말고 설득도 말고 이유만요. 첫 번엔 시끄럽다 하실 겁니다. 세 번째쯤 운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말을 가슴에 품고 계신 분이라면 오늘 밤 달력 뒷장이든 수첩이든 펴시고 치르지 마라. 다음 줄에 이유를 딱 한 줄만 적어 두십시오. 만섭 어른의 몇 줄이 48살 아들을 어떻게 울렸는지 보셨지요?
자식들은 그 한 줄로 남은 평생을 삽니다. 장례는 안 치를 수 있어도 이별은 치어야 사는 법이니까요. 여러분 댁은 어떻습니까?
치르지 마라 하는 말씀 하신 적 있으십니까? 들으신 적 있으십니까? 우리 어머니는 이런 이유였다.
나는 사실 이게 무서워서 그랬다. 댓글에 그 한 줄이면 됩니다. 여러분의 한 줄이 어느 집 자식한테는 부모 속을 읽는 돋보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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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3월은 부디 혼자가 아니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