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번 설에 저희가 집으로 갈게요 김서방이 엄마 불고기 먹고 싶다네요 아니야 안하도 돼 각자 보내자 엄마 저번부터 대체 왜 그러세요 다른 집 자식들은 찾아오지도 않아서 난리인데 우리처럼 자주 오면 좋아하셔 하는 거 아니에요 수영아 이제는 너희가 오는게 부담스럽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자식도 사위도 다 손님이야 명절이고 생일이고 찾아오면 대접해 줘야 해서 나도 힘들어 아니 엄마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자식을 안 보겠다고 해요 엄마가 자식 밥 해 주는게 그렇게 억울하네요 그래 억울하다 너희는 집에 오면 손 하나 까다 안고 밥만 얻어 먹고 엄마 위해 밥 한번 사 준 적은 있어 그치만 그건 엄마니까 당연한 거잖아요 자식들이 오면 챙겨주고 당연한게
어디 있어 나도 누가 차려준 밥 먹고 거지도 안 하고 TV 보는 손님이 되어보고 싶구나 이제부터는 내 집에 오지도 말고 밥도 같이 먹지 말자 부모 자식 서로 안부만 묻고 사는게 좋겠다 안녕하세요이 사연의 주인공은 70세 서동숙 할머님이 서시 할머니는 스무살에 어린 나이에 열살 많은 남편에게 시집을 가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죠 어린 터시 할머니는 고된 시집 사리를 시작했습니다 명절이면 시댁 음식을 준비하느라 며칠 밤을 지새웠고 시부모님과 동서들 시누이들 아지 모두 대접해야 했습니다 창을 보는 것부터 음식 준비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모두 서시 할머니의 몫이었죠 명절이 끝날 무렵이면 온몸이 녹초가 되었지만 그때는 그런게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다 딸 수영이를 낳았는데 이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의 태도가 달라진 거죠 아들도 못 났는게 이런 말씀을 곧잘 하셨습니다 딸을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박대가 심해졌고 서시 할머니는 더욱 당시만 해도 시댁에 대들면 패가망신한다게 통념이 있고 더구나 며느리 입장에서는 감히 불평 한마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러움을 안고 친정으로 달려가 하소연 내 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참아라 시집살이가 다 그런 거지 너만 더 힘든게 아니야 였습니다 친정 상황도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모님은 남동생만 우리 장남 이라며 극진이 되 했죠 딸인 저는 그저 남의 집 식구 취급이었던 남의 집 사람이지 이런 말씀을 늘 입에 달고 사셨어요 세월이 흘러 친정 아버지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전 재산을 남동생과 며느리에게 물려 주셨습니다 땅도 집도
모두 동생 부부의 몫이 되었죠 반면 부모님이 아프시면 곁에서 극진히 병간호를 하며 봉양한 서시 할머니에게는 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단 한 푼도 물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서시 할머니는 친정의 큰 신감을 느끼고 친정 아버지에 가서 따져물었습니다 아버지 저도 재산 좀 주세요 아버지한테 저는 자식도 아니에요 친정 아버지는 차가운 눈빛으로 서시 할머니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은 안 돼 동생은 집도 사주고 땅도 사주면서 왜 저는 한 푼도 안 주시는데요 아버지 아프실 때 간호하고 용돈도 드인게 누군 동수 그놈 자식이 이런 거 한 번이라도 한 적 있어요 입이 있으시면 말씀해 보세요 아버지 시끄럽다 딸이 부모 봉양하는 건 당연한 거지 어디 감히 말대꾸야 서시 할머니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아버지 마음대로 하셔요 나도 이제 아버지 안 볼라니까 그렇게 서시 할머니는 부모와의 연을 끊으셨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혹시 부모님이 잘못을 깨닫고 연락하실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그 후로도 친정부모님은 끝까지 동생과 며느리만 챙기셨습니다 정작 친정 어머니가 위독하신 때 동생 부부는 난 한번 오지 않았고 장례식의 며느리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죠 끝까지 아들 며느리만 자식 취급한 친정 아버지도 재산 다 물려주고 말년엔 버림받다 요양 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아들 내외만 찾으셨지만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죠 이렇게 서시 할머니는 딸이라는 는 이유로 평생 차별 받으며 살았습니다 시댁에서는 며느리라는 이유로 친정에서는 딸이라는 이유로 늘 뒷전이었고 그래서
자신의 딸 수영이 만큼은 절대로 이런 서러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다짐으로 딸을 금이야 옥이야 키웠습니다 딸 수영이가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해 주려 했고 공부도 열심히 시켰죠 특히 딸이 결혼을 한다면 난 절대로 우리 부모님처럼 하지 말아야지 우리 딸의 든든한 편이 돼 줄 거야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남편은 먼저 세상을 뜨고 서씨 할머니의 딸 수영이는 할머니의 전폭적인지지 덕분에 무사히 대학 졸업후 은행원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딸이 자신 처럼 고생하지 않고 전문직을 가지게 된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어 우리 딸 은행원 됐다며 시장 가는 길에 만나는 이웃들에게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서른살이 되던 해 수영이는 소개팅으로 지금의 사위를 만났습니다 첫
만남에서 사위는 예의바르고 듬직해 보였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든든한 신랑감이었던 딸이 사위를 처음 소개시켜 줬을 때가 기억납니다 엄마 이분이 제가 말씀드렸던 민수 씨예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수영 씨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사위 될 사람이 참 잘생겼네 결혼식 날 씨 할머니는 행복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집에 고생했던 자신과 달리 딸은 좋은 신랑을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수영아 엄마는 내가 시집 가서 고생할까 봐 늘 마음이 아팠어 하지만 이제는 안심이다 넌 엄마처럼 살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엄마 저 때문에 고생하신 거 다 알아요 이제는 제가 요 그래 우리 딸 행복하게만 살면 그게 효도야 결혼 후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엄마 저 임신했어요 뭐라고 임신 축하한다 우리 딸 딸은 결혼 후 1년 만에 임신 소식을 전하며 서시 할머니에게 큰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10개월이 지나고 손주 하빈이가 태어났습니다 서시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죠 손주가 태어난 후 다른 아이를 직접 키우기 위해 근무하던 은행도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날들도 잠시 예기치 않은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사위가 다니던 회사가 구조 조정을 하면서 사위 역시 권고사직을 당하게 된 것이 그날 밤 딸은 서이 할머니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어 이일을 털어 놓았죠 엄마 우리 신랑이 회사에서 해고 당했대요 저도 일을 안 다니는데 우리 가족 이젠 어떡하죠 수영아 걱정하지 마 엄마가 있잖아 결국 딸도 다시 일을 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경력이 단절된 상태에서 복직은 쉽지 [음악] 않았고 결국 동네에 빵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었죠 그동안 서시 할머니에게 손주를 맡기고 싶다며 부탁했고 서시 할머니는 흔쾌이 손주를 맡기로 하셨습니다 엄마 죄송해요 하빈이 돌보기 힘드실 텐데 무슨 소리야 너희 사정 뻔이 아는데 내가 손주 좀 돌볼 수 있지 70세의 어린 손주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나이든 몸으로 아기를 돌 보려니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팠죠 하지만 손주의 웃음소리를들을 때면 모든 고단함이 뒤뚱뒤뚱 걸어오는 하빈이를 보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 찾아왔죠 그리고 딸 부부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서시 할머니는 더욱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사실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지만 딸이 고생하는 걸 보면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었죠 외식할 때면 항상 서시 할머니가 계산했고 손주 용품도 사 주셨습니다 엄마 저희가 계산할게요 됐어 됐어 가족끼리 뭘 그런 걸 따지나 나중에 형편 나아지면 그때 사 주면 되지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다음엔 꼭 저희가 살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딸과 사위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배려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거죠 식사를 맞춰도 계산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물건을 살 때도 당연히 서시 할머니가 계산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시 할머니는 딸을 위해 돈을 낼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당연하게 여기는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운함을 느끼셨습니다 어느 날 한번은 일부러 시험을 해 보았습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일부러 계산하지 않고 딸과 사위가 어떻게 하나
지켜 보았죠 그런데 딸은 갑자기 전화가 온 것처럼 핸드폰을 귀에 대고 밖으로 나갔고 사위는 신발 끊을 고점에 척하더니 휴대폰만 들여다보았습니다 옆 테이블에 종업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이 환경을 지켜보았습니다 아이고 이걸로 계산해 줘요 부끄러워진 서시 할머니는 결국 카드를 꺼내 들었죠 그런데 이번에도 딸과 사위는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날 밤 저씨 할머니는 한 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도와준 걸까 이러다가 우리 딸이 버릇 없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애들이 형편이 어려워져서 그런 거겠지 말은 안 해도 얼마나 힘들겠어 그래 새직장 자리 잡을 때까지만 좀 참자 다행히 사위는 새 직장을 구했고 손주도 어린이 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독박
유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야 서시 할머니도 긴 터너를 빠져나온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나도 좀 쉬어야겠다 서시 할머니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평생 남편과 시댁을 위해 그리고 딸을 위해 살아왔는데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죠 그렇게 딸 부부의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지만 그들의 태도는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이제는 서시 할머니를 더 자주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집에서는 공짜로 밥을 먹고 밖에서는 일부러 비싼 음식을 시켜 할머니를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엄마 오늘은 고기집 가요 하빈이가 갈비 먹고 싶대요 이번에도 또 식이야 너무 부담되지 니 아이고 할머니가 손주 하나 고기 사 주는 것도 아까워 하시네 이런 말을들을 때마다 농담인 줄 알면서도 서씨
할머니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괜히 손주를 핑계대는 것이 더욱 서운했지 명절이 되면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딸 부부는 아침 일찍 와서 저녁까지 입곤 했는데 정작 차례상을 차리거나 음식을 준비하는 데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서시 할머니가 혼자서 모든 준비를 하는 동안 다른 소파에 앉아 휴대폰만 보고 있었고 사위는 TV man 보고 있었죠 수영아 엄마 좀 도와줄래 김치도 꺼내야 하고 엄마 저 피곤해서 좀 쉬고 있을게요 하빈이 보느라 힘들어서 하빈이는 지금 자고 있잖니 그래도 피곤하단 말이에요 엄마 명절인데 저 좀 잠깐이라도 쉬게 해 주세요 친정이아요 설거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씨 할머니는 설거지를 하면서 딸이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지만 딸 부부는 마치 보지 못한 적대
폰만 들여다보았습니다 명절 음식을 준비하느라 쌓인 그릇들을 보면서도 꿈쩍하지 않았죠 명절에 나만 일하는게 맞는 건가 자식이 아니라 꼭 손님 받는 것 같네 에휴 서시 할머니는 점차 서운함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딸과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참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서시 할머니는 점차 딸 부부와의 만남이 부담스러워졌다 이번 주말에 갈게요라고 딸이 말하면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만남을 점차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만남을 줄이다 보면 딸에게 서운함을 느낄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셨죠 하지만 그런 서씨 할머니의 마음과는 다르게 큰 사건이 터지고 말았죠 그건 바로 서시 할머니의 칠순잔치 날 생긴 일이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서시 할머니의 칠순이 다가왔습니다 딸 부부는 요즘 누가 칠순
잔치를 하냐며 가족끼리 좋은 데에서 식사를 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고 서시 할머니도 같은 생각이었기 이에 동의했습니다 한편으로 속으로는 오늘만큼은 당연히 딸이 내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엄마 제가 예약했어요 한정식 집인데 괜찮죠 한정식 좋지 깔끔하고 좋았니 인당 30만 원은 넘는 비싼 가격 되었지만 자신의 생일이니까 특별히 딸이 준비한 것이리라 생각하고 부담없이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식사가 끝나갈 무렵 믿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머 하빈이가 갑자기 칭얼거리며 딸은 갑자기 급히 일어났고 사위는 장모님 저희 먼저 가보겠습니다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마치 계획이라도 척척 움직이는 모습이 서씨 할머니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 순간 서씨 할머니는 딸과 사위의 만행의 분노를 느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느낀 서씨 할머니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잠깐 목소리가 떨렸지만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니 이번엔 너희가 밥값을 내렴 서시 할머니는 일부러 주변에 들리게 크게 말했습니다 사위는 잠시 당황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마지못해 카드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고 카드을 내미는 손짓도 [음악] 퉁명스러워 그날 밤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하지만 그 사과의 전화가 아니었습니다 엄마 오늘 왜 그러셨어요 창피하게 뭐가 창피하다는 거니 엄마가 돼서 자식한테 밥값 받아내려고 하시고 거기가 얼마나 비싼 집인데요 참나 내가 고른 집이지 니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싼 데로 갔을 텐데 할머 는 순간 숨이 막혔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해준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았죠 딸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을 파고 들었습니다 서시 할머니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이 자식을 망쳤다는 것을 말이죠 서시 할머니는 그날 밤 홀로 앉아 생각에 잠 겼습니다 이대로는 안 돼 자식의 잘못은 부모로서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해이 기회에 저 못된 버릇을 단단히 고쳐 줘야지 서시 할머니는 결심했습니다 더는 딸과 사위에게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고 말이죠 그리고 딸과 사위가 자신의 잘못을 느낄 수 있게 그들이 했던 방식과 똑같이 행동해 깨달음을 주고자 했습니다 다음 주말 딸 부부가 또 만나자고 하자 서시 할머니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서이 할머니가 먼저 일어섰습니다 엄마 계산은 너희가 하면 되지 난
바빠서 먼저 갈게 딸과 사위에 당황한 표정을 보며 서시 할머니는 속으로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딸과 사위는 밖에서 만나자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죠 1월이 되고 설이 다가오자 엄마 이번 설에 저희가 갈게요 김서방이 불고기 먹고 싶다네요라며 딸이 전화로 말했지만 서씨 할머니는 오지 말라며 단호히 거 했 하지만 이런 서씨 할머니의 의견을 딸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엄마 저번부터 대체 왜 그러세요 다른 집 자식들은 찾아오지도 않는데 우리처럼 자주 오는 사람이 어딨어요 엄마는 우리가 만나는게 그렇게 싫으세요 서시 할머니는 이제 속마음을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수영아 어떤 부모가 자식이 걸마다 하겠니 근데 이제는 너희가 오는게 부담스럽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자식도 사위도 다 손님이야 명절이고 생일이고 찾아오면 대접해 줘야 해서 나도 힘들어 엄마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자식을 안 보겠다고 해요 엄마가 자식 밥 사 주는게 그렇게 억울하네요 그래 억울하다 집에 오면 손 하나 깠다가 밥만 먹고 밖에선 엄마가 매번 계산하니 그 그치만 그건 엄마니까 당연한 거잖아요 당연한게 어디 있어 이제 명절 때 보고 싶으면 우리 집으로 올게 아니라 너희가 나를 초대하려 나도 누가 차려 준 밥 먹고 설거지도 안하고 TV 보는 손님이 되어보고 싶구나 서씨 할머니의 강경한 태도에 따은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이어서 서시 할머니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집에도 오지 말고 밥도 같이 먹지 말자 서로
안부만 묻고 거리를 두는게 좋겠다 서시 할머니의 단호한 태도에 따른 비쳤고 결국 발걸음을 끊었습니다 전화도 문자도 오지 않았죠 하지만 서시 할머니는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자식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줘야 할 때였습니다 딸이 연락을 끊은 후 서시 할머니는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딸과의 만남에서 느껴졌던 부담이 사라지자 할머니는 오랜만에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일상에 집중하며 삶의 활기를 찾았습니다 딸에게 연락이 없으니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외식비 걱정도 없어졌고 집에서 음식을 준비할 필요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동네 공원을 산책하며 여유를 즐겼고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자주 나갔습니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며 그녀의 일상은 점점 밝아졌습니다 한편 다른 시간이
지나면서 서씨 할머니의 부제를 크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늘 가까이에 있던 어머니가 더 이상 먼저 연락하지 않자 딸은 점차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위는 딸을 설득하며 말했습니다 여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수영아 솔직히 우리가 그동안 너무 했잖아 장모님한테 얻어먹기만 하고 감사 표현도 안 하고 나도 반송 많이 했어 장모님께 연락해서 그동안의 일들 진심으로 사과 드리자 그리고 이제부터 그러지 않겠다고 빌자 사위의 말을들은 딸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자존심을 접고 어머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저예요 수영이 그래 수영아 무슨 일이니 엄마 저희가 다 잘못했어요 저희 집에 한번 와 주실래요 제가 직접 음식 준비할게요 이제는 제가 엄마를 대접하고 싶어요 오랜만에 딸에 집을 방문한
서시 할머니는 깔끔하게 차려진 음식을 보고 깜짝 짝 놀랐습니다 딸과 사위는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대접하며 할머니에게 사과했습니다 엄마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엄마 말이 다 맞아요 그리고 엄마한테 받기만 하고 돌려드린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깨닫고 나니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장모님 저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고마운 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철이 없었어요 제발 한 번만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이건 그동안 저희가 어머님께 받기만 한 것 같아서 약소하지만 준비했어요 사위가 내민 것은 사위 명의로 된 카드였습니다 어머님 그동안 고생만 하셨는데 이걸로 생활비로 쓰시고 백화점 가서 쇼핑도 하시면서 친구분들이랑 좋은데도 다녀오세요 힘들 때
저희 도와주신 거 잊지 않고 차근차근 다 갚을게요 딸과 사위가 건낸 선물에 서시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이런 거 바라고 내가 그런 말을 한게 아니야 그러나 사위는 고개를 숙이며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장모님 제발 받아주세요 저희가 그동안 받은 것들을 조금이라도 갚는 마음이에요 이건 꼭 받아주셨으면 해요 사위의 진심 어린 태도의 마지못해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후 서시 할머니는 딸과 사위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과거처럼 잦은 만남이나 집에서 부담스럽게 대접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며 거리를 두고 싶다는 의견을 단호히 말했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까지하니 사과는 받을게 지만 이번 일로 깨달은게 있단다 우리 앞으로는 간단히 만나자 엄마도 나이를 먹었고 시대도 편했어 요즘 같은 시대에
꼭 무리하게 볼 필요는 없잖니 서로에게 편안한 방식으로 지내는게 더 좋을 것 같구나 딸과 사위도이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이후로 명절이나 특별한 날마다 가족은 커피숍에서 만나 간다히 차를 마시며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가지기로 서로 합의했습니다 커피숍 만남의 딸과 사위는 처음엔 낯설어 했지만 이내 가족 모두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서시 할머니는 더 이상 음식을 차리거나 외식비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딸과 사위도 어머니와의 만남이 덜 부담스러워졌다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딸이 커피숍에서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이제 이렇게 만나는게 더 편한 것 같아요 저희도 부담 덜고 엄마도 힘드시지 않고요 서시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러게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다 그동안 괜히 음식을 차리고 치우느라 고생만 했던 것 같아 이번 경험은 서시 할머니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자식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거나 부모로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 애쓰는 것이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느꼈던 서운함도 이제는 마음 한구석으로 어 두기로 했습니다 자식은 자식들로 부모는 부모대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이 깨달음은 할머니를 더욱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딸과 사위에게 실망하거나 기대를 하지 않았고 딸 부부 역시 어머니와의 만남을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가족은 명절과 특별한 날마다 간단히 만나 안부를 묻고 커피숍에서 헤어지는 만남을 이어갔습니다이 방식은 가족 모두에게 부담을 덜어 주는 동시에 서로를 더
이해하고 존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시 할머니는 이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자식들과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연은 여기까지였습니다 구독 좋아요 댓글은 영상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주일 후 아들 부부에게 내용 증명이 발송되었습니다 30일 이내 퇴거 요청이라는 문구을 보자 곧바로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어머니 이게 무슨 짓이에요 당장 취소하세요 취소 못한다 이제 그 집에서 나가거라 어머님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는 잘할게요 앞으로는 잘한다고 됐다 내가 뭐 너네한테 남들만큼 잘하는 거 바란 줄 알아 수술하고 힘들 때 옆에 있어 주고 검진 받으러 와서 하룻밤 재워 달란 거 그게 그렇게 어려웠니 아무리 그래도 엄마가 자식한테
어떻게 그래요 제가 얼마나 도했는데는 개뿔 병원의 얼굴 한번 비추지도 않고 그게 네가 아는 효도야 그건 와이프가 이제 나도 더 이상 이제 너희한테 아쉬울 것 없다 빨리 진빼이 저희가 갈 때가 어디 있다고 나가라는 거예요 응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갈고 없으면 네가 말한 찜질방이나 근처 호텔가 보는 건 어떠니 안녕하세요 사연의 주인공은 65세 막순 할머님이 임시 할머니는 첫 결혼에서 얻은 아들 영혼을 홀로 키우며 살아오셨습니다 28배 이은 나이의 남편과 사별한 후 젊은 나이의 미망인이 된 임시 할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영훈아 엄마가 너만큼은 꼭 잘 키울게 약속할게 아을 내거나 슬퍼할 시간도 없이 임시 할머니는 두
살배기 아들을 위해 강인하게 살아가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식당 일도 하고 장사도 하며 아들을 키우셨습니다 그 시대에 젊은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삶은 생각보다 더 고단했는데 막순 씨 힘들게 혼자 키우지 말고 좋은 인연 한번 만나 보는게 어때요 주변 지인들의 걱정 어린 권유가 이어졌고 결국 35세 나이의 중매로 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남편은 자식이 없는 상태였고 아들 영웅이를 친아들처럼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특히 남편은 영훈이가 이복 경제로 인해 어린 마음에 상처받을까 염려했을 따라 자녀를지 않 로 결정했습니다 나도 우리 아이를 낳고 싶지만 영원이가 상처받지 않게 하는게 먼저예요 우리 셋이서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봅시다 남편의 따뜻한 배려와 헌신 덕분에 임시 할머니는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셨습니다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아들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치셨고 아들의 학업과 성장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어릴적 아들은 효심이 깊고 애교가 많은 아이였습니다 어느 날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임시 할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내가 크면 엄마 고생 안 하게 해 줄게요 우리 아들 그냥 바르게만 자라다 오 그게 엄마한텐 효도야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부터 아들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영훈이는 점점 물질적인 것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명품 가방을 메고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주말마다 이어지는 모임에 빠지지 않으려 용돈을 더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어느날 퉁명스럽 게 말했습니다 엄마 이번에는 진짜 필요해서 그래요 친구들이랑 약속
있는데 못 나가면 어떡해요 임시 할머니는 아들의 변화를 눈치 채셨지만 공부하느라 스트레스 받아서 그럴 거야라는 스스로를 위로하셨습니다 대학 졸업후 아들은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들이 소개팅으로 며느리를 만났고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죠 처음 며느리를 봤을 때만 해도 임시 할머니는 참 밝고 착해 보이는 며느리라고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묘한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신혼집은 서울로 알아보고 있어요 저희 앞으로 승승장구할 텐데 그에 걸맞는 집이어야 결혼식 전부터 며느리는 는 무리한 요구들을 하기 시작했고 아들 영훈이는 그런 며느리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려 했습니다 임시 할머니는 평생 모은 돈을 아들의 결혼 준비를 위해 쏟아부었고 결혼 후에도 꾸준히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셨습니다 당신 왜 그렇게
아들 내외가 달라는 대로 다 해주시오 집을 사달라 인테리어를 해달 우리 형편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요 남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임시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임시 할머니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보 영훈이가 어릴 때 생각나서요 아버지 없이 잘한다고 얼마나 서러워 했는지 친구들 아버지 참관 수날 아파서 학교도 안 간다고 했었어요 그때 제대로 해 주지 못한게 미안하고 자꾸 마음에 걸려서 그래요 임시 할머니의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이제라도 우리 아들 떳떳하게 살게 해 주고 싶어요 며느리도 잘 살게 해 주고 그러다 보니 자꾸 마음이 약해지네요 남편은 한 숨을 쉬며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당신 마음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오 특히 명절때면
며느리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보였고 영훈이는 그런 며느리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를 점점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임시 할머니는 자식한테 뭘 바라고 키운 것도 아니고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감하 시간이 갈수록 상처는 깊어만 갔습니다 임시 할머니의 정성은 점점 귀찮은 간섭으로 취급되었고 발걸음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던 중 얘기치 못한 사건이 임시 할머니를 찾아왔습니다 어느날 임시 할머니는 가슴에서 이상한 덩어리를 느끼고 병을 찾으 습니다 건강 검진도 꾸준히 받아왔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믿기지 않는 마음으로 검사실에 들어섰습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유방암이기 진단을 내렸고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담담히 받아들이려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과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평생 아프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암이라니 밤마다
식은 땀을 흘리며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다 마침내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세요 엄마 무슨 일 있으세요 영훈아 엄마가 검사를 받아 임시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의 아들도 긴장한 듯했습니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 검사 결과 안 좋으세요 아이래 유방 아이기 잠시 전화기 넘어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가 라고요 지금 은 괜찮으신 거예요 아들의 걱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래도 자식밖에 없구나 생각하며 임시 할머니는 안도에 한 숨을 내쉬었습니다 서울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구나 엄마가 알아서 잘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아니에요 병원도 제가 알아볼게요 그리고 주말의 시간 내서라도 꼭 찾아뵐게요
통화를 마치고 나서 임시 할머니는 오랜만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남편은 허리 디스크로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 함께할 수 없었지만 멀리서나마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서울까지 같이 가고 싶지만 허리가 영 말썽이니 원 내가 당신과 함께 갈 순 없지만 집에서 당신을 위해 생선도 굽고 따뜻하게 맞이 할게 치료 잘 바고 와요 주말이 되자 아들이 약속대로 찾아왔습니다 큰 병원 예약도 직접 해 주었고 이번 수속도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일이 바쁘다며 대신 며느리에게 임시 할머니의 병간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엄마 제가 일 때문에 올 수는 없지만 저 대신 와이프가 잘 돌봐드릴 거예요 임시 할머니는 며느리의 표정이
못마땅해 보이는 것을 눈치 챘지만 병든 시어머니를 간호해 주는 것만으로 고마워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따뜻한 말과 아들의 약속과는 달리 서울에서의 병원 생활은 임시 할머니에게 큰 고통이었습니다 특히 항암 치료는 그녀의 몸과 마음을 하루하루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첫 항암 치료를 받던 날 구토가 심의 물 한 모음이 간절했습니다 며느리에게 조심스럽게 부탁드렸습니다 예 현주야 물 좀 가져다 줄래 지만 며느리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제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까 드렸잖아요 한 번에 말씀하셔야죠 임시 할머니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지만 며느리는 드라마를 시청하며 무심히 과자만 씹어 댔습니다 옆침대 보호자가 안타까운 마음에 물을 건네 주었습니다 주변 환자들의 따가운 눈길이 느껴졌지만 며느리는 전혀 개이치
않는 듯했습니다 병문안 시간이면 더욱 참담했습니다 며느리는 친구와 큰 소리로 통화하며 병실 분위기를 어지럽혔다 병실 있데 답답해 죽겠어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이를들은 임시 할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이불 자랑만 만지작 거렸습니다 맞은편 보호자가 조심스레 부탁했습니다 조금만 조용히 해 주실 수 있나요 다른 환자분들도 계시잖아요 하지만 며느리는 오히려 비웃듯 데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통화도 못해요 제가 뭐 큰 소리 낸 것도 아니잖아요 결국 임시 할머니가 민망한 마음에 에 숙여 사과하며 상황을 무마했다 저희가 조용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슴 한켠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지만 며느리의 태도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기만 할 뿐이었죠 어머니 저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속이 있어서요 그래 조심히 가거라 매일 이런 핑계로 병실을 비우며 병간호를 소홀이 하는 며느리를 보며 임시 할머니는 아들과의 통화해 전부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엄마 치료는 받을 만하세요 제가 못 가서 미안해요 아니다 너도 바쁜데 뭘 현주가 알아서 잘해 주고 있어 하지만 괜히 아들 걱정시키지 말아야지 내가 이런 말 해봤자 아들이랑 며느리 이간질시키는 거 밖에 더 되겠어 하는 생각에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임시 할머니를 더욱 서글프게 하는 건 주변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역 침대의 할머니는 딸이 매일 퇴근 후 들러 어깨를 주물러주며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살들이 물었고 맞은편 침대의 환자는 손주가 직접 그린 그림을
자랑 술의 벽에 붙여 두었습니다 반면 임시 할머니는 며느리의 무심한 태도와 아들의 긴 부제 속에서 외롭게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창밖으로 스러져가는 노를 바라보며 임시 할머니는 조용히 을 훔치 가족이라는 이름이 이토록 공허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습니다 암 치료만 끝나면 더 이상 이런 서러운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의사는 경과가 좋다며 앞으로는 정기적인 검진만 잘 받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술 부위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라 의사는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서울까지 오가야 하는 검진이 임시 할머니에겐 또 다른 시련이었다 a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려면 아픈 몸을 이끌고 먼길을 왔는데 하루쯤은 쉬었다 가고 싶었습니다 아들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임시 할머니는 아들집 현관 비밀번호도 몰라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술한지 얼마되지 않은 몸으로 한시간 넘게서 있자니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영아 병원에서 끝났는데 너희 집에서 하룻밤만 묻고 가면 안 될까 어머니 검진 끝나고 내려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아 곤란한데 우선 아내한테 물어볼게요 잠시 후 며느리와 통화가 연결되었습니다 어머님 비밀 번호는 좀 곤란할 것 같아요 요즘은 개인 정보가 중요하잖아요 제가 좀 있다 집에 갈테니까 그때 열어 드릴게요 그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라고네 어쩔 수 없잖아요 아니면 다음에 오시든 가요 임시 할머니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수술 부위가 욱신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추운 바람을 맞으며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동안 지나가는 이웃들의 궁금한 시선이 따가웠는데 거의 두 시간이 지나서야 며느리가 나타났습니다 어머님 오래 기다리셨죠 제가 일이 좀 있어서 집 안으로 들어서자 며느리의 태도는 더욱 차가워졌습니다 어머님 저희 집이 좁아서 창고 방이라도 주무셔야 할 것 같네요 며느리가 가리킨 곳은 집안 작은 창고 방이었습니다 빨리하다 남은 세제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설마 나보고 여기에서 잘하고 어머님 갑자기 찾아오셔서 저희도 방이 없어요 그리고 애들 공부도 해야 하는데 방해 되시 아아 임시 할머니는 서운한 마음에 퇴근하고 돌아온 아들을 따로 불러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아들의 대답은 더욱 차가웠습니다 어머니 저희 아내 불편해하지 않게 배려 좀 해 주세요 아픈 거
이해하는데 저희도 사정이 있잖아요 그래도 나도 수술한지 얼마 안 됐는데 어머니 제발 그만하세요 아내가 그때 병간호도 해 줬잖아요 그리고 자식한테 너무 바라시는 거 아니에요 임시 할머니는 아들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평생 자식 뒷바라지하며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알았다 미안하구나 떨리는 목소리로 방으로 들어온 임시 할머니는 창고방 바닥에 이불을 폈습니다 수술 자국이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찬바닥에 눕자 통증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한밤중 잠을 이루지 못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방 밖에서 아들과 며느리의 대화가 들려왔습니다 여보 어머님 언제 가실 거예요 이러다 계속 우리 집에 오시면 어떡해요 걱정 마 내가 내일 잘 얘기할게 빨리요 오늘 재워 드린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하셔야 하는데
자꾸 이런 식이면 나도 곤란해요 어머니가 여기 계시면 애들 교육에도 안 좋다고요 알았어 내일 병원은 동네로 옮기시라고 할게 그래요 이제 그만 끊어내 매번 검진 핑계로 오시는 것도 그렇고 창고방 구석에서 임시 할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몸을 움크린 채 한밤 중에 들려오는 아들과 며느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을 파고 들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 수술 전날 밤 아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걱정마세요 제가 다 책임질게요 그 말이 이제는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임시 할머니는 이불을 꽉 [음악] 움켜지었습니다 그렇게 뼈저린 밤이 지나고 새벽 력이 되자 임시 할머니는 조용히 짐을 쌌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창고 방에서의 그날 밤 이후 임시 할머니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남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달려 나왔습니다 아내의 핏기 없는 얼굴과 흐트러진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 앉았습니다 당신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왜 이리 창백 하오 임시 할머니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그날 밤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 놓았습니다 문 앞에서 두 시간 넘게서 있었던 일 차디찬 창고 방에서 밤을 보낸 일 아들과 며느리가 나눈 차가운 대화까지 남편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습니다 평소 온화하기 하던 남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여보 사실 내가 지금까지 영훈이한테 강하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한게 신 자식이 아니라서 였어 혹시라도 내가
편견으로 대하는 건 아닐까 늘 조심스러웠는데 이제는 잠을 수가 없네 남편은 와들 들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습니다이 못된 녀석 내가 한마디 해야겠어 여보 아니요 이번만큼은 내가 나서야지 내 비록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30년을 함께 살았고 그동안 친자식처럼 키웠는데 남편은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꾸짖었습니다 이 막되먹은 놈 내가 어떻게 어머니를 그렇게 대할 수 있느냐 창고방이 아니네 어머니 수술한지 얼마나 됐다고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아버지 그게 입 다물어 우리가 너를 30년을 넘게 키워줬다 그동안 너한테 한 번이라도 뭐라 한 적 있더냐 근데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 전하기 너머로 아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널
위해 얼마나 희생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 개놈의 자식 거면 연 끊어 우리한테 뭐 바라지도 말아 임시 할머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참고 견뎌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보 이제 됐어요 이제 나도 달라 줘야 할 것 같아요 나도 더 이상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을래요 이제 우리 둘만 의지하고 살아요 임시 할머니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거치고 대신 단단한 결이가 깃들었다 변호사를 만나러 가요 다음날 부부는 유명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변호사는 서류를 꼼꼼히 검토한 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네 아드님 댁에 소유권이 어머님 명의로 되어 있고 중요 계약서도 아직 작성하지 않으셨다고요 이건 명백한 소유권 치매입니다 게다가 환자 방치와 학대의
정황도 있으니 퇴거 요청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임시 할머니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변호사님 시작해 주세요 이제는 제 인생을 찾고 싶습니다 일주일 후 아들 내외에게 내용 증명이 발송되어 30일 이내 퇴거 요청이라는 문구을 본 아들은 곧바로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어머니 이게 무슨 짓이에요 당장 취소하세요 아니 취소 못한다 이제 그 집에서 나가거라 엄마가 자식한테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제가 얼마나 효도 있는데 임시 할머니의 목소리가 차가워졌습니다 효도는 개뿔 내가 무슨 효도를 했니 병원에 얼굴 한번 비추지도 않고 수술한 어미를 창고 방에 재우고 이게 네가 아는 효도야 그건 와이프가 이제 와서 내 안에 핑계대지 마라 너희 둘 다 똑같아 너도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지 며느리도 달려와 울먹이며 애원했습니다 어머님 저희가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는 잘할게요 임시 할머니는 비웃듯 말했습니다 앞으로는 잘한다고 됐다 내가 뭐 너네한테 남들만큼 잘하는 거 바란 줄 알아 수술하고 힘들 때 옆에 있어 주고 검진 받으러 와서 하룻밤 재워 달란 거 그게 그렇게 어려웠니 임시 할머니는 이제 당당했습니다 이제 나도 이제 너한테 미안한 거 더 이상 없다 이제 우리도 우리 인생 살란다 며느리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저희가 어디 갈 때가 있다고 나가라는 거예요 임시 할머니의 입가에 차가운 미서가 번졌습니다 응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갈고 없으면 찜질방이나 근처 호텔 가보는 건 어떠니 어머니 이제 그만 연락하려 병에
걸려보니 남은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겠더라 나도 이제 남편과 행복하게 노후나 보내며 살 생각이 한다 너희는 거기서 새지 바라보면서 불 자식의 말로가 어떨지 곰곰히 생각해 보는게 좋겠구나 아들 부부가 떠나고 난 뒤 임시 할머니는 남편과 마주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여보 이제 우리 둘만의 시간이 시작된 것 같네요 그래요 당신이 결단을 잘 내렸어 이제는 우리가 행복해질 차례요 집을 매각하는 과정 은 생각보다 순조로웠습니다 좋은 위치에 있는 아파트 였기에 매매가도 높았습니다 아들 부부는 한동안 연락을 시도했지만 임시 할머니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들 내외는 30일 안에 집을 비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며느리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환자방 치 사실이
병원 커뮤니티에 알려지면서 누군가 며느리의 회사 게시판에도이 사실을 올렸고 며느리가 다니던 의료 기기 회사에서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고객의 건강을 책임지는 회사에 항암 치료 중인 시어머니를 방치한 직원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라면 노인 학대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소문이 퍼지자 결국 며느리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의 상황도 아들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모신 방법이 알려지자 거래처에서도 하나 둘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어머니도 그렇게 대하는 사람과는 거래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국 아들은 승진은 커녕 해고 당했고 며느리와의 관계도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어머니를 창고 방에 재웠다는 이야기가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퍼지면서 그동안 싸온 체면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웃들의 손가락질과 수근거림 속에서 아들 부부는 결국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한편 임시 할머니 부부는 매각 대금으로 조용한 동네의 아파트를 마련했습니다 옥상에 작은 텃밭도 있어 상추도 기르고 방울 토마토도 심었습니다 남편은 퇴직금으로 장만한 낚싯대를 들고 근처 저수지로 낚시를 다니기 시작했고 임씨 할머니는 동네 문화 센터에서 그림 교시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내가 그림 그림 어때요 와 벌써 이렇게 잘 그리네요 우리 집 거실에 걸어두면 딱 좋겠어 가장 기쁜 소식은 얼마 전 전기 검진에서들은 의사의 말이었습니다 항암 치료가 잘 듣고 있어요 이대로만 가면 완치도 기대해 볼 수 있겠네요 임시 할머니는 매일 아침 텃밭에 나가 채소들을 돌보며 생각합니다 이제야 진짜 내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네요 남편은 아내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습니다 우리 이제 시작이요 앞으로 더 행복한 일들이 많을 거요 이제 임시 할머니의 하루는 평화롭습니다 더 이상 구속도 미안함도 없습니다 아침에는 텃밭을 가꾸고 오후에는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는 남편과 산책 책을 합니다 가끔 동네 할머니들과 모여 차도 마시고 웃음꽃도 피웁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동안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게 이렇게 행복한 거였네요 임시 할머니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자 은 이제 남보다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진정한 나의 삶을 살고 있다 더 이상의 후회도 미련도 없다 이제 나는 자유롭다 이제 임시 할머니의 인생에는 봄날이 찾아왔습니다
텃밭의 꽃들처럼 그녀의 삶도 활짝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사연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 좋아요 댓글은 영상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정시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먼저 연락을 시도했지만 예상대로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도 잊지 않은 채 그대로였습니다 뭐예요 엄마 갑자기 부르시고 무슨 일이세요 맞아요 어머니 밥 빠 죽겠는데 저는 왜 오라고 하신 거예요 정시 할머니는 준비해 온 서류를 천천히 꺼냈습니다 너희둘 지금이 집이 누구 것인지 알고나 있니 그야 오빠 집이죠 갑자기 무슨 그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세요 이걸 잘 봐라 등기부 등본에네 남편 이름이 어디니 순간 며느리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것이라 믿었던 집이 사실 시어머니 명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은 듯했어
그 그럼 저희가 여태껏이 집에서 산 건 뭐예요 오빠가 자기 집이라고 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했겠지 하지만이 집은 처음부터 내 노후를 위해 마련한 집이야 그러니까이 집은 내 거고 어떻게 할지도 내 권한이야 말도 안 돼 그리고 현영아 어제 내가 놀이터 벤츠에서 한 말 그때 다 들었다 그동안 일부러 내 연락 다 무시한 거니 어머니 크게 아니고요 안녕 하세요이 사연의 주인공은 67세 정미숙 할머님이 정시 할머니는 오늘도 새벽 5시에 눈을 떴습니다 20년 넘게 이어온 시장 국수 장사의 습관이 몸에 배어 이제는 알람시계도 필요 없었습니다 창밖으로 희미하게 비치는 새벽 빛을 보며 할머니는 문득 젊은 시절 남편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를 떠올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사진
속 남편의 모습도 흐릿해졌다 기억만큼은 여전히 선명했습니다 경제 위기가 한창이던 그 시절 남편은 작은 공장을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은 공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다가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습니다 구급차에 실려가는 남편의 손을 잡고 있던 정시 할머니는 남편에 마지막 말을 듣게 됐습니다 미수가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 그리고 우리 아들 영광이 잘 부탁해 그것이 남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들 영광이는 겨우 다섯 살이었습니다 정시 할머니에게 남은 건 남편이 진 산더미 같은 빛과 새파랗게 어린 아들 하나 뿐이었죠 당신없이 내가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고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그날 밤 정시 할머니는 잠든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이 말을
세도 없었지만 그녀는 마음을 타봤습니다 못할게 뭐 있겠어 살고자 하면 다 살수 있어 그 말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정시 할머니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습니다 시장에서 남은 채소를 사다가 다듬어 팔고 남의 집발견 청소를 도맡았습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식당 설거지까지 손이 닿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공장 사모님으로 살았던 그녀에게 이런 고된 노동은 처음이었습니다 밤이면 온몸이 쑤셨어 손바닥은 갈라지고 튀었습니다 하지만 정시 할머니는 한 숨 한 번 내쉬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빚을 갚고 아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을 악물고 버텨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들 영광이는 자랐습니다 공부는 그리 잘하지 못 했고 덤벙대는 성격의 실수도 찾았지만 착하고 정많은 아이였습니다 친구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발 뻗고 나서서 도와주었고 어머니가 시키는 심부름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영광이 마음 하나는 참 예쁘구나 정시 할머니는 그런 아들이 안스럽고 애틋했습니다 남들처럼 똑똑하진 않아도 순수한 마음만큼은 구보다 예뻤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아들이지 아버지를 닮아 너무 순해서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시 할머니는 국수 장사로 한 푼 두 푼 모았습니다 할머니이 국수는 정말 어머니 손맛이 그대로네요 아이고 과찬이세요 그저 정성권 만든 것뿐인데 처음에는 시장 좌판에서 시작했지만 정갈하고 정성스러운 국수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단골이 늘었습니다 그 덕에 마침내 동네에 작은 가게도 낼 수 있게 되었죠 아이고 이게 꿈이야 생시야 이런 날도 오는구나 허름하지만 자신만의
가게를 갖게 된 그날 정시 할머니는 밤늦게까지 가게를 닦고 또 닦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사진을 가게 한 켠에 걸면서 눈 시율이 붉어지곤 하셨죠 그렇게 남편의 빚을 모두 갚았을 때 정시 할머니는 처음으로 한 숨을 돌렸습니다 이제는 매달 저축도 할 수 있었고 아들의 대학 등록금도 걱정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한편 아들 영광이는 세수 끝에 수도권에 한 대학에 겨우 합격했고 졸업 후에는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했습니다 어머니 저 드디어 취직했어요 그날 정시 할머니는 마치 자신이 취직한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우리 아들 이제 어엿한 회사원이 됐네 내 아버지가 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지만 평화로운 날들도 잠시 아들은 사회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엄마
저 결혼해야 할 것 같아요 정시 할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국수를 내려 놓으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결혼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니 처음에는 단순히 결혼하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지만 곧이어 아들의 이야기에 정시 할머니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교제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여자 친구가 임신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대 여자는 24살에 같은 대학 후배로 갓초 있지만 아직 취직도 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들 역시 일으로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날 저녁 정시 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너희는 도대체 뭐가 준비됐다고 결혼을 한다는 거야 살 집은 있니 돈은 여자의 부모님은 뭐라 하시는데 친정에선 우리끼리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데 엄마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저저 정말 잘살 자신
있어요 이제 겨우 한 숨 돌리나 했는데 또다시 험난한 길이 예고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뱃속에 소중한 생명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휴 애가 생겼으니 결혼은 해야지 하지만 영광아 내 말 똑똑히 들어라 내가 너희한테 줄 집은 내 노후를 위해 마련한 집이야 너희에게 그냥 주는게 아니 야 너희가 책임감 믿게 돈을 갚아야 할 거야 알겠니 아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네 엄마 그렇게 할게요 정말 감사해요이 은혜 절대 있지 않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결혼식 준비의 정시 할머니는 어린 아들 부부를 위해 혼수와 가전 제품까지 모두 부담했습니다 입 며느리의 집안도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에 친정에서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정시 할머니는 아들의 걱정스러운 새로운 출발을
지켜보며 부디 아들과 며느리가 가정을 잘 꾸려 나가기를 뒤에서 응원했습니다 결혼 초기 24살의 어린 나이의 시집온 며느리는 서툴고 정시 할머니는 그런 며느리를 보며 한 숨을 내쉬곤 했습니다 요즘 애들은 다들 그런 거지 뭐 나도 한때는 어렸으니까 첫 아이를 낳고 육아에 서툴러 하는 며느리를 위해 정시 할머니는 밤낮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기적이 갈기 병 소독까지뿐만 아니라 출산한 어린 며느리까지 챙겼습니다 정시 할머니가 사실상 두 명을 유가를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죠 다행히 며느리는 정시 할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따랐습니다 어머니 정말 감사해요 저 어머니가 안 계셨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래 너도 어린 나이에 시 집어서 고생이 참 많구나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며느리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변화였습니다 할머니가 건네는 말에 대답이 짧아지고 눈을 마주치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점차 유가와 집안일을 전적으로 할머니에게 맡기기 시작했죠 어머니 오늘은 제가 친구들과 약속에 있어서 애 좀 봐 주실 수 있으세요 어머님 이번 도 부탁드려요 저도 이제 일단이 아아 아침마다 어김없이 어린 손주를 데려오는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오늘도 부탁드려요 예 근데 요즘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니니 회사에서 야근이 많아져서요 어쩔 수 없어요 일이 그렇게 바쁘면 애 돌봐줄 가정부를 쓰는게 어떠니 어머니 남의 손에 맡기는 것보다 할머니가 보는게 더 좋잖아요 퇴근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주말에도 친구들과의 약속을 핑계로 아이를 맡기곤 했습니다 정시 할머니는 손주가 예뻐마다 하진 않았지만
점점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명절이 다가오자 정시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일찍 와서 음식 준비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며느리는 당일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슬금슬금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도 없어 보였죠 어머니 죄송해요 친정에 들렀다가 오느라 좀 늦었네요 사과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고 준비해 놓은 음식도 거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대신 소파에 앉아 휴대폰만 지작 거렸습니다 정시 할머니는 서운한 마음을 달래며 며느리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밥은 좀 같이 먹지 그러니 가족끼리 대화도 좀 하고 괜찮아요 친정에서 먹고 왔어요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며느리는 끝내 고개도 들지 [음악]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명절마다 일이 [음악] 반복됐습니다 며느리는 점점 더 늦게 오거나 아예 정시 할머니의 집에 방문조차
하지 않았고 와도 얼굴만 비치고가 버렸습니다 어느 날 정시 할머니는 참다못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영광아 며느리가 왜 이렇게 명절에 안 오는 거니 아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습니다 저 현영이가 어머니와 대화하는게 좀 불편하네요 아직 어려서 그러니 엄마가 좀 이해해 주세요 그 말은들은 정시 할머니는 며느리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죠 하지만 더 충격적인 말은 손자의 입을 통해 들려왔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아침 일찍 며느리가 손을 정시 할머니의 집에 맡긴 날이었죠 손자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무심고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할머니랑 엄마는 사이가 안 좋아요 응 그게 무슨 말이니 엄마가 할머니 전화 받지 말라고 했어요 받으면 귀찮아진요 정시 할머니는 손주의
말을 듣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자 순진한 눈빛 마주하면 대답을 하지 했습니다 할머니 마음한구석이 찢어지는 것죠 중 정 할에 예상 한 일 생로 기 강진에서 심한 제 발된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정 할머니에게 수술이 필요할지도 른 말했습니다 할머님 검사 결과 심장 판막에 문제가 있으셔서 수술하실 수도 있으세요이 부분은 다시 한번 검사해 보죠 아무래도 가족분들이 설명 들어야 하니까 다음에 오실 때는 가족분들이랑 같이 오세요 마침 아들은 부산으로 장기출장을 간 상황이었고 정시 할머니에게 연락할 가족은 며느리 뿐이었습니다 정시 할머니는 떨리는 마음으로 며느리에게 전화 걸었지만 며느리는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여보세요 얘가 왜 전화를 안 받아 수차례 전화했지만 모두 부제 중 통화로
남았고 결국 정시 할머니는 문자를 하나 남겼습니다 현영아 결과가 안 좋게 나와서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랑 같이 오라는데 혹시 시간 될 때 전화 좀 해 줄래 하지만 며느리에게 답장은 오지 않았고 결국 정시 할머니 혼자서 병원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아들에게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아들은 또다시 주저리주저리 변명만 늘어놓았습니다 요즘 애엄마가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래요 제가 따로 현영이한테 따로 말할게요 어머니 정시 할머니는 무거운 한 숨을 내쉬며 아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더 큰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며느리가 날 무시하는 것도 서러운데 아들마저 저렇게 무심해서 야원 정시 할머니는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며칠 후 정시 할머니는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다행히
다시 한 검사 결과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수술을 하지 않고 통원 치료로 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온 참이었어이를 알리려고 아들의 집에 방문하기 위해 가던 중 아파트 놀이터 근처 벤츠에서 며느리가 친구와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제 현영이 아니야 무슨 대화를 저렇게 크게 한담 진짜 시어머니가 또 전화했어 이번에 어디 아프시다고 연락 왔는데 내가 일부러 싹다 무시했지 아니 그런 건 아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건데 왜 나한테 연락을 하는 거야 어이가 없어이 나이의 홀어머니 간병까지 떠 맞게 생겼어 무조건 회사 핑계 애 핑계 되면서 절대 병원같이 안 갈 거야 혹시 몸이 더 안 좋아지면 요양 병원에라도 며느리의 막말은 계속 이어졌지만
정시 할머니의 귀에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시 할머니는 충격에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그동안 신혼집에 살림 사리에 심지어 손주까지 돌봐주며 아들과 며느리를 챙겨 줬는데 며느리는 자신을 그저 귀찮은 짐작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심지어 며느리는 필요할 때는 막무 안내로 연락하고 찾아오더니 정작 자신의 전화도 문자도 귀찮다며 일부러 무시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정시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돌아섰습니다 더 이상들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솟 샀습니다 며느리의 통화 내용을들은 후 정시 할머니는 무거운 발 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시 할머니는 문득 아들도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수없이이 문제에 대해 말했는데도 변명만 늘어놓고 아무 대처도 하지 않았지 아무래도 영광이도 알고
있었을 거야 어차피 아들에게이 사실을 이야기하더라도 아들은 분명 며느리에 편만 들며 어머니가 이해 좀 해 달라거나 한 번만 참아 달라고 할게 뻔했습니다 그동안 늘 그래왔듯이 결국 정시 할머니만 손해를 보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 불보듯 뻔했죠 정시 할머니는 깊은 한 숨을 내쉬며 세상 평생을 희생하며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 그동안 내가 아들 며느리를 너무 오냐오냐 했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가르쳐 줘야겠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걸 말이야 지금까지 손주를 생각해서 참고 견뎌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정시 할머니는 깨달았습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정시 할머니는 서제로 향했습니다 오래된 서랍장 깊숙한 곳에서 낡은 서류 봉투를 꺼냈습니다 그
아내는 아들 부부를 위에 모아둔 통장과 등기부등본이 고스란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정시 할머니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서류를 검토하는 변호사의 표정은 진지했습니다 한참을 서류를 살펴본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모든 권리가 할머님께 있어요 그럼 제가 어떤 대처를 해도 문제가 없다는 거죠네 전혀 문제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관대하 거예요 변호사와의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정시 할머니는 이제 실행에 옮길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실 며느리에게 먼저 연락을 시도했지만 예상대로 전화는 받지 않았습니다 문자 메시지도 잊지 않은 채 그대로였습니다 정시 할머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습니다 끝까지 받지 않으려나 보네 그래 내가 무시한이 전화로 결국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 수학이 너머로 들리는 아들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했고 아 내일 저녁에 집에 좀 들리려 네 갑자기요 너랑 현영이한테 같이 얘기할게 있어 무슨 일이신지 그나 현이도 꼭같이 오라고 전해주렴 다음날 저녁 아들과 며느리가 정시 할머니의 집을 찾았습니다 며느리의 표정은 불만이 가득했고 귀 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어머니 밥 빠 죽겠는데 저는 왜 오라고 하신 거예요 아들은 이미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한 듯했죠 엄마 갑자기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신지 준비해 온 서류를 천천히 꺼냈습니다 너희 둘 지금이 집이 누구 것인지 알고 나 있니 아들은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며느리는 오히려 뻔뻔한 태도로 대답했습니다
그야 오빠 집이죠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그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세요 정시 할머니는 며느리의 말에 코 우을 치며 서류를 내밀었습니다 이걸 잘 봐라 등기부 등본에 내 남편 이름이 어디니이 집은 처음부터네 명이었어요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아들은 당황한 듯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이 집 내가 너희에게 임시로 빌려 준 거야 너희가 나중에 잘 자리 잡고 갚아 가겠다고 약속했으니 믿었지 그런데 지금까지 뭐 하나 갚은게 있냐 며느리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것이라 믿었던 집이 시어머니 명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그 그럼 저희가 여태껏이 집에서 산 건 뭐예요 오빠가 자기 집이라고 했단 말이에요 정시 할머니는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마이야 그렇게 했겠지 하지만이 집은
처음부터 내 노후를 위해 마련한 집이야네 뭐라고요 며느리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현영아 어제 내가 놀이터 벤츠에서 한 말 그때 다 들었다 정시 할머니의 말에 며느리는 그동안에 뻔뻔한 태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이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손을 덜덜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린 며느리는 소파에 털썩 주저 앉은 채 말했습니다 어 어머니 그게 아니라 그래서 그동안 일부러 내 연락 안 받은 거니 어머님 그건 그냥 친구랑 하는 농담이었어요 진심이 아니었는데 아들은 무슨 상황인지 영문도 모른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며느리는 눈물을 성이며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정시 할머니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내 도움을 당연하게 여긴 것도 문제지만 특히 며느리가 나를
개무시하고 연락도 일부러 피하는 꼴을 보니 이제는 더 참을 수 없어 너희가 나를 대우해주지 않는데도 너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 줄 이유가 없잖니 마음 같아선 그동안 못 받은 이자까지 전부 받아내고 싶지만 손주 얼굴 봐서 그건 참으 마 그 대신 다른 세입자들 럼 보증금과 월세를 내 못 하겠다면이 집에서 나가 아들이 황급히 어머니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엄마 보증금의 월세까지 내라고요 우리 사정 뻔이 아시잖아요 지금 저희 상황 정말 힘들어요 다시 기회를 주시면 앞으로 저희가 엄마한테 더 잘할게요 하지만 정시 할머니의 결심은 확고했습니다 수년간 쌓인 서운함이 폭발한 순간이었죠 너희가 지금 당장 월세를 낼 여력이 없다면 다른 싼 집을 알아보는게 좋겠다 이제
너희도 예전처럼 어리지 않아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려 며느리는 갑자기 무릎을 고르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평소에 도도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비굴한 태도로 빌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잠깐 미쳤었나 봐요 하지만 정시 할머니의 마음은 이미 돌아선 뒤였습니다 됐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며느리에게 연락하지 아아 그니까 너도 앞으로 연락하지 마렴 어차피 너네 돈 필요할 때만 연락했으면 오히려 속이 다 시원하구나 그 말을 끝으로 정시 할머니는 아들 부부를 집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이후에 정시 할머니는 며느리와 아들이 당장 집을 떠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유의 기간을 주었지만 아들 부부는 보증금과 월세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둥 변명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정시 할머니는 이삿날을 정하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집을 비우도록 명령했습니다 결국 아들 부부는 자신들이 살던 집을 비워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정시 할머니는 아들 부부와의 연락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손주를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아팠지만 이제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로 했습니다 집을 매각하지 않고 세입자들에게 임대해 매달 월세를 받기로 결정한 정시 할머니는 그 돈으로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던 여행을 다니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 때도 됐지 평생 남 뒷바라지만 하며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나도 내 삶을 즐기며 사는 거야 정시 할머니는 홀로 여행 가방을 챙기며 조용히 다짐했습니다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생각에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정시 할머니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제주도 있습니다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아래에서 그녀는 오랜 세월 였던 응어리를 풀어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데 왜 난 지금껏 이걸 몰랐을까 정시 할머니는 미소 지으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제주도의 풍경은 정시 할머니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장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과의 대화 작은 카페에서 마신 한잔의 커피 그리고 조용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까지 내가 이렇게 맘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오다니 할머니는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었습니다 정시 할머니는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평생 만나보지 못했던 풍경과 경험을 했습니다 강릉의 바닷가 전주의 한옥마을 그리고 서울의 북적이는 거리까지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로웠습니다 한편 아들과 며느리는 살던 곳과 조금 떨어진 작은 구축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크고 편리했던 신혼 집에서의 생활과는 달리 좁고 오래된 아파트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고단하기도 없었습니다 그마저도 대출을 받아 무리하게 들어온 것이어서 매달 빠듯한 이자와 월 로 인해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팍팍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죠 며느리는 더 이상 친구들과 수달을 떨며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대신 동네 마트나 음식점에서 파트타임 일을 구해 부족한 생활비를 메꾸어야 했습니다 여보 서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적응이 안 돼요 나도 그래 하지만 우리가 자초한 일이잖아 그동안 어머님이 얼마나 서운하셨죠 이제 알 것 같아요 아들과 며느리는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이 사실은 어머니의 희생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신차린
아들은 더 이상 어머니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가장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월급에서 남는 돈은 저축하며 아내와 아이를 위해 더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다졌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도이 일을 계기로 과거 자신의 무례함과 경솔함을 후회하고 정시 할머니에게 한 행동을 속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아들과 며느리는 정시 할머니를 찾 왔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뻔뻔하고 어리석었던 예전의 태도와는 다르게 머리를 깊게 숙이며 그때의 일에 대한 용서를 빌었습니다 어머니 제발 저희 연락 좀 받아 주세요 어머니가 왜 그렇게 서운하셨죠 그동안 어머니가 해 주시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어머니 저도 정말 반성 많이 했어요 제가 얼마나 못된 며느리는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어머니가 절 위에 애써
주셨는지 깨달았어요 너네가 이렇게 달라진 걸 보니 많이 느낀게 있긴 한 것 같구나 진심으로 반성한듯한 아들 며느리의 태도를 보며 정시 할머니는 마음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하지만 이제는 나를 위해 시간 보내기도 바쁘구나 우리 연락은 꼭 필요할 때만 하자 내가 너희에게 먼저 연락할 일도 없을 거야 정시 할머니의 단호한 태도에 아들과 며느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아들과 며느리는 할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명절이나 중요한 날이면 선물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거리를 좁히려 했었고 이런 노력하는 모습에 정시 할머니는 아들 부부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가까운 관계를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 저희랑 같이 사시는
건 어떠세요 혼자 사시기 힘들지 않으세요 말은 고맙지만 너무 가까이 지내면 또다시 상처받는 일이 생길 거야 딱이 정도 거리가 제일 좋아 정시 할머니는 명절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가끔 아들 부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가끔 만나서 더 좋았고 가끔 만나기에 서로의 소중함을 더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시 할머니는이 선택의 후회는 없었습니다 여행을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바깥 생활을 하며 외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정시 할머니는 오랜 시간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 자유와 여유를 누리며 행복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할머니의 단호한 결단은 가족들에게 책임과 예의를 가르치는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가족도 너무 가깝게 지내기 단 한발짝 떨어져 지내는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지 정
할머니는 또 여행길을 오르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날들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아닌 오롯이 자신으로서 삶을 살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사연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좋아요 구독은 영상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