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 돈 저도 못 꺼냅니다. 은행에서 25년 밥을 먹고 지점장까지 단 큰아들이 제 아버지 빈소 복도에서 그리 말했습니다. 세상에 남도 아니고 자식이 그것도 은행 지점장이라는 사람이 아버지 통장에든 돈을 못 꺼낸다뇨.
저는 올해 이른셋이 된 박순례라고 합니다. 지난 4월에 쉰해를 같이 산 영감을 하루 아침에 잃었지요. 그밤 빈소 뒷방에서 큰아들이 어미한테만 털어 놓은 은행 이야기를 오늘 여러분께 그대로 옮겨 드리려고 합니다.
통장 가진 집이면 남의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 말씀드릴 통장 하나는 섭다이 지난 시방도 입에 올리려면 목이 먼저 뜹니다. 영감 가던 날 새벽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그 양반은 새벽 5시면 눈이 저절로 떠지는 사람이었어요. 40년을 하루 같치요. 그날도 어스름에 부스럭 소리가 나길래 저는 을뢰마당 수도가에 나가시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쿵 하는 소리가 났어요. 화장실 문 앞이었습니다. 여보, 여보 하고 흔들어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일으키려니 어찌나 무겁던지요. 손이 벌벌 떨려서 119 번호 세 개를 한참만에 눌렀습니다. 구급차가 골목을 못 찾을까 봐 맨발로 큰 길까지 뛰어나가 손을 흔들었어요.
4월인데도 새벽 바람이 어찌나 차던지 그 바람맛을 지금도 잊지를 못합니다. 병원에 닫고 30분이나 지났을까요? 젊은 의사가 나와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심장이라고 했습니다. 손 쓸도 없었다고요. 이은 여덟.
감기 한번 크게 앓은 적 없는 양반이 아침밥 한 술 못 뜨고 그렇게 갔습니다. 기가 막힌게 뭔지 아세요? 그 양반하고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말이 전날 저녁 밥상에서 김치가 쉬었네 어쩌네 하는 반찬 타박이었다는 겁니다.
52년을 살고 마지막 말이 그거예요. 사람 일이 이렇습니다. 마지막인 줄 알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음악] 간호사가 영감 옷가지랑 지갑을 비닐에 담아 내밀었습니다.
지갑을 연니 경로우대 교통카드 한 장하고 안주머니에 꼬깃꼬기 접어둔 5만 원짜리 한 장이 나왔어요. 평생 그 양반 비상금이 그 한 장이었습니다. 그걸 쥐고 병원 복도에 주저 앉았는데 곡도 안 나오고 딸국질만 납디다.
큰아들 진우는 신내은행 지점장입니다. 올해 신두이고요. 딸 은정이는 49 같은 시내에서 학원 경리 일을 봅니다.
전화받고 날려온 진우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뭐였는 줄 아세요? 울지도 않고 가족 단톡방에 부고를 정리해 올리고 원목과에 가서 사망진단서를 열통이나 떼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서운했어요.
아비가 죽었는데 종이부터 챙기는구나 싶어서요. 그게 다 뜻이 있는 일인 줄은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장례는 병원 장례식장에 3일장으로 차렸습니다.
국학꽃 사진 속에서 영감은 낯설기 웃고 있는데 밖에서는 육계장 냄새가 나고 접수대에는 부위금 봉투가 쌓이고요. 하부인이 오셔서 제 손을 잡는데 20년 넘은 안사동끼리 존데가 어찌나 깍뜻해지는지요. 초상집 법도가 그렇습니다.
사람은 슬픈데 예절은 바쁘지요. 조은객들이 하나같이 묻는 말이 있었습니다. 통장 정리는 해 놓으셨냐고요?
누구는 은행에서 알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하고 누구는 요즘은 큰일 난다 하고 절하러 와서 훈수가 반입뛰다. 그런데 이틀째 되던 날 상조 사무장이 조용히 저를 찾았어요. 빈소 사용료며 음식값 중도금을 치뤄야 한다고요.
병원 응급실값도 밀려 있었습니다. 저는 별 걱정을 안 했어요. 영감 앞으로 통장이 열러신 걸 아니까 애들 더어 찾아서 내라 하면 되겠거니 했지요.
그때 애들 작은 아버지 되는 서방님이 나섰습니다. 영감 하나뿐인 동생이에요. 형님 하고 부르더니 목소리를 낮춥다.
요즘은 다들 그럽니다. 돌아가신 거 은행에서 알기 전에 비밀 번호 아는 사람이 현금 인출기선 미리 뽑아 놓는 거예요. 안 그러면 뒷닐이 골치 아파요.
저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옆에서 듣던 진우 낯이 굳는 줄도 모르고요. 복도로 나가자던 진우가 딱 잘라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작은 아버지. 어허, 참 은행 다니는 놈이 더 답답하네. 형님, 돈 형님 식구가 쓰는데 누가 뭐라 그래?
뭐라 그럽니다. 법이 뭐라 그래요? 다들 그러다가 어떻게 되는지 제가 제일 잘합니다.
그러고는 저를 보고 그 소리를 한 겁니다. 어머니, 그 돈 저도 못 꺼냅니다. 지점장인 저도요.
말도 마세요. 그때는 참말로 야속했습니다. 남들은 아들이 은행에 있으면 뭐든 수월하겠다고 부러워하는데 정작 제 아비 장렙비 하나 못 꺼낸다뇨?
은행물을 25 년 먹더니 피도 눈물도 전산이 됐나? 저 혼자 복장이 터졌지요. 그날 밤 2시쯤이었을 겁니다.
조문게 끊힌 빈소 뒷방에서 진우가 소주병을 땄습니다. 잔을 채워 놓고는 마시지도 않고 한참을 돌리기만 해요. 그러다 입을 뗐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신 걸 은행이 아는 순간 아버지 이름으로 된 통장은 전부 그 자리에서 얼어붙습니다. 지급 정지라고 해요. 어머니도 저도 은정이도 한 푼도 못 건드립니다.
장례비도 안 나와요. 아니 야야 그게 무슨 소리냐? 50년을 같이 벌어 같이 모은 돈이다.
내가 그 사람 마누라야. 마누라도 안 됩니다. 어머니 서운하시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법이 그렇습니다.
돌아가신 순간부터 그 돈은 아버지 돈이 아니에요. 상속 재산이라는 아직 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딴 물건이 되는 겁니다. 그 물건 임자를 정하는게 상속인데 상속인이 어머니 한 분이 아니잖아요.
저도 있고 은정이도 있고요. 은행 입장에서는 누구 하나한테 함부로 내줬다가 나머지 식구가 왜 내줬냐 따지고 들면 고스란이 물어내야 해요. 그러니 아예 다 잠가 놓고 식구 전원이 서류로 합의해 오기 전에는 안 여는 겁니다.
진우가 잔을 비우더니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희 지점 단골 어르신이 돌아가셨는데 그 밤에 작은 아들이 아버지 카드로 현금인출기에서 500만 원을 뽑았답니다. 장례비 하려고요.
그런데 사이가 틀어져 있던 큰아들이 그걸 도둑질이라고 고소를 했어요. 동생은 경찰서에 불려다니고 형제는 결국 법정에서 갈라섰답니다. 장렙비 500만 원에 형제가 남되는 걸 참고해서 다 봤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버지를 말린 거예요. 그 말을 듣는데 낮에 서운했던 마음이 슬그머니 부끄러워집다. 아이고, 나는 아들 속도 모르고.
그런데요. 그때만 해도 저는 진우가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가 더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사흘 내내 부위금 봉투가 효자 노릇을 했습니다.
접수보던 조카가 봉투를 세어 건네주면 그걸로 병원비 정산하고 음식값 중도금 치르고요. 봉투 뒷면 이름 석자를 눈으로 짚어가면서 이양반 조이금으로 이양반 병원비를 내는구나 했습니다. 상조 사무장이 그럽뛰다.
[음악]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어머님, 어느 집이나 닥치면 다 이렇게 한답니다. 발인날 아침에는 비가 오락가락했습니다.
영정 뒤를 따라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은정이가 내내 재파를 붙들고 걸었어요. 화장터 앞에서는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온몸으로 알았습니다. 그 우라마하던 어깨가 작은 항아리 하나로 돌아오는데 그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오늘은 울자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니까요. 발인하고 사흘 뒤에 진우가 연차를 내고 왔습니다. 주민 센터에 사망 신고를 하러 가야 한다고요?
신고서에 영감 이름 석자를 쓰는데 볼펜이 청근이었습니다. 서류를 받아둔 창구 직원이 그럽디다. 어르신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라고 있는데 같이 신청하고 가세요.
저는 그게 무슨 보험 파는 소린가 했어요. 진우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나중에 물으니 돌아가신 분 앞으로 된 예금이며 보험이며 대출이며 연금이며 밀린 세금까지 전국 금융 회사 것을 한꺼번에 조회해 주는 나라 서비스랍니다. 사망 신고하러 간 김에 종이 한 장 더 쓰면 되고 돈도 안 들어요. 결과는 기관마다 이래에서 스알 사이에 문자로 온다고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진우가 말했습니다. 어머니이 신청이 들어가면 오늘 부로 전국 은행이 아버지 가신 걸 압니다. 이제 아버지 통장은 정말로 다 잠겼어요.
그러니 누가 뭐라건 카드니 이체니 만질 생각은 아예 마세요. 어차피 받을 돈이면 순서대로 다 받게 돼 있습니다. 순서대로.
[음악] 그 순서라는 말이 그렇게 무거운 말인 줄는 몰랐지요. 그로부터 열흘쯤 지나서였습니다. 우편남에 고지서가 수북한대 관리비며 전기세며 죄다 민합이라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그런 것들이 전부 영감 통장에서 다이 저절로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통장이 잠기면서 그것까지 몽땅 멈춘 겁니다. 산 사람 사는 집에 불값, 물값이 죽은 사람 통장에 매여 있었던 거지요. 이런 것까지는 아무도 안 가르쳐 줍다.
진우한테 또 손 벌리기가 못해서 제가 농협벨 갔습니다. 영감 통장하고 도장하고 비밀번호 적은 쪽지까지 챙겨서요.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데 무릎이 시큼거려서 정영했을 지나며 아이고 연골 주사 맞을 때가 지났구나 했습니다.
내가 무슨 부기 영화를 보자고이 나이의 통장 보다리를 끼고 나섰는지요? 번호표를 뽑고 한시간을 기다려 창고에 앉았습니다. 젊은 여직원이 통장을 받아 전산을 두드리더니 낮빛이 난처해집니다.
고객님,이 계좌는 지급 정지가 걸려 있어서요. 상속 절차를 밟으셔야 해요. 내 그럴 줄 알면서도 혹시나 했지요.
아가씨, 내가이 사람 마누라요. 52년을 산 마누라. 불값 물값이 밀렸다는데 그것도 안 돼요?
직원은 고개를 숙이며 종이 한 장을 뽑아 줬습니다. 종이에는 준비할 서류가 죽혀 있었어요. 사망자 기본 증명서, 가족 관계 증명서, 상속 재산 분할 협의서, 상속인 전원의 인감 증명서, 당체 무슨 말인지 글자가 곤두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하필 돋보기도 두고 온 날이었거든요. 뒷사람 눈치는 보이고 서로움은 못까지 차오르고 은행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 여태껏 모르고 살았습니다. 경로당에서도 말이 분분했습니다.
누구는 장례식장에서 다들 미리 뽑는다더라. 누구는 그러다 자식이 잡혀 간다더라. 누구는 반은 나라가 떼다더라.
죄 반쪽자리 말들이에요. 나중에 진우한테 하나하나 배우고 보니 어른들 사이에 도는 은행 이야기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무섭게 틀렸습니다. 그 틀린 절반이 사람 잡는 거고요.
집에 와서 보험밥통에 남은 밥을 혼자 습니다. 국 한 가지 놓고 앉으니 밥알이 모래알이에요. 그 양반 살았을 적엔 반찬 투정이 그림더니 투정할 사람 없는 밥상이 이렇게 넓은 줄은 몰랐지요.
주말에 진우가 건너와서 그 종이를 밥상에 펴 놓고 하나하나 짚어 줬습니다. 어머니, 어려울 것 없어요. 딱 세 갈래예요.
첫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증명. 둘째, 상속인이 누구누구라는 증명. 셋째, 그 상속인들이 전원도 찍은 합의서.
이 세 가지가 갖춰지면 은행 문이 열립니다. 그때 진단서 여러 통 떼 놓은 것도 다 이럴 때 쓰려던 거예요. 전원이라는게 누구누구냐?
어머니하고 저하고 은정이 셋입니다. 목수로 치면 어머니가 1점 5 저희 남매가 각각 1이에요. 사과 세 개 반을 나눈다 치면 어머니 몫이 한 개 반인 셈이지요.
그런데 어머니 몫시 문제가 아닙니다. [음악] 셋 중 한 사람만 빠져도 전액은 못 받아요. 은행은 두 사람 도장 가져왔다고 2분의만 내주고 그러지 않습니다.
전원 아니면 안 냅니다. 급한 관리비는 어쩌냐 하니 진우가 잠깐 뜸을 드립디다. [음악] 100만 원 안파까지는 서류를 간단히 보고 내주는 소액 지급이라는게 은행마다 있긴 해요.
그런데 어머니 그것도 지금은 안 됩니다. 이유는 조회 나오면 말씀드릴게요. 그러고는 밀린 관리비를 제 카드로 다 냈습니다.
아들 카드 긁히는 소리가 어미가슴 긁히는 소리지요. 그럼 은정이 인감 증명서하고 도장이 있어야겠구나. 제 말에 진우가 반만 뜹니다.
남매가 장례 치르고 대면대면 한 걸 저도 눈치는 챘어요. 발인날 사위가 먼저가 봐야겠다며 일찍 자리 뜬 것도 마음에 걸렸고요. 어머니가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하면 일 얘기로만 들려요. 그날 저녁 은정이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알았어, 엄마.
시간 봐서. 그러고는 열흘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습니다. 결국 진우가 나를 잡았습니다.
49제 전에는 서류를 넣차고 토요일 점심의 집으로 모이라고요. 상해는 제가 미역국을 올렸고 진우는 봉투에서 상속 재산분할 협의서라는 걸 꺼내 놓았습니다. [음악] 인주도 새로 사 왔더군요.
그 빨간 인주가 어찌나 눈에 실이던지요. 은정이는 한시간이나 늦게 왔습니다. 성관에 들어서는데 손에 김치통이 들려 있어요.
지난 김장에 담가 보낸 그 통이요. 그런데 그걸 빈채로 씻어서 내려 놓으며 한마디 합디다. 김치는 이제 됐어, 엄마.
저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는 못 알아들었습니다. 밥은 뜨는 둥 마는 둥둥 하다가 이윽고 도장 찍을 차례가 왔지요. 진우가 볼펜으로 이름 자리를 짚으며 사무적으로 말했습니다.
여기하고 여기 인감으로 찍으면 돼. 인감 증명서는 떼왔지. 은정이가 가방에서 자채빛 헝겁 주머니를 꺼냈습니다.
도장 주머니요. 그런데 도장을 손에 꼭 준 채로 협이서만 내려다보고 앉아 있어요. 방안이 하도 조용해서 벽식의 초침 소리만 컸습니다.
엄마, 나이 도장 오늘 못 짓겠어. 야 김은정 지금 뭐 하자는 오빠는 가만히 있어. 오빠가 뭘 알아?
은정이 목소리는 낮은데 손등에 핏줄이 섰습니다. 애 아빠가 유료인이 뭐니 하는데 나 그런 거 몰라. 돈 더 달라는게 아니야.
돈 얘기가 아니라고. 이건 중3 때 담임이 집까지 왔었지. 은정이 성적이면 대학 보내라고.
그때 아버지가 뭘 했는 줄 알아? 엄마 여자는 시집 가면 그만이다. 진우 등록금이 먼저다.
그래서 나 산고 갔잖아. 오빠 전세금 5천만 원 해 줄 때 나는 혼수 200만 원이었어. 200.
그 액수가 서러운게 아니라 그때부터 여태껏 누구 하나 나한테 미안하단 말을 안 해. 아버지 영정 앞에서도 그 말이 목에 걸려서 절이 안 되더라. 은정이가 협의를 손바닥으로 짚으며 그럽다.
은행도는 서류를 갖추면 나온다며 나는 30년을 갖춰 왔는데 나한테는 왜 아무것도 안 나와? 아버지 장부에 나는 대체 얼마짜리였는데? 그러고는 도장 주머니를 도로 가방에 넣고 일어섰습니다.
현관문 다치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요. 빈 김치통만 마루에 덩그런이 남았습니다. 진우가 소주를 꺼내며 한 숨을 쉽니다.
어머니 시간을 두지요. 서류가 사람을 이기겠어요. 사위한테서는 밤에 문자가 왔어요.
죄송하다고 그 사람 마음이 풀려야 저도 뭐라 하겠다고요. 저는 답장을 못 했습니다. 그놈의 도장이 뭔지 도장 하나에 30년 묵은 것이 죄다 걸려나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날 밤 안방에 누웠는데 파스 냄새만 코에 맴돌고 잠은 안디다. 천장에 자꾸 옛날 밥상이 얼음거려요. 그게 언제였더라?
93년 겨울이었을 겁니다. 은정이 고등학교 원서 쓰던 무렵이요. 그 겨울 밥상에서 영감이 딱 두 마디 했습니다.
은정이는 상고 보내라. 진우 등록금이 먼저다. 은정이가 제 방에서 입을 뒤집어 쓰고 우는 소리가 문틈으로 세어나오는데 영감은 텔레비전 소리만 키웠어요.
저는요 저는 밥상을 치웠습니다. 딸 방문 한번 안 열어보고 사과 한쪽 깎아 넣어 줄 생각도 못 하고 그릇 소리만 요란하게 냈지요. 그때는 다 그랬다고들 하지요.
맞습니다. 그때는 다 그랬어요. 저부터가 그렇게 컸으니까요.
친정에서도 언니가 미싱을 돌려 남동생 학비를 댔습니다. 딸은 그러는 건 줄 알고 살았어요. 그런데요.
다 그랬다는 말이 우리 은정이 하나를 안 아프게 해 주지는 못합디다. 영감만 미워할 일이 아니었어요. 말리지 않은 저도 못 본 척 밥상만 치운 저도 함패였던 겁니다.
그걸 30년 만에 딸이 도장을 못 짓겠다는 밤에야 시인했습니다. [음악] 이튿날 서류라도 한데 챙겨 두자고 안방 자개장을 열었습니다. [음악] 영감이 쓰던 아래 서랍은 늘 잠겨 있었는데 열쇠는 뭔가 필통해 있었어요.
허랍을 연니 손수건에 싼 인감도장이 나오고 그 밑에서 통장 뭉치가 나왔습니다. 노란 고무줄로 두 번 감아 놓은 통장이 일곱개 농협 전기탁 둘의 보통 예금 하나 국민은행 둘 세마을 근고 하나 은행별로 착착 갈라둔게 영락 없는 그 양반 솜씨였습니다. 평생 공장 자재과에서 대장 접던 사람이라 모든 종류대로 나눠놔야 발 벗고 자는 성미였거든요.
그런데 뭉치 맨 밑에서 낯선 통장이 하나 나왔습니다. [음악] 겉장에 박술례 제 이름이었어요.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이 왜 영감 서랍에서 나옵니까?
저는 만든 기억도 만들어 달란 기억도 없는데요. 그리고 서랍 맨 안쪽에서 공책이 한 건 나왔습니다. 모서리가 다 다른 대학 노트인데 겉장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두 글자 장부 첫장을 넘기니 81년 10월 사우디 1차 송금 하고 깨알 같은 숫자가 시작됩니다.
아이고이 양반이 이걸 여태 지니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날은 부장을 못 넘기고 덮었습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일생을 넘겨볼 자신이 그날은 없었어요.
영감은 국민학교만 마친 사람입니다. 못 배운게 평생 한이 돼서 어디 서류 쓸 일이 있으면 전날밤 신문지에 글씨 연습을 하고 가던 양반이에요. 33세 사우디 모래바람 속으로 두회를 다녀왔고 그 송금으로이 집 전세돈을 만들었습니다.
[음악] IMF 때는 신줄에 명예 퇴직을 당했지요. 퇴직금 봉투를 식탁에 놓고 밤새 담배만 태우던 등작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뒤로는 아파트 경비를 10년 그 세월이 고스하니 저 통장 일곱 개였던 겁니다.
참이 [음악] 말씀을 안 드렸네요. 영감한테는 죽는 날까지 지킨 나드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매달 25일 기초 연금 들어오는 날이면 꼭 농협에 갔어요.
지점장 아들 은행도 아니고 꼭 농협이요. 통장 정리를 해 와서는 돋보기를 걸치고 숫자를 한 줄 한 줄 짚어 보는게 낙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조금 불어나는 재미려니 자린곱이 늙으니 소일이려니 하고 웃고 말았지요.
영감 휴대폰은 아직 정리를 못 했습니다. 며칠 전에도 경로당 단체 문자가 왔어요. 목요일에 윤놀이를 한다고요.
죽은 사람 전화기에 산 사람들 놀이 약속이 오는게 그게 그렇게 사람을 웃디다. 40제를 이회쯤 앞둔 날이었습니다. 서방님이 과일한 상자를 들고 왔어요.
[음악] 마루에 앉아 제 비용 얘기를 꺼내다가 은근슬쩍 본론을 꺼냅더다. [음악] 형수님,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내가 알아보니까 소액 지급이라고 100만 원까지는 서류 간단히 내 준답니다.
형님 통장에서 우선 그거라도 뽑아다 쓰세요. 내가 모시고 갈게요. 어느 틈에 그런 것까지 알아봤을까요?
저는 솔직히 흔들렸습니다. 고지선은 또 쌓이지. 재비용은 목전이지.
아들한테 카드 얘기를 두 번 꺼내기는 면목 없지. 그래 100만 원이 무슨 큰 일이냐 싶어 겉옷을 걸치고 마루에서 신을 꿰는데 방에서 휴대폰이 부르 떨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진짜 이야기는 그 문자 한 통에서부터였습니다. 금융 감독원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 결과 어쩌고 하는 긴 문자였어요. 돋보기를 걸치고도 무슨 말인지 몰라 진우한테 그대로 찍어 보냈더니 5분도 안 돼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어요. 어머니, 지금 집에 누구 계세요? 작은 아버지 와 계신다.
은행 가자고. 가지 마세요.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시고 제 말 먼저 들으세요.
기관마다 결과가 따로따로 오는데 마지막 것이 오늘야 왔어요. 조회 결과는 이랬습니다. 영감 앞으로 계좌가 여덟 개.
우리가 아는 일곱의 우체국에 100만 원짜리가 하나 더 있었어요. 사우디 시절 송금 받던 그 통장을 옆에 살려두고 있었던 겁니다. 다 합치면 9,200만 원.
평생 아끼고 아껴 모은게 그만큼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우가 무겁게 덧붙였습니다. 어머니, 대출이 하나 있습니다.
잔액 430만 원이요? 대출이라니요? 그 양반이요?
남의 돈 무서운 줄을 뼈에 새기고 산 사람인데요. 기가 막혀 말을 못 있는데 진우가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어머니, 오늘부터 아버지 돈은 단돈 100원도 찾으시면 안 됩니다.
소액 지급이고 뭐고 다 안 됩니다. 작은 아버지 좀 바꿔 주세요. 전화기를 넘겨받은 서방님이 어 몇 마디 하더니 낮빛이 변해서는 급한 일이 생각났다며 신을 꿰고 나갔습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요. 그날 저녁 진우가 와서 어미 앞에 종이를 놓고 그림까지 그려가며 일렀습니다. 이 대목만큼은 여러분도 꼭 새겨 두세요.
상속은요. 어머니 재산만 오는게 아닙니다. 빚도 한 보다리에 묶여서 같이 옵니다.
[음악] 빚이 더 많으면 돌아가신 걸 안날부터 석달 안에 법원에 가서 정해야 해요. 아예 안 받겠다는게 상속폭이고 재산 한도 안에서만 갚겠다는게 한정승인입니다. 그런데 여기 함정이 있습니다.
그 석달 아니라도 예금을 먼저 찾았으면 법은 보다리를 풀었쓴 걸로 봅니다. 빛까지 통째로 받기로 한 셈이 되는 거지요. 그때부터는 포기도 한정승인도 못 합니다.
아버지 비지 1억이면 1억 고스란이 산 사람 몫이 됩니다. 진우가 잊치지 않는 집이 있다고 했습니다. [음악] 재작년에 아버지 장례비가 급해서 통장에서 300만 원을 찾았쓴 삼남매가 있었답니다.
만 년 뒤에 낯선 데서 등기가 날아왔대요. 돌아가신 분이 옛날에서 준 보증이 2억 넘게 살아 있었던 겁니다. [음악] 남매는 그제야 상속 포기를 하려 했지만 이미 300만 원을 쓴 뒤라 법원이 받아주지 않았답니다.
그 집 큰따님이 창구에 와서 그럽뛰다. 아버지 장례를 300만 원에 치르고 2억에 샀다고요. 등꼬리 선늘앞랍디다 낮에 서방님 따라나섰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100만 원 뽑는 손이 하마터면 빗문서에 도장 찍는 손이 될 뻔한 거예요. 진우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순서가 생명입니다.
어머니 먼저 조회에서 재산하고 빚을 다 늘어놓고 샘을 해보고 그다음에 손을 대는 겁니다. 아버지는 재산이 빛보다 훨씬 많으니 걱정은 마세요. 그래도 절차는 절차대로 갑니다.
그제야 빈소복도의 그 밤이 다시 보였습니다. 어머니 저도 못 꺼냅니다. 하던 그 매정한 소리가요.
매정한게 아니었어요. 그 애는이 구덩이들을 죄에다 알고서 있었던 겁니다. [음악] 창구에서 25년 남의 집 초상뒤에 오는 돈사다를 수백번 본 사람이라 제 19는 그 구덩이에 안 빠뜨리려고 초상집에서 미움 받는 쪽을 제발로 골랐던 거지요.
자식속을 몰라본게 어미운이었습니다. 그래도 수수께끼는 남았습니다. 그 양반이 3년 전에 2천만 원을 대출받은 기록이 있는데 어디에 썼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진우 말로는 예금담보 대출이랍니다. 경기의탁을 깨기 아까워서 통장을 잡히고 빌리는 것. 적금 깨느니 이자를 무는 딱 아버지 다운 방식인데 문제는 그 2천만 원이 어디로 갔느냐예요.
저는 그날 밤 덮어두었던 장부를 폈습니다. 마루 돋보기를 걸치고 상앞에 앉았습니다. 첫 장은 81년 10월 사우디 1차 송금 80만 원.
집에 붙임. 그 밑에 깨알 글씨로 딱 한 줄이 적혀 있었어요. 모래가 밥에 씹힌다.
아이고,이 양반이 그 먼데서 이런 걸 적고 있었구나. 눈물이 나서 돋보기를 몇 번을 벗었다 썼다 했는지 모릅니다. [음악] 장부는 45년 치 살림에 뼈대였습니다.
연탄값, 쌀값, 진우배일 사진값, 시어머님, 제사 조기값까지 그 양반은 참말로 다 적는 사람이었어요. 97년 겨울 대목에는 퇴직금 3,900 절반은 전기 예탁. 그 옆에 꼭 눌러쓴 습니다.
다시 시작. 2002년에는 진우 전세 5천 산미천이다. 그리고 2003년 봉 은정훈수 200.
그 옆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산에 미천이다. 같은 말도 깨알 한 줄도 없이 그냥 200.
저는 그 페이지를 손바닥으로 몇 번이나 쓸어 보았습니다. 쓸어도 쓸어도 숫자는 그대로 있다. 5천과 2천과 200 열 손가락 깨으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데이 장부에는 손가락 값이 매겨져 있었어요.
[음악] 아픈 값이 다 달랐습니다. 그밤에 저는 딸목까지 두 사람 몫수로 울었습니다. [음악] 그럼 이처은 무엇이냐?
3년 전 7월 대목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동생 2천 대출로 갚는단 말은 믿지 않기로 한다. 서방님이었어요.
형님 초상집에서 비밀 번호로 돈부터 뽑자던 그 서방님이 형한테 2천만 원을지고 있었던 겁니다. [음악] 이튿날 진우가 통장 이체 기록을 맞춰 보니 날짜까지 딱 떨어졌습니다. 재 올리기 전전날 서방님이 또 왔습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장부 그급 페이지를 펴서 마루에 내밀었지요. 한참을 들여다보던 낯이 벌개졌다. 허해졌다.
합디다. 아, 그 형님이 하도 갑자기 가시는 바람에 [음악] 서방님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그 말씀 100번 오아요.
그러니 산 사람이 갚을 것도 갚고 살아야지요. 은행 일은 빨리빨리 하라면서요. 서방님은 그 자리에서 각서를 썼습니다.
다다리 갚겠다고. 49제 비용은 당신이 다 되겠다고요. 미운 마음이야.
왜 없겠습니까만은 돌아서는 구분등을 보니 밉다가도 짜났다. 아들 사업이 엎어져 전세를 빼줬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음악] 네.
그러니 형통장이 눈에 밟혔겠지요. 그 시절 사내들은 형제 간의 차용증 한 장을 안 썼습니다. 형이 은행이고 큰 집이 보험이던 시절 이야기죠.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49제를 지내고 이틀 뒤 이제 남은 수수께끼는 하나였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그 통장이요.
진우하고 농협별 같습니다. 제 명이라 제 신분증이면 바로 볼 수 있답니다. 잠긴 것도 아니고요.
창구 직원이 거래 내역을 인수해 주는데 종이가 석장이나 됐습니다. 7년 전 10월부터 다다리 25일에 10만 원. 한 줄도 안 거르고 여듬번 가까이 쌓여서 잔액이 840만 원이었습니다.
매달 25일 기초 연금 들어오던 날 그양반 은행 마실 가던 날 아닙니까? 멍한이 앉아 있는데 40주쯤 된 창구 직원이 조심스에 무습디다. 혹시 김만석 어르신 사모님이세요?
그렇다니까 그 직원 눈이 그렁그렁해져요. 어르신, 매달 25일이면 오셔서이 통장에 넣고 가셨어요. 기계로 하시면 편하다고 해도 꼭 번호표 뽑고 창구로 오셨어요.
기계는 못 믿는다고. 저 [음악] 끝자리 창구가 어르신 자리였어요. 한 번은 제가 여쭤봤어요.
어르신,이 통장은 무슨 통장이길래 이리 정성이세요 하고요. 그랬더니 딱 한 마디 하셨어요. 마누라 무릎 붙는 중이요.
그러고는 쑥스러우신지 사탕 하나 집어들고 후딱 나가셨는데 저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못 내고 울었습니다. [음악] 창구 유리에 비친 제 꼬이 하도 못 나서 더 울었지요. 무릎이 시큼거린다고 허구한 날 노래를 부른 건저인데 그 소리를 듣고 있던 귀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진우가 통장 비닐 커버를 벗기다가 손을 멈췄습니다. 커버 안쪽에 접힌 종이가 한 장 끼워져 있었어요. 영감 글씨였습니다.
못 배운 한설인 신문지에 밤새 연습하던 그 글씨 세 줄이었습니다. 하나. 내가 먼저 가거든 [음악] 장례는 이돈으로 치르시오.
요란하게 하지 마시오. 둘 남거든 임자 무릎 수술부터 하시오. 미루지 마시오.
셋. 미안하다는 말은 평생 쑥스러워 못 했으니이 통장으로 대신하오 신두회를 살고 그 양반속을 은행 창고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음악] 인자 소리를 읽는데 그 목소리가 귀가에 그대로 살아나요.
살아서는 밥은 먹었냐? 문단속해라. 그 두 마디로 52년을 때우던 양반이 종이 위에다는 이런 말을 적어 놓고 갔습니다.
로비 소파에서 한참을 오는데 아까 그 직원이 말없이 종이컵에 물을 떠 놓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그 양반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저 가면 저 이름 통장이 죄다 얼어붙는다는 걸요.
그래서 어미 이름으로 통장을 파서 7년을 다다리 부은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잠긴 통장 여덟 개 틈에서 그 통장 하나만 살아 있었습니다. 밀린 관리비며 자잘한 것들을 그 돈으로 막았습니다.
영감이 저 죽고 나서까지 저희 살림을 본 거지요. 그날 밤 마루에서 진우가 소주를 따르더니 어미 앞에서 처음으로 말을 더듬었습니다. 어머니 저 그 통장 첫 입금 날짜 보고 알았어요.
7년 전 가을이잖아요. 그의 추석에 아버지가 저한테 물으신게 있어요. 경로당 친구분상 치르고 오신 뒤였어요.
그대기 빈소에서 돈 때문에 싸움이 났다고 통장이 잠겨 장례도 못 꺼냈다고 혀를 차시더니 [음악] 지나가는 말처럼 물으셨어요. 사람이 죽으면 통장은 어찌 되냐? 저는 은행원 버릇대로 대답했지요.
그 자리에서 다 동결되고요. 상속인 전원 서류가 있어야 풀리고요. 잘못 건드리면 빚까지 떠앉습니다.
시험 문제 풀듯 줄줄요. 아버지는 그러냐? 한마디 하시고 소주만 드셨어요.
그 통장 첫 입금이 그해 10월 25일이에요. 어머니 아버지는 그날 제 대답을 듣고 준비를 시작하신 겁니다. 지점장이라는 놈이 남의 집 상속은 수백권을 받으리면서 제 아버지가 제 말을 받아고 계신 줄은 몰랐어요.
따지고 보면 진실을 밝힌 건 제가 아니라 아버지예요. 저는 7년 늦게 읽었을 뿐이고요. 흰둘 먹은 아들이 어깨를 들썩이는데 저는 그 등을 쓸어 주는 것밖에 할게 없었습니다.
은행 지점장이 밝힌 충격적인 진실이 뭐냐 물으신다면 저는 이제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통장이 얼어붙는 것도 놀랄 일이고 빚이 따라오는 것도 무서운 일입니다만 제일 무서운 진실은 따로 있습다. 말 없는 늙은이들이 실은 다 듣고 있고 다 알고 [음악] 있고 저 혼자 조용히 준비까지 맞춰 놓는다는 것 곁에서 한 입을 덮고 자는 사람도 모르게요.
이틀 뒤에 저는 김치통을 채웠습니다. 새로 묻힌 겉절리하고 갈치 두 토막을 싸들고 은정인 학원 앞으로 갔어요. 9시 넘어 셔터를 반쯤 내린 학원에서 나오던 은정이가 저를 보고 멈칫합디다.
엄마가 여긴 웬 일이야? 집에 가서 밥이나 한술하자. 어미가 보여줄게 있다.
은정인의 식탁에서 장부를 폈습니다. 그 페이지를요. 5천과 2천과 200이 적힌 자리를 딸 앞에 밀어 놓고 말했습니다.
네 말이 맞았다. 네가 예민한게 아니라 샘이 찬말로 일했더라. 네 아버지 장부가 이래.
어미는 변명 안 한다. 은정이는 장부를 오래 들여다봤습니다. 200 하고 적힌 글씨를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문지르면서요.
나 진짜 내가 이상한 줄 알았어, 엄마. 속이 좁아서. 30년 전 일을 못 있나?
내가 못 돼서 일어나. 그런데 여기 적혀 있네. 진짜였네.
목소리가 갈라지는데 저는 그 손을 붙들었습니다. 은정아,네 아버지 몫은네 아버지가지고 갔다. 저은 가서 치를 쌤이 있으면 치르겠지.
이건 어미 몫이라 어미가 한다. 그날 상고 원서에 도장 찍히던 날 네가 밤새 오는 거 다 들으면서 어미는 밥상만 치웠다. 방문 한 번을 안 열어봤다.
그게 30년 내내 여기 걸려 있으면서도 사과 한마디를 아꼈다. 은정아 미안하다. 어미가 미안하다.
은정이가 애처럼 울었습니다. 49 먹은 딸이 어미 무릎에 엎어져서요. 한참을 울고 나더니 그럽디다.
엄마 나 돈 갖고 그런 거 아닌 거 알지? 그 말 한마디 들으려고 30년 걸렸네. 은행은 서류라도 있지.
[음악] 나는 뭘 갖춰 가야 되는지도 몰랐단 말이야. 그 말에 무슨 대답을 하겠습니까? 어미가 설이었어야지요.
진작게요. 우음끝에 은정이가 하나를 더 털어놨습니다. 아버지 가시기 두 주 전에 전화가 왔었어.
학원 마감 중이라고 내가 먼저 끊었어. 다시 건다는게 그게 마지막이야. 무슨 말 하려셨는지 이제 물어볼 수도 없어.
저는 딸등을 쓸며 말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하늘이나 알겠지. 그런데 은정아, 그 양반이 너한테 먼저 전화기를 들었다는 것 자체가 그 양반한테는 큰 말이었던 거다.
그리 알고 살자. 그러고서 은정이가 부엌에서 인주를 찾아왔습니다. 협의소에 도장 찍히는 소리가 쿵하고 온 집에 울리는 거 같았어요.
도장 세 개가 나란히 앉은 종이가 그리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은정이가 도장을 챙기며 조건을 하나 답뒤다. 엄마 무릎 수술하는 날 병실은 내가 지켜 오빠 말고 나 그건 딸씨야 그래라 그래.
그리고 김치통 도로 줘. 다음 긴장은 나랑 같이 담가. 이제 엄마 혼자 그 배추 못려.
영감 가시고 8일회째 되던 날 서류봉투를 안고 은행을 돌았습니다. 기본 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 협의서, 인감 증명서 석장. 농협에서 반나절, 국민은행에서 반나절.
우체국하고 세마을 근고는 진우가 맞고요. 창구마다 서류를 보고 또 보는데 까다롭다 싶다가도이 까다로움이 결국 우리 같은 사람 지키는 울타리거니 했습니다. 우체국 그 사우디 통장 1200만 원은 남매가 아버지 젊은 날 땀값이라며 한사코 제 앞으로 밀어 놓았고요.
마지막 창구에서 직원이 그럽디다. 입금 처리됐습니다. 어머님.
휴대폰이 부르 떨면서 문자가 왔어요. 9,200만 원. 이자까지 한 푼 안 빠지고요.
대출 430만 원은 그 자리에서 갚아 지웠습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돋보기로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숫자가 아니라 그 양반 45년이 찍혀 있는 것 같아서요.
그날 저녁 [음악] 진우가 밥상 머리에서 그랬습니다. 어머니 인제 경로당에서 누가 물으면 이리만 대답하세요. 갑자기 가도 예금은 이자까지 한 푼 안 빠지고 다 받는다.
대신 그냥은 못 받고 식구 전원이 서류를 갖춰야 열린다. 은행 가기 전에 주민 센터 안심상속 조회부터 하는게 순서고 장례비만큼은 산 사람 이름 통장에 미리 옮겨 둬라. [음악] 은행은 죽은 사람 사정을 안 봐줍니다.
제가 옆에서 한 마디 못 했습니다. 통장 지도도 남겨야 한다고요. 진우가 그게 뭐냐고 웃길래 그랬지요.
네 아버지처럼 장부까지는 못 쓰더라도 어느 은행에 통장이 몇 개 있는지 종이 한 장에는 적어 놓고 살아야 남은 사람이 장님 문꼬리 잡듯 안 해맨다고요? 우리 집은 지도가 없어서 헤맨게 아니라 자개장 서랍에 지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산 세월이 길었던 겁니다. 며칠 뒤에 진우가 가족 단톡방에 사진을 하나 올렸습니다.
[음악] 은정인의 학원 간판을 찍어 놓고 우리 김경희 사무실 하고요. 은정이가 웃는 얼굴 하나를 달았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요.
그런데 몇 달 만에 그 방에서 오간 첫 웃음이었습니다. 그 길로 정령애가 수술을 받았습니다. 가을로요.
이 이 나이에 세삼스럽게 무슨 수술이냐 싶다가도 수납 창고에서 보호자 연락처를 묻길래 딸 번호를 또박또박 불러 줬습니다. 김은정이요 하는데 어깨가 다 표집뛰다. 무릎값 300만 원은 그 양반이 7년 보은 840만 원에서 나갑니다.
영감이 시킨 마지막 신부름인 셈이지요. 이번에는 안미루겠습니다. 지난주에는 은정이 차를 타고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막걸리 한 잔 부어 놓고 실컷 잃렀어요. 당신 동생 각서 쓴 이야기, 딸내미 도장 이야기, 우체국 통장 이야기까지요. 그러고는 그 말을 했습니다.
여보 고맙습다 쑥스러 못 하던 말 나도 인제 종이 말고 입으로 하오 바람이 봉분풀을 한번 쓸고 지나가는데 그 양반 대답인가 하고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그 양반은 끝까지 공평하지는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딸의 200만 원 옆에 끝내 한 주를 못 따라준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 갈길 뒤는 말없이 닦아 놓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음악] 사람이 그렇게 반반 입다. 미워하면서 고마워하면서 그렇게 보내 드리는게 남은 사람 몫인가 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오늘 밤에 딱 한 가지만 해 보세요. 단력 한 장 뜯어서 뒷면에다 거래하는 은행 이름하고 통장 개수만 적는 겁니다. [음악] 액수는 적지 마세요.
자식들 세마하는 지도가 아니라 남은 사람 헤매지 말라는 지도니까요. 그러고는 식구들 다 아는 서랍 맨 위칸에 넣어 두시고 저녁상에서 딱 한 마디만 하세요. 거기 통장지도 있다.
그 한마디면 됩니다. 통장은 서류로 열립니다. 그런데 사람은 말로만 열립니다.
서류는 남은 자식들이 어떻게든 갖춥 말은 우리가 숨쉬는 동안에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댁은 어떠십니까? 배우잡은 통장이 어느 은행에 몇 개나 있는지 알고 계세요?
댓글에 압니다, 모릅니다. 그 대답 하나만이라도 적어 주세요. 상속일리를 겪어 보신 분은 한 줄 못 해 주시고요.
여러분의 그 한 줄이 다른 어느 때에 석달을 지켜줍니다. 오늘 이야기가 남의 집일 갖지 않으셨다면 [음악] 옆에 계신 그분께 꼭 들려 주시고 좋아요와 구독, 알림 설정을 해 두시면 다음 이야기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늘 무릎 성이.
밥 잘 챙겨 드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